그저 평범한 가정

그녀의 결혼과 삶 #15

by 느리게 걷기

겉으로 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절이었다.


행복과 불행은 각각 다른 방에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으로 가는 문이라고 생각해서 밀고 들어간 후에 고약한 불행을 만나기도 하고 불행이라는 문으로 떠밀려 간 후에 생각지 못한 행복을 만나기도 한다.

불행과 행복은 그렇게 적당히 섞여서 인생이라는 반죽을 만들어 낸다. 그러니 행복의 방에 들어왔다고 지레 좋아할 필요도 없고 불행의 방에 들어왔다고 너무 절망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미선의 시아버지가 죽었다. 위암이었다. 그는 평생 공사판에서 도장일을 하면서 살아온 욕심 없는 사내였다. 그의 병세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고 살이 무서운 속도로 빠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40킬로까지 빠져 버렸다. 평생을 불만 없이 살아온 그는 기이한 형상을 한채 어두운 골방에 누워서 조용히 죽음을 기다렸다. 그는 언제나 말이 없고 감정 표현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을 특별히 슬퍼하는 이는 없었다.


물론 남편의 죽음을 가장 애석하게 생각하는 이는 시어머니 유순이었다. 유순에게 시아버지는 특별한 남편이었다. 새벽 4시면 절에 기도를 가는 아내를 위해서 밤늦게까지 구멍가게를 지키는 이도 바로 시아버지였다. 밤 10시가 넘어가면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어져 버리는데도 그는 항상 열 두시까지 가게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갑자기 찾아오는 늦은 손님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고 밤늦게까지 문을 여는 걸 알고 부러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문을 닫을 수 없다는 것이 설명이었다. 그는 늘 가게에 딸린 작은 방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며 시간을 보냈다. 가게에서 물건을 몰래 집어서 도망가는 꼬마들도 있었지만 그는 그런 걸 알아채지도 못하고 무거워진 눈꺼풀과 싸우며 가게를 지키곤 했다.


장례가 끝나고 나니 홀로 남은 유순의 거취가 문제였다. 딸들은 오빠가 엄마를 모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호 말고도 아들이 둘이나 있었지만 다들 외지에 살고 있었다. 유순과 같은 시내에 살고 있는 데다 큰아들이기 때문에 정호가 어머니를 모시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였다. 가뜩이나 남편이 죽고 나서 밥도 잘 먹지 않는 유순의 모습을 보고 딸들은 애가 달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큰오빠랑 살림을 합쳐야 엄마가 기운을 찾을 것 같다는 것이다. 갑자기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미선에게 친절해졌다. 미선에게 과일 상자를 들고 찾아오기도 하고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다가 들르기도 했다. 갑자기 태도가 바뀐 시집 식구들의 의중이 짐작 가는 바였다. 남편 정호는 미선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특별한 애틋함이나 효심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 당시 홀로 남은 어머니를 큰 아들이 모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주변의 시선에 유독 집착하는 정호의 성격상 어머니와 같이 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물론 어머니를 모신다고 해서 그가 힘들어질 것도 없었다. 어차피 어머니의 식사와 빨래를 챙기는 것은 미선이 할 것이고 자기야 그저 어머니와 가끔 말이나 주고받으면 될 것이라고 속 편하게 생각을 했다.


미선은 어머니가 꾸리던 구멍가게를 자기가 해 보고 싶다고 제안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낮이 무료하기도 하고 장사를 잘할 자신이 있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처음에는 시어머니가 반대를 했다.

" 구멍가게라는 게 겉으로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그런 게 아니다. 사람도 상대해야 하고 물건도 떨어지지 않게 잘 갖춰 놓아야 하고. 가끔 술주정뱅이 오면 쫓아내야 하고. 네가 그런 걸 어떻게 하겠냐?"


제법 미선을 생각해 주는 듯했다. 하지만 미선도 결혼하고 15년이나 흘렀으니 시어머니 말에 무조건 순종하던 예전의 그녀는 아니었다. 그녀는 아이들 학원비라도 벌려면 뭐라도 해야 하고 어머니야 말로 몸이 쇠약해졌으니 당분간 절이나 열심히 다니라고 설득을 했다. 유순도 생각해 보니 그 구멍가게에서 돈이 많이 벌리는 것도 아니고 종일 앉아 있어 봐야 하루에 손님은 10명 안팎이다 싶었다. 앉았다 일어났다 무릎 연골이 다 나갔는데 그냥 속 편하게 며느리에게 물려주자고 마음을 바꿨다.


대대적인 신축 공사가 시작되었다. 옛날 집은 마당에 덩그러니 방이 있고 조잡한 화장실이 있었다. 옛날 집인 데다 마구잡이로 지어져서 외풍이 심하고 곧 허물어질 것처럼 위태해 보이기도 했다. 미선은 그 집을 헐고 거기에 이층으로 집을 지을 계획이었다. 일층에는 가게를 두 칸을 넣어서 한 칸은 임대를 주고 한 칸은 미선이 쓸 생각이었다. 이층에 살림집을 넣으면 가족들이 살만하다 싶었다.


