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정혜가 언니들과 놀다가 갑자기 경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도 정혜는 몇 번인가 경기를 한 적이 있었다. 정혜는 눈이 사시처럼 마구 돌아가고 손발을 떨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놀라서 소리쳐 엄마를 불렀다.
미선은 수돗가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다가 일어섰다. 미선은 정혜를 업고 한 씨 할머니 집으로 내달렸다. 한씨 할머니는 골목 끝집에 사는 할머니다. 할머니는 침을 잘 놓았다. 그 전에도 정혜가 열이 오르거나 깜짝깜짝 놀라면 한씨 할머니는 손을 따주곤 했다. 그러면 정혜는 그 자리에서 오줌을 주욱 싸고는 열이 내렸다. 미선은 한씨 할머니같은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밤늦은 시간에 찾아가도 한씨 할머니는 싫은 내색을 하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많이 놀랐냐고 앞으로도 언제든지 오라고 미선의 손을 잡아주었다. 미선은 한씨 할머니에게 가끔 담배를 한 보루씩 사다 드렸다. 한씨 할머니가 없었더라면 혼자서 어쩔 줄도 몰랐을 거라고 미선은 자주 생각했다. 그리고 옛날 시골에 같이 살던 할머니와 한씨 할머니가 닮았다는 생각도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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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은 그 정도 상황이 아니었다. 정혜는 온몸이 펄펄 끓고 있고 경기도 이제와는 다르게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미선은 큰 딸 정숙에게 동생들을 챙기라고 당부를 하고 시내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미선은 포대기에 정혜를 단단히 업고 몇 가지 물건을 챙겨서 병원으로 출발했다. 그런 와중에도 남편인 정호는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고 연락할 방도도 없다. 사실 미선은 정호한테 연락할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연락이 된다고 쫓아올 위인도 아니고 쫓아온다고 해서 일을 해결할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애초에 기대도 없다.
미선과 정혜가 가고 나니 남아 있는 아이들은 어수선하니 불안하기 짝이 없다. 동생이 이렇게 심하게 경기를 한 적은 없었다. 아이들은 아무래도 동생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엄마가 가자마자 금세 어둑어둑해졌다. 이제까지 엄마 없이 저희끼리 있어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무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때 셋째의 말이 시발점이 되어서 아이들을 겨우 지탱하고 있던 긴장감이 힘없는 둑처럼 무너져 버렸다.
" 홍콩할매귀신이 남산에 왔다고 하던데. 우리 집으로 오면 어떡하지?"
셋째는 훌쩍이기 시작했다. 세 자매는 이불을 중간에 펼쳐 넣고 그 안으로 발을 쏙 집어넣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불 안으로 들어갈수록 안전하기라도 한 것처럼 자꾸만 이불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 이불을 당기지 말라고 실랑이가 벌어져서 아이들은 안간힘을 쓰면서 제 쪽으로 이불을 힘을 주어 당기고 있었다.
그 실랑이를 벌이는 와중에 주인집 아들, 근하가 밖에서 아이들을 놀려댔다.
" 홍콩할매귀신이 남산에서 내려와서 저쪽 삼거리까지 왔다는데. 아까 라디오에서 나왔어. "
아이들은 또 그 말을 믿었다. 이제 아이들은 겁에 질려서 어쩔 줄을 몰랐다. 금방이라도 방문이 열리고 홍콩할매귀신이 쑥 들어올 것만 같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는 홍콩할매귀신 이야기가 유행이다. 비행기를 타고 가던 할머니와 고양이가 사고로 추락했는데 둘의 영혼이 합쳐지면서 홍콩할매귀신이 만들어졌다. 그 홍콩할매귀신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할머니처럼 보이지만 길에서 아이를 만나면 그 아이를 붙잡고 혈액형을 물어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홍콩할매귀신이 가장 좋아하는 혈액형이 A형인데 문제는 아이들이 모두 A형이라는 것이었다.
가장 언니인 정숙이 동생들을 달래야 할텐데 정숙은 사실 가장 겁을 집어 먹고 있었다. 얼마전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어떤 아이가 교실 뒤에 있는 나무에 홍콩할매 귀신이 앉아 있는 것을 봤다고 하는 바람에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울면서 복도를 뛰어다니고 계단을 올라가고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결국 학교에서는 방송을 했다. 빨리 교실로 들어가라고 홍콩할매귀신은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홍콩할매귀신을 봤다는 아이는 제법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했고 이제 아이들은 완전히 홍콩할매귀신 이야기에 빠져서 홀딱 믿게 된 것이다.
엄마와 정혜가 나간 집에서 아이들 셋은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고 떨고 있었다. 아빠가 들어오면 좀 나을까 생각을 했다가 아이들은 이내 아니다 싶었다. 아빠가 불쑥 들어오면 그것도 큰일이었다. 아빠가 들어오면 불편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다. 더구나 엄마가 없을 때 아빠하고만 있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홍콩할매귀신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아빠하고 있는 것이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다. 아이들은 주인집 근하 오빠가 같이 있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근하는 자기네 마루에 앉아서 아이들 겁을 주는 소리만 연신 해 대다가 중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아이들은 근하 오빠도 부럽고 근하 오빠네 마루에 미닫이 중문도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왠지 홍콩할매귀신이 발견하지 못하고 갈 것만 같은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은 울먹이면서 밤을 새웠다. 막내동생이 혹시라도 죽어버릴까 그것도 무섭고 이 깜깜한 밤에 홍콩할매 귀신이 들이닥칠까 그것도 무서웠다. 아이들은 이불을 중간에 놓고 서로 모여 앉아 있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덜 무서웠다. 그렇게 꾸벅꾸벅 조는 사이에 아침이 되었다.
그리고 미선이 돌아왔다. 정혜도 같이였다. 정혜는 다행히 죽지 않았다. 정혜가 그렇게 열이 펄펄 끓고 아팠던 이유는 요로 신염이라는 병 때문이었다. 미선은 그것도 모르고 정혜가 사타구니를 만질 때마다 아이에게 퉁을 주었던 일에 마음이 아팠다.
다행이다. 동생은 죽지 않았고 홍콩할매귀신도 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이제야 마음이 놓였다.
그때까지도 정호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그 후로도 정호는 자주 늦게 들어오거나 안 들어오거나 했다. 아이들은 들꽃처럼 쑥쑥 자라고 있었지만 아빠인 정호는 그걸 알지도 못했다.
아빠는 중요한 순간에 늘 부재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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