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남편

그녀의 결혼과 삶 # 13

by 느리게 걷기

남편 정호에게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그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주 가래침을 뱉어댔다. 처음에 그녀는 결혼하고 나서 남편이 수시로 가래침을 뱉는 것을 보고 기함을 했다. 말은 안 했지만 혹시나 폐병이 있는 사람인가 생각도 했다. 목에서 가래 끓는 소리를 내다가 거침없이 가래를 땅에 뱉어내고는 발로 쓱 문질러 버리는 걸 볼 때마다 그녀는 속이 메스꺼웠다. 정호는 유난히 밥을 빨리 먹었는데 그러고 나면 다른 사람이 밥을 먹든지 말든지 나가서 그렇게 소리를 내며 가래를 뱉었다. 나중에는 남편이 마당에 나가 서 있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뜩이나 애정 없이 등 떠밀려 한 결혼인데 남편은 눈만 돌리면 함부로 가래를 뱉어 대고 있으니 정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이 남자는 도무지 자기가 이 집안의 가장이라는 자각이 없었다.


그는 옷을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낡은 쌀통에 쌀은 늘 아슬아슬한데 그러거나 말거나 본인은 실크 셔츠를 맞춰 입었다. 그것도 한 개가 아니라 꼭 두세 개를 한꺼번에 주문해서 입었다. 미선은 아침 일찍 남편의 밥상을 차리고 나면 정호가 식사하는 동안 엉거주춤 앉아서 남편의 구두를 닦았다. 미선은 자신의 행색은 신경도 쓰지 않고 출근하는 남편이 어디 하나라도 흠잡힐 데 없이 나가기를 바랐다. 그래서 부드러운 천에 구두약을 묻혀서 구두에 흠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광을 냈다. 그렇게 구두까지 준비가 되고 나면 정호는 밖으로 나와서 신발을 꿰어 신고 도망치듯이 집을 빠져나갔다. 남편이 대문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다가 미선은 뒤늦게 남편의 옷이 바뀌었다는 것을 발견하곤 했다.


" 또 옷을 샀나 보네. 그새 또 옷을 샀어 "


그러면 미선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는 남편이 사라진 대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들어오곤 했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오직 언제 새롭게 노름판이 벌어져서 사람들과 재미있게 판을 벌일지 하는 것이었고 그런 소식이 들어오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갔다. 정호는 노름판에서 곧잘 돈을 날리고 돌아왔다. 때로는 월급날 월급봉투를 들고 노름판에 뛰어 들어서 월급을 홀랑 다 날리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미선은 월급날에 정호가 집에 일찍 들어오지 않으면 아예 마당에 나가 섰다. 미선은 남편이 이제나 저제나 들어오는지 애타게 골목 밖으로 목을 빼고 기다리곤 했지만 월급날 정호는 집에 들어올 생각도 않고 신이 나서 밤거리를 배회했다. 집에서 아내가 기다리고 있든 말든 그런 것을 상관할 위인이 아니었다. 정호는 중국음식을 시켜 놓고 늘 어울리는 패거리들과 고스톱을 치느라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이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면 미선은 하루 종일 마음을 졸이고 있다가 잠든 남편의 주머니에서 월급봉투를 확인했다. 그녀가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꺼내서 안을 확인하면 안에는 지폐 몇 장이 겨우 남아 있거나 가끔은 그나마도 없이 그야말로 빈 봉투를 들고 들어오는 날도 있었다.

그러면 미선은 기가 막혀서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당장 공과금도 밀려 있고 내일 먹을 찬거리도 없는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럴 때마다 미선은 칠흑 같은 방에 갇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은데 문을 찾지 못해 어둠 속 두려움에 떨다가 주저앉아 울어 버리는 어린아이처럼 그녀는 오래도록 소리 없이 울곤 했다.


미선은 정호에게 따지지도 추궁하지도 못했다. 그녀는 늘 남편 앞에서 기가 죽어 있었다. 딸만 넷을 내리 낳은 것이 미선 혼자만의 일도 아니거니와 그렇다고 딸을 넷 낳은 것이 죄도 아닌데 미선은 웬일인지 남편 앞에만 서면 저절로 기가 죽고 소리가 기어들어갔다. 그녀는 늘 죄스러운 마음에 사로잡혀서 남편의 심기를 살피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남편은 성질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남편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조금이라도 할라치면 남편은 눈을 부라리고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면서 말 끝에는 '에이씨'라는 소리를 해 붙였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위압적으로 느껴지는지 그녀는 겁부터 났다.


반대로 정호는 미선 앞에만 서면 기가 살았다. 그는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른 여편네를 너그럽게 받아주고 있다는 듯이 늘 당당하게 미선을 대했다. 그는 아이들에게도 말을 붙이거나 이뻐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아이들이 다치거나 아플 때도 마치 옆집 아이들이 그런 것처럼 무관심했다. 사실 그는 아이들이 아픈지 어디가 문제가 있는지 그런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아이들도 아빠가 일찍 들어오면 그 좋아하는 텔레비전을 보고 싶어서 아빠와 멀찍이 떨어져 앉아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불편해서 슬그머니 자기들 방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녀의 삶은 스스로 선택한 삶이 아니었다. 그녀는 결혼도 원하지 않았고 더구나 이 남자는 더더욱 원하지 않았다. 미선은 자신의 삶이 표류하는 배처럼 거친 파도에 휩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이 그렇게 아득해질 때마다 그녀는 무릎을 세우고 벽에 기대어 앉아있곤 했다. 그녀는 마치 숨을 쉬지 않는 사람처럼 미동도 없이 그렇게 벽에 오래도록 기대어 있었다. 그럴 때 그녀는 반쯤 혼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의 눈은 초점이 없었고 그녀의 팔은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아이들은 그럴 때마다 겁이 났다. 마치 엄마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고 아니면 엄마는 곧 이 세상에서 사라질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일부러 엄마가 잠들어 있지도 않은데 엄마를 흔들어 보았다. 그럴 때면 그녀는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눈을 뜨고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월급만 기다리고 있다가는 속이 숯검댕이처럼 새카맣게 다 타서 없어져 버릴 지경이다. 어차피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녀는 오래도록 방구석에 앉아 있다가 부스스 일어섰다. 그녀의 삶은 언제부터인가 절망과 희망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그녀는 높은 곳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녀의 줄타기가 실패해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질 것인지 아니면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기사회생할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미 줄타기는 시작되었다.


사진출처: https://blog.naver.com/choy2019/221623730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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