집을 짓는 동안 가족들은 뒷 집 마당을 빌려서 천막을 치고 살았다. 기둥을 세워 천막을 치고 바닥에는 두꺼운 스티로폼을 깔아서 냉기를 막았다. 화장실은 뒷집 마당에 있는 바깥 화장실을 사용했다. 가족들은 자고 일어나면 집이 쑥쑥 올라가는 게 신기해서 천막생활이 힘든 줄도 몰랐다. 한 달 만에 집이 완성되었다.


사실 새로 지은 집은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일단 기존에 집을 허물고 새로 지으면서 소방도로를 내줘야 했다. 그러다 보니 집은 형편없이 작아졌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바깥으로 나 있었는데 경사가 얼마나 급한지 아이들은 처음에 계단을 올라가면서 가슴을 졸였다. 나중에 그 계단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났으니 그 계단은 문제가 있는 설계였던 것이다. 집으로 들어가면 방은 모두 세 개인데 정말 코딱지만 했다. 2층의 평수는 15평쯤 되었다. 거기에 가구를 넣고 나니 집은 더 작아졌다. 시어머니는 막내와 방을 같이 쓰겠다고 하더니 방이 코딱지만 한 것을 보자 자기 혼자 방을 쓰겠다고 우겼다. 할 수 없이 방 하나에 아이들 넷이 생활해야 했다.


그래도 옛날 집하고 비교하면 좋은 점이 더 많았다. 3층에는 옥상이 있어서 거기에 상추와 고추, 배추를 직접 심어서 키웠다. 화장실도 현대식으로 지어서 예전의 화장실과는 차원이 달랐다. 방도 작기는 했지만 그래도 새 벽지가 발려 있고 바닥도 원목 무늬 장판을 깔아놔서 예전의 우중충한 느낌은 없었다.


미선은 일층 가게 한 칸은 미용실을 하는 여자한테 세를 주고 한 칸에는 나들가게를 차렸다. 슈퍼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아서 따로 간판을 달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생각보다 장사 수완이 좋았다. 집에서 200미터쯤 근처에 작은 예식장이 있었다. 주말에는 예식장 손님이 많았다. 그들은 주로 담배나 눈 스프레이를 사 가지고 갔다. 가끔은 자기들끼리 놀려고 하는지 카드패를 사러 왔다. 카드는 한통을 팔면 마진이 많이 남는 상품이었다. 시어머니가 장사를 할 때는 그런 물건들은 가져다 놓지도 않았는데 미선은 손님들이 찾는 물건을 잘 적어놨다가 구비해 놓았다. 주말이면 가게에 물건을 사려는 손님들이 바글바글했다. 그럴 때는 아이들까지 다 가게일을 도와야 했다. 미선의 입장에서 보면 경제 호황이었다.


시어머니 유순은 아들 내외가 같이 들어와 살면서 예전처럼 표독하게 달려들지 않았다. 물론 그 인내의 시간이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는 꽤 오랫동안 그녀의 이름처럼 유순하게 지냈다. 미선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아래층에 내려와서 장사를 시작했다. 샷다를 올리고 가게 청소를 하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었다. 남편은 차를 타고 시청으로 출근을 했다. 그녀는 창고에서 맥주나 소주를 가져다가 먼지를 닦아서 냉장고에 잘 진열했다. 건너편에 노래방이 있었기 때문에 밤이 되면 맥주와 소주가 잘 팔렸다. 그녀는 보기와는 다르게 장사를 잘했고 늘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는 덕분에 단골들이 많이 늘었다. 나중에는 일부러 그녀 가게에서 팔아 주려고 멀리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때는 미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공부를 잘했다. 공부하라는 말이 떨어질 새도 없이 독서실에 가서 밤을 새우고 아침 일찍 다시 학교로 갔다. 남편은 노름에 재미를 잃었는지 퇴근을 하면 이층에 올라가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시어머니는 자기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초저녁이면 잠자리에 들었다.


기차가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제대로 굴러가는 것처럼 안정적인 생활이 이어졌다.



그러나 결혼이 의미 있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깊고 진실한 대화가 필요하다.


그 찰나 같은 행복의 시간 속에서 그녀가 놓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남편 정호와 그녀 사이에는 대화가 없었다. 그들은 서로 용건을 나누거나 중요한 일을 상의하기는 했지만 대화라고 부를만한 것을 나누지 않았다. 그것은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주 작은 균열에서 시작해서 서로에 대한 틈을 만들어 냈고 다시는 그 간격을 좁힐 엄두도 못 낼 만큼 점점 벌어져 갔다.



사진출처: https://www.saatchiart.com/art/Painting-Lonely-house/1164643/7752978/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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