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요구

그녀의 결혼과 삶 # 11

by 느리게 걷기

막내 시동생이 미선의 집으로 들이닥쳤다.


시어머니가 보낸 것이다. 막내 시동생의 이름은 태호다. 그는 군대를 막 제대한 신분으로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형인 정호가 우유부단한 성격인데 반해서 그는 거침이 없는 성격이다. 그는 짧게 자른 머리에 날카로운 눈을 하고 있다. 그는 유순의 자식 중에서 유순을 가장 닮기도 했는데 그것은 비단 외모뿐 아니라 화가 나면 본인의 화를 주체하지 못해서 뒤로 넘어가는 그 고약한 성질까지 빼닮았다. 그의 물불 안 가리는 성질은 형수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형수가 시집왔을 때부터 시어머니인 유순에게 번번이 당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렇게 같이 사는 가족들은 내심 미선을 무시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안하무인의 성격인 막내 시동생은 특히 미선을 만만하게 보고 있었다.


그는 미선의 이사 간 집을 용케 찾아왔다. 큰길에서 좁은 골목으로 한참을 들어와서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방과 작은 댓돌이 있는 그 궁상맞은 집을 어떻게 알고 헤매지도 않고 바로 찾았다. 그는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듯이 문을 열고 집으로 성큼 들어섰다.


집에는 미선과 아이들만 있었다. 미선은 평소에도 시동생을 뜨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들도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막내 삼촌이라는 것을 알자 슬금슬금 자기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이들은 아직 코흘리개들이지만 삼촌의 성질을 알고 있었다. 삼촌은 할머니인 유순과 말싸움을 벌이면 마당에 서서 악을 쓰는 소리를 지르거나 애꿎은 개집을 걷어차는 것으로 분풀이를 하곤 했다. 게다가 조카들이 일없이 얼쩡거리고 있으면 옆으로 가서 머리통을 주먹으로 내려치기도 했다. 그러니 아이들이 삼촌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그 성질 더럽고 포악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태호는 미선의 집을 거침없이 쑥 들어와서는 바로 미선이 방 문턱에 걸터앉았다. 미선은 애써 태연한 체하면서 일단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는 형수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용건만 전하고 가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가 전하러 온 말은 말은 왜 월급 중 일부를 갖다 바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10년 동안 꼬박꼬박 월급봉투를 갖다 바치더니 이제 분가를 했다고 아예 나 몰라라 하면 나머지 식구들은 어떻게 살 거냐는 게 시어머니의 전갈이었다.


미선은 시동생과의 기싸움에서 이길 자신이 없었지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스스로 되뇌고 있었다. 10년을 갖다 바쳤으면 충분하지 않냐는 소리가 나오려고 했지만 태호의 기세에 눌려서 입 밖으로 말하지는 못했다. 태호는 그래도 월급의 절반 정도는 내놔야 할 거라고 했다. 미선은 가슴에서 불이 확 일어나는 것 같았다. 10년을 그렇게 다람쥐 도토리 빼 먹듯이 쏙쏙 빼먹었으면 되었지 않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렇다고 분가를 할 때 10원 한 장 보태준 것도 없었다. 이제 이 슬레이트 지붕 아래 방 두 칸짜리 집을 겨우 구해서 살아보려 하고 있는데 여기까지 찾아와서 다시 월급봉투 얘기를 꺼내다니. 당신들이 사람이냐고 달려들고 싶은 충동을 애써 눌렀다. 하지만 미선은 그렇게 소리를 지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레 겁에 질려서 눈만 꿈벅이며 상대방 말을 듣고 있을 줄이나 알았지 상대방의 얘기를 조목조목 따질 줄도 몰랐다.


" 삼촌, 이 집 전세금도 빌린 거고요. 집에 변변한 살림살이 하나 없어요"

" 그건 나는 모르는 일이고요. 엄마가 그렇게 전하라고 했으니 나는 그렇게 알고 갑니다. "


태호는 방에 들어와 보지도 않고 그렇게 엉거주춤 앉아 있더니 용건이 끝나자 일어났다. 그는 짧은 순간에도 마당의 어수선한 모습을 훑어보고 미선의 방안에 있는 허름한 세간살이들도 눈여겨보는 눈치였다. 혹시라도 어디 좋은 물건을 사다 놨는지 확인하고 어머니에게 가서 이르려고 그러는 것이다.


"삼촌, 그렇게는 못 합니다. 우리도 먹고 살아야지요. 내가 애들 아빠하고 상의는 해 볼 건데요.

그래도 안 될 거라요. 그렇게 전해 주세요. "


미선은 자기도 놀랄 만큼 또렷하고 큰 소리로 쏘아붙였다. 이렇게 태호를 보내 버리면 다시 무를 수도 없고 꼼짝없이 월급의 반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미선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상의를 하는 법이 없고 그들이 생각한 대로 통보를 하고 그렇게 알라고 하면 그저 그만이었다. 미선은 이제 또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세금도 갚아야 하고 아이들 먹을 쌀도 사야 하고 학교에 이런저런 명목으로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은데 더 이상 바보처럼 당하고 있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밀려왔다.


태호는 놀라는 눈치였다. 미선이 그렇게 길게 말하는 것도 처음 보았고 미선이 그렇게 또박또박 말하는 것도 처음 보았다. 태호는 벙어리가 소리를 내는 걸 보기라도 한 것처럼 멍하니 미선의 입을 보고 있었다. 그는 생각지도 못한 공격을 받은 사람처럼 한동안 그렇게 서서 할 말을 쉽게 찾지 못하고 허둥댔다. 그러다가 정신이 돌아왔는지 입으로 뭐라고 욕을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마당에 있는 빨간색 고무 다라이를 발로 힘껏 걷어찼다. 세월에 녹아 버려서 불그스름한 때처럼 부풀어 있던 빨간색 다라이는 저만치 날아가서 처박혔다. 태호는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눈치더니 더 이상은 실랑이를 벌이지 않고 대문 밖으로 사라졌다.


미선은 처음으로 자신이 큰 소리를 냈다는 것을 알았다. 미선도 큰 소리를 낼 수도 있고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미선은 긴장이 풀리자 다리에 힘이 쑥 빠지는 것 같았다. 미선은 어지러운 듯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후련하다는 생각으로 태호가 사라진 대문을 바라보았다.


미선은 앞으로 더 이상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거라고 결심을 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보란 듯이 잘 키우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이들은 영리하고 저희들끼리 잘 어울려 놀고 병치레도 하지 않았다. 미선은 갑자기 가슴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고 희망이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였다. 미선은 태호가 사라진 대문을 바라보면서 이제 그가 다시 찾아와도 더 이상 이전처럼 겁먹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빨랫줄에 걸린 아이들의 옷이 오후의 따뜻한 햇볕 아래에서 말라가고 있었다.







사진 출처: https://www.thenation.com/article/archive/black-motherhood-family-parenting-dani-mccl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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