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

그녀의 결혼과 삶 # 10

by 느리게 걷기

박씨 영감의 장례는 집에서 치러졌다. 몹시 추운 날이었다.


지방에 흩어져 살던 박씨의 5남매는 모두 시골집으로 모였다. 미선도 남편 정호와 함께 친정으로 갔다. 날이 추웠기 때문에 아이들은 집에 두고,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막내만 데려 왔다.


집에서 장례를 치르려면 할 일이 많다. 남자들은 마당에 천막을 치고 손님을 맞았다. 여자들은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마당에 커다란 솥을 내어놓고 육개장을 끓이고 고기를 삶았다.


박씨 영감은 칠 남매의 막내였고 자식은 모두 다섯이었다. 그 손님만 해도 밀고 터질 지경이었다. 거기에다 오랫동안 농사를 지으며 친분을 쌓은 공판장 직원들과 동네 어르신들까지 찾아오니 마당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마당에 있는 커다란 솥은 연신 뜨거운 김을 토해내고 삼삼오오 모여 앉은 사람들은 근황을 주고받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미선은 남편인 정호가 마음에 걸렸다. 정호는 버스를 내려 걸어올 때부터 말이 없었다. 원래 말이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오늘따라 더 말이 없었다. 그는 미선보다 서너 발자국 앞서 걷고 있었다. 미선은 아이를 업고 뒤를 따라가느라 동동거리며 속도를 내는데도 쉽게 정호와의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남편이 친정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알고 있다. 워낙 붙임성 없는 사람인 데다가 처남이나 처제들하고 사이가 돈독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박씨 영감은 죽기 전에 남편을 앉혀 놓고 호된 시집살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정호는 평소에도 처갓집 가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집안에 행사가 있어도 이유를 만들어서 참석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장인어른이 돌아가셨으니 오늘은 반드시 가야 한다. 그러니 정호는 불편한 기색을 애써 숨기지 않고 저렇게 걷고 있는 것이다. 미선은 불편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뒤를 따랐다.



밤이 깊어가도록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인심 좋게 손님 상에 음식을 넉넉히 올리다 보니 고기와 술이 부족했다. 누군가 읍내에 가서 물건을 사 와야 했다. 아들들은 조문객을 받느라 정신이 없다. 미선은 남편 정호에게 읍내에 가서 장을 봐 달라고 부탁을 했다. 막내 사위도 정호와 함께 가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미선에게 잠깐 나와보라고 했다.


미선이 앞치마에 물기를 대충 훔치고 밖으로 나와 보니 남편은 어두운 담벼락 옆에 서 있다. 남편의 얼굴을 보지도 않았는데 남편의 등이 어찌나 단호한지 미선은 남편이 화가 나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남편은 미선이 가까이 오자 갑자기 미선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미선을 집 밖으로 끌어냈다. 집을 나오면 왼쪽으로 오르막이 진 경사로가 있다. 정호는 그곳까지 미선을 질질 끌고 갔다. 그러더니 가슴팍에서 봉투를 꺼내 바닥으로 던져 버렸다. 읍내에서 장을 보기 위해 조금 전 받은 봉투이다. 그 봉투가 하얀 눈 위로 거칠게 툭 떨어졌다.


" 내가 이 집 머슴이야? 내가 네 심부름하는 사람이야?"


그렇다. 정호는 몇 시간째 앉지도 못하고 일을 돕고 있는 것이 분했다. 추운 날씨에 손도 시리고 발가락도 얼어붙는데 손님들은 끝이 없이 들이치고 있었다. 그는 몇 시간째 손님들을 맞이하고,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는 어른들한테 인사를 하느라 점점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러다가 읍내에 나가서 장까지 봐 오라는 말이 떨어지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을 한 것이다. 그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냈다. 그는 만만한 미선을 찾아 분풀이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그에게는 미선이 시집온 후부터 집에서 부리는 식모처럼 부엌일을 해 오고 있고, 가게 말단 점원처럼 가게 일을 돕고 있다는 생각은 단 1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여기에 와서 이렇게 일을 하고 고생을 할 처지인가 하는 생각에 억울하고 분할 뿐이었다.


사실 미선은 정호보다 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뜨거운 솥 옆에서 자꾸 보채는 아이를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뜨거운 불 앞에 서 있으니 온 몸에 땀이 났다가 식었다 하면서 한기가 들었다. 이러다가 내일은 몸살로 끙끙 앓아누울 것 같아 겁이 났지만 그렇다고 몸을 사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미선은 남편의 거친 목소리에 밖으로 나온 것이다.


미선은 날벼락같은 상황에 가슴이 놀라서 진정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각별한 애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죽음에 담담하기는 힘들었다. 아버지가 죽고 나니 희한하게도 잘해 줬던 일들이 떠올랐다. 새삼 아버지도 참 불쌍한 노인네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돈이 많으면 뭐하나. 자기한테는 아까워서 쓰지도 못하고 벌벌 떨면서 아들과 며느리 좋은 일만 시키고 세상을 떠나셨네 하는 생각에 자꾸 눈물이 났다.


미선은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느라 정호가 그토록 화가 나 있는 줄은 몰랐다. 남편이 희생적인 사람이 아니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장인어른 상을 치르는 날은 고생할 각오를 하고 왔으리라 생각했었다. 남편이 눈을 부릅뜨고 달려드니 날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게다가 미선이 끌려갈 때부터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마당에 불을 피워놓고 몸을 녹이고 있는 큰아버지와 사촌이었다. 그들은 모여서 불을 쬐다가 미선이 끌려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았다. 미선도 그들의 시선을 알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오늘같은 날 저런 고약한 꼴을 당하는 걸까' 그들의 눈은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가득했다. 어떻게든 상황이 더 심각해지지 않도록 막아야 했다.


" 잘못했어요."


미선은 계속 잘못했다고 빌었다. 정호는 한참을 식식거리고 서 있더니 슬그머니 눈 위에 떨어진 봉투를 주워 다시 넣었다. 미선이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니 더 이상 몰아붙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선에게 화가 누그러진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참는다 하는 심정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정호는 애초부터 미선을 자신의 인생의 동반자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자신과 동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저 미선은 아이를 낳아 키우고, 집안 살림을 하고, 집안 대소사를 챙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미선의 얼굴을 봐서 큰사위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겠다는 다짐 같은 것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는 그저 본인의 처지에 점점 불편하고 고약해져서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것으로 분을 풀고 있었다.


그러고도 손님의 발길은 오래 이어졌다. 박씨 영감은 딸들한테는 인심을 잃었지만 주변에는 인심을 잃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의 마지막을 위로하려는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찾아왔다.


정호는 새벽이 되자 미선과 아이를 남겨두고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불편하기 때문에 하룻밤도 처갓집에서 잘 수 없다고 했다. 장례식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미선은 남편이 다른 사위들과 함께 상갓집을 지키기를 바랐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일찌감치 단념해 버렸다.



그 날의 기억은 그녀에게 춥고 얼얼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녀는 그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어했지만 그 때의 기억은 입천장에 달라붙어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 엿처럼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그 후로도 그녀는 섭섭했다거나 마음이 아팠다거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그녀는 가끔 소리 없이 우는 것으로 슬픔을 달랬다. 그것은 한 마디도 내뱉을 수 없는 벙어리의 울음 같은 것이었다.



사진출처: http://www.gacc.co.kr/andong/?keyword=%EC%9E%A5%EB%A1%80&sigun=16&page=1&id=P20170000005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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