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에 입소하던 날이었다. 2월의 끝자락이었는데 눈이 펑펑 내렸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오후 내내 소담스럽고 포슬포슬하게 쏟아졌다.
그날도 나는 엄마와 둘이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학교 정문 근처에서 내렸다. 나는 이불 보따리와 짐을 들고 있었다. 짐은 무겁지 않았지만 눈길을 오래 걷느라 둘 다 지쳐 있었다. 엄마는 뭐를 좀 먹자고 했다. 그리고 뭐를 먹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돈까스라고 대답했다. 바로 근처에 Restaurant이라고 쓰인 가게가 있었다. 우리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에는 사람들이 제법 홀을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은 돈까스를 파는 경양식 집이 아니라 중국집이었다. 식당 바깥에 쓰인 글자를 다시 보니 Chinese Restaurant이었다.
내가 살던 도시에서는 중국집을 차이니즈 레스토랑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냥 왕산 짬뽕, 용호 반점, 중국관, 이런 이름으로 불렀다. 그러니 중국집에 거창하게 레스토랑이라는 이름을 붙일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왠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다른 곳을 찾는 것도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 짬뽕을 먹기로 했다. 짬뽕은 엄청나게 커다란 그릇에 담겨서 나왔다. 밖에는 눈이 내렸고 우리는 뜨거운 짬뽕을 후루룩 먹었다.
학교 정문에서 기숙사까지는 1.5킬로였다. 길은 경사가 심한 오르막이었다. 우리는 그 길을 올라갔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정문을 통과하고 오른쪽에 카페테리아 건물이 나왔다. 그 길을 따라 걷다가 도서관이 나오면 그 뒤에 있는 길로 걸어가야 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걸은 후에 기숙사 건물이 나왔다. 기숙사는 3층 신축 건물이었다. 학교 건물은 낡았지만 기숙사 건물은 한참 뒤에 지어졌는지 깨끗하고 산뜻했다.
한 방은 모두 네 명이 쓰도록 되어 있었다. 내가 배정받은 방에는 이미 한 명의 학생이 와 있었다. 먼저 온 친구는 자신의 이름이 '안녕'이라고 소개를 했다. 이름이 안녕이라니 참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사를 하면 그 친구를 부르는 것이 되고 그 친구를 부르면 인사를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엄마는 방을 살펴보고 짐을 정리해 준 다음 이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고향으로 가는 기차는 자주 운행하지 않아서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나는 엄마를 학교 정문까지 바래다 주기로 했다. 우리는 다시 왔던 길을 걸어 내려갔다. 기숙사로 올라올 때만 해도 어딘가 불안하고 초조했는데 내려가는 길은 한결 마음이 홀가분했다. 기숙사 건물도 확인하고 같이 지낼 룸메이트도 보았고 저녁에는 치킨 파티를 할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서 엄마를 배웅하고 기숙사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어렸으니 앞으로 펼쳐질 시간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가득했다. 나는 엄마가 버스에 오르는 것을 보고 손을 흔들어 보였다. 엄마는 버스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나는 엄마에게 다시 손을 흔들고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엄마는 그 날, 눈이 오는 것이 싫었다. 왠지 마음이 눈 때문에 점점 더 무거워졌다. 걸을 때마다 발이 쑥쑥 바닥으로 빠졌다. 그것이 꼭 가슴 어딘가 커다란 구멍이 푹푹 파이는 것 같았다. 엄마는 처음으로 큰 아이가 집을 나가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커다란 이불 보따리를 들고 걷는 저 아이가 정말로 집을 나가서 이제 저 혼자 살아가는 건가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하고 마음이 서늘해졌다. 가만히 보니 아이는 별로 걱정도 하지 않는다.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 것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아이가 불안한 얼굴로 기숙사가 싫다고 하면 어떻게 떼 놓고 갈 것인지 걱정했기 때문이다.
기숙사에 와서 보니 어떤 학생은 찬찬히 앉아서 이불 귀퉁이를 바늘로 꿰매고 있다. 저렇게 어른스러운 아이도 있는데 우리 집 아이는 아직도 애기 같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기숙사 방에 들어와서도 이불을 정리할 생각도 않고 여기저기 구경하느라고 얼굴에 신이 났다. 저렇게 철딱서니가 없는데 별 탈 없이 잘 지낼까 생각하니 겁도 나고 자꾸만 방정맞은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게다가 기숙사까지 오는 길은 왜 그렇게 멀고 경사가 가파른지 그것도 걱정이 되었다.
기숙사 방을 구경하고 아이 짐을 부려 놓고 집으로 가려고 하니 아이는 엄마를 바래다주겠다고 따라나섰다. 학교 정문 앞에 오니 버스가 이미 서 있다. 버스는 종점이라 사람들을 더 태우고 출발하려는 모양이었다. 아이는 엄마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되돌아 걸어가고 있다. 아이의 등이 보였다. 엄마는 버스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앞자리는 턱이 높아서 불편하지만 그래도 멀미가 조금이라도 덜 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가만히 아이 뒷모습을 보고 있다. 아이가 입은 옷이 비싼 옷이 아니라는 게 마음에 걸린다. 외투가 얇고 구겨져 있어서 그것도 마음에 걸린다. 운동화가 축축해졌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이번에 운동화를 새로 사 줄걸 그랬나 싶어서 그것이 또 후회가 된다.
엄마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만 울기 시작한다. 마음씨 좋은 버스 기사 아저씨가 당황해서 엄마를 본다. 아저씨는 엄마를 보고 부드럽게 말을 건넨다. 아니 다 큰 애를 학교에 보내고 가면서 이렇게 펑펑 울고 그래요? 엄마는 그제야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이 엄마를 흘끔거리며 바라본다. 엄마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더 이상 아이의 뒷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버스는 출발한다.
엄마는 42살이었다. 지금의 나보다도 더 젊은 나이였다. 자식 때문에 삽작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다고 말하는 엄마, 자식 때문에 도망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하던 엄마, 그런 엄마는 그 날 가슴이 벌렁거리고 자꾸만 눈물이 치받혔다고 했다. 품에 끼고 키우던 자식을 밖에 내놓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다시는 못 볼 것처럼 그렇게 엄마는 서럽고 두려웠다고 했다. 엄마는 그렇게 내내 버스 안에서 소리 죽여 울었다. 눈이 퉁퉁 붓도록 말이다.
엄마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눈이 내렸다. 시내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그 길 내내 말이다. 그래서 엄마는 그 날을 생각하면 눈이 생각난다고 했다. 소리 없이 뭉텅이로 퍼붓는 것처럼 쏟아지던 하얀 눈과 고요한 세상이 생각난다고 했다.
' 버스가 그렇게 흔들리더라. 기차역까지 가는 동안 버스가 덜컹덜컹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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