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선은 억척스러웠다.
세상에 치이고 사람들에게 상처 받을수록 그녀는 단단해졌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자주 몹쓸 꼴을 당했다. 사람들은 기가 막히게 박복한 여자를 알아보았다. 같은 동네 홍대네 엄마는 미선에게 돈 5만 원을 빌려줬다. 그러고 나서 딱 열흘 만에 그 돈을 갚았는데 홍대 엄마는 돈을 갚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미선네 집까지 찾아와 마당에서 소리를 지르며 삿대질을 했다. 놀란 아이들이 겁에 질려서 엄마를 지켜보았다. 미선의 말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홍대네 엄마는 구경하는 눈들이 많아지자 목소리를 더 높였고 미선은 부끄러운 생각에 어딘가로 숨어 버리고 싶었다. 막내가 엄마 치맛단을 붙잡고 울먹거리자 미선은 항복하는 듯이 알겠다고 대답을 했다. 홍대네 엄마는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
그 후로도 미선은 험한 꼴을 당했다. 보험상품 판매를 시작한 직후였다. 일단 물꼬만 터 놓으면 계약이 꼬리에 꼬리를 물 거라고 교육 담당자는 누누이 이야기했는데 그놈의 물꼬를 터는 게 문제였다. 옆에 사람들은 곧잘 계약을 따 내는데 미선은 한 건도 팔지를 못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큰아버지를 찾아갔다. 큰아버지는 시내에서 큰 목재상을 하고 있는 부자이다. 예전부터 미선을 예뻐하기도 했고 큰아버지가 앓아누웠을 때 미선이 자주 찾아뵈었기 때문에 각별한 정이 있는 사이였다. 그러나 어렵게 마음먹고 찾아간 큰아버지에게도 미선은 모욕적인 일을 당했다. 큰아버지는 미선에게 마루로 올라오라는 말도 없이 그녀를 마당에 한참을 세워 두고는 자기 볼일을 보고 있었다. 무안함에 얼굴이 붉어진 미선에게 큰아버지는 한동안 입을 떼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큰 결심이라도 한 듯이
" 병신 같은 놈, 처자식 먹여 살릴 생각은 않고, 쳐 돌아다니기나 하는구먼. 병신 같은 놈"
이라고 욕을 해 붙였다.
큰아버지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욕이 나오자 그녀는 당황했다. 남편이 한심한 위인이긴 하지만 큰아버지에게 그런 욕을 듣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미선은 마치 자신이 욕을 먹은 것처럼 화끈거렸다. 그래도 아이들의 아빠인데 이렇게 공개적으로 그녀를 세워 놓고 남편 욕을 한다는 것은 결국 미선과 남편 둘 다를 무시하고 만만하게 본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녀는 모멸감에 치를 떨면서 도망치듯이 큰아버지 집을 빠져나왔다. 누구 하나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 없었다. 결국 믿었던 큰아버지에게 그런 꼴을 당하고 나니 도저히 사람들을 만날 자신이 없었다. 그녀는 결국 보험 회사일을 그만뒀다.
그 후로는 토마토나 양파 따는 일을 나갔다. 큰돈은 되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은 꽤 두둑한 일당을 받기도 하고 어떤 날은 커다란 가방에 토마토를 가득 얻어서 들고 올 수 있었다. 아이들은 또 얼마나 좋아하는지. 미선이 늦은 오후에 지친 몸으로 돌아오면 골목 밖까지 나와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럴 때 아이들은 토마토 가방을 발견하고는 제대로 씻지도 않은 토마토를 베어 물었다. 간식이 귀하던 시절에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는 얼마나 달고 맛이 있는지 아이들이 한 번에 몇 개씩 먹는 모습을 보면서 미선은 하루 동안 노동으로 지친 마음을 달래곤 했다.
그러는 와중에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남편 정호의 도박판이 발각된 것이다. 정호는 제버릇을 못 고치고 근무 시간에 나와서 돈내기 고스톱을 치다가 신고를 당했다. 그 날 현장에 있던 공무원들은 모두 4명이었다. 시내가 들썩할 정도로 시끄러운 사건이었다. 나중에는 지역 방송에까지 기사가 나갔다. 공무원들의 기강이 무너졌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정호는 까딱하다가는 옷을 벗고 자리를 내놔야 할 상황까지 갔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가뜩이나 좁아터진 동네에서 남 안 되는 얘기 하는 게 유일한 낙인 사람들에게 이만큼 재미있는 안주거리는 없었다. 연일 사람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정호가 징계를 받을 거라거나 아예 이번 기회에 잘릴 것 같다거나 많은 이야깃거리가 나오고 사라지고 했다. 사람들은 더 비극적이고 자극적인 결말을 원했고 정호가 치명적으로 파국을 맞기를 내심 기대했지만 사건은 흐지부지 처리되었다.
돈내기 고스톱 판이었지만 판돈이 작은 것이 정상 참작되어서 경고 정도로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 후로 정호가 더 이상은 노름판에 가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도 웬만큼 놀라기는 한 모양이다. 온 시내가 그를 안주거리 삼아서 찢었다가 붙였다가 양념을 했다가 그 난리가 났는데 웬만한 강심장 아니라면 다시 노름판에 발을 들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호는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회적 체면과 공무원 자리보전을 위해서 노름에 손을 씻었다. 완전히 씻은 것은 아니고 가끔은 예전에 잘 나가던 시절의 그리움에 이끌려서 고스톱판을 찾기는 했지만 예전처럼 월급통장을 통째로 건다거나 밤을 꼬박 새우면서 노름판에 퍼질러 있지는 않았다.
강제적인 교화는 효과가 있었다. 정호도 이제는 월급봉투를 가지고 오는 날이 많아졌다. 미선은 그 돈을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저축했다. 조금만 돈이 모이면 은행에 가서 입금을 했다. 아이들 옷은 동네에서 얻어 입히고 내복은 기워서 입혔다. 웬만한 물건들은 다 중고로 사 들였다. 가을이면 감을 깎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다. 이제 미선의 집에 쌀이 떨어지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사람은 시련을 겪을수록 단단해지는 법이다. 미선은 점점 단단해지고 있었다. 미선이 그녀의 삶을 살아나가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바로 억척스러움이었다. 아무도 손 내밀지 않고 도와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억척스러움으로 그 험난한 길을 헤쳐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배우지 않고 스스로 체득한 그녀만의 생존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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