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일층에 슈퍼가 있고 이층에 살림집이 있는 이층 건물이었다. 슈퍼 옆 작은 점포는 세를 주고 있었는데 미용실이었다. 미용실 여자는 솜씨가 좋아서 손님들이 금세 불어나고 장사도 잘 되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남편과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그렇게 싸우고 던지는 바람에 살림살이가 남아나지 않겠다 싶을 때쯤 그들은 가게를 비우고 떠났다.
몇 달 동안 가게가 비어 있자 아버지는 이번 기회에 가게를 넓히고 싶어 했다. 슈퍼 내부가 좁기는 했다. 진열장에 물건을 다 놓지 못해서 창고에 일부 물건들을 쌓아 놓기도 했었다. 그런데 엄마는 반대를 했다. 동네 슈퍼에 와서 손님들이 찾는 물건이야 늘 정해져 있으니 굳이 진열대를 늘리기 싫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대신 가게에 딸려 있는 방을 넓히고 싶어 했다. 그 방에서 제사 음식 준비도 하고 늙은 호박이나 말린 무우 손질도 해야 하니 방을 널찍하게 넓히고 싶다고 했다.
가게 사이에 벽을 허물고 방을 넓히는 공사는 의외로 간단했다. 며칠 만에 번듯한 방이 생겼고 엄마는 이제 숨통이 트인다고 좋아했다. 그전에 방은 성인 세 명이 나란히 누우면 더 이상 공간이 남지 않을 정도로 좁았다. 그 공간에서 여섯 식구, 가끔은 더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했었다. 엄마는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했다. 손님이 있든 없든 가게는 늘 열려 있어야 했다. 손님이 와서 가게 문이 닫혀 있는 것을 보고 돌아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하루 종일 손님이 없는 휴일이나 눈이 이불처럼 쏟아지는 날에도 가게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엄마는 그 방에서 음식들을 손질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그러다 지겨우면 누워서 낮잠을 잤다가 일어나서 방을 주섬주섬 정리하였다. 방에는 커다란 옥매트가 깔려 있고 그 위에는 얇은 담요가 항상 펼쳐져 있었다. 방에는 특별한 장식품이라고는 없이 소박하고 단정했다. 마치 매일 머리를 감고 곱게 드라이하는 엄마처럼 방은 화려한 맛은 없었지만 수수한 멋이 있었다. 벽에는 커다란 거울과 달력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방을 넓히는 공사가 끝나고 나자 우리 집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바로 엄마와 같은 계에 속해 있던 계원이나 근방에 살고 있던 아줌마들이었다. 엄마가 나이를 먹듯이 그 아줌마들도 나이를 먹어서 아줌마와 할머니 사이 어디쯤 되는 나이가 되었다. 그 아줌마들도 젊은 시절에는 다들 맹렬하게 삶의 의지를 불태우던 사람들이었다. 채소 가게 사장님, 의상실 사장님, 감자탕 집 요리사, 이런 이름들이 그녀의 이름표였지만 이제 다들 아픈 무릎과 허리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집에 들어앉게 되었다.
그 아줌마들은 가게에 딸린 방이 넓어진 것을 알고 자주 찾아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두 명이던 사람들은 점차 늘어나서 다섯 명 정도의 고정 멤버가 생겼고 그들은 매일 오후 2시쯤 되면 가게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참 묘한 것이 방 안에 주욱 둘러앉아서 담요 아래로 다리를 집어넣고 이야기를 나누는 아줌마들의 관계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거기에 또 진정한 우정의 감정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인구 몇 만도 되지 않는 작은 도시에 산다는 것은 무료하고 건조한 일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매일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긍정적인 호기심보다는 자극적인 악의 같은 것을 품고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네 재산이 더 많고 누구네 남편이 더 돈을 잘 벌고 누구네 자식이 더 잘 되었는지 그런 것에 관심이 많았고 그런 관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비교 요인 중에 남편에게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있는 여자인가 하는 것도 해당이 되는 모양이었다. 엄마는 자주 그런 말을 했다. 모여서 노는 사람 중에 나처럼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더라. 다른 사람들은 남편이 전화를 하고 직접 차로 데리러 오더라.
그래서일까 엄마는 아줌마들하고 어울리면서도 어딘가 편해 보이지가 않았다. 동등하게 웃고 농담을 던지고 해도 될 텐데 엄마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굳어진 버릇 같은 것이었을까. 이미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 버릇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일부가 되어 버린 그런 몹쓸 버릇 말이다. 엄마는 아줌마들에게 약점이라도 잡힌 사람처럼 쩔쩔맸고 아줌마들이 시키는 사소한 심부름도 선뜻 나서서 했다.
아줌마들이 매일 가게를 찾아오면서 엄마의 말 못 할 고민은 깊어갔다. 아줌마들이 올 때마다 엄마는 커피 믹스를 뜯어서 커피를 타 줬는데 매일 사람들이 커피 한 두 잔을 마시니 새로 뜯은 커피 믹스가 며칠을 가지 못했다. 사람들이 출출할 때 내어 놓는 과일이나 고구마 같은 주전부리도 감당이 되지 않았다. 가끔 몸살기가 있거나 낮잠이 올 때도 찾아오는 사람을 마다 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엄마는 억지로 앉아서 아줌마들을 맞았다.
엄마는 참 그럴 때 보면 바보 같아. 그게 고민할 일이야? 사람들한테 먹을 걸 가지고 오라고 하거나 회비를 거둬서 커피를 사놓자고 하면 되지. 내 말에 엄마는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왜 점점 엄마에게 화가 났을까. 엄마 이제 바보처럼 그러지 말고 할 말은 하고 살아.
' 내가 그렇지. 사람들한테 그런 말 못 하지. 내 성격이 그렇잖아.' 나는 어느 새 엄마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아줌마들에게 지어 보여야 할 성난 표정을 엄마에게 지어 보였다. 엄마는 멋쩍게 웃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1년 동안 공기업 입사 준비를 했다. 번번이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몇 번은 아슬아슬한 점수 차이였다. 행운의 여신은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한 명 두 명씩 취직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마음은 점점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나중에는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지경까지 왔고 마음은 참담해졌다.
일 년 동안 준비한 시험 날짜가 되었다. 경쟁률을 확인하니 거짓말 같은 숫자였다. 시험을 보기도 전에 마음은 이미 지레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섰다. 하필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코가 완전히 막혀서 말할 때마다 코맹맹이 소리가 나왔다. 머리는 무겁고 어지러웠다. 나는 시험 보는 내내 식은땀을 흘렸고 중간에는 책상에서 필통을 떨어뜨렸다. 필통은 떨어지자마자 깨져 버렸다. 나는 처참하게 깨진 필통을 보면서 이번 시험도 글렀구나 싶었다.
시험을 엉망으로 망친 그 날, 나는 집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날씨는 매서웠고 바람은 시종일관 마구 불어댔다. 집으로 갈 생각이 아니었는데 나는 어쩌다가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가게 문은 닫혀 있고 이층에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대문 앞에 서 있었다. 벨을 눌러야 했다. 누군가 문을 열어 줬어야 했으니. 그러나 나는 벨을 누르지 못했다. 부끄러움과 미안함과 죄스러움과 정의할 수 없는 무수한 감정들이 서서히 지나갔다. 나는 그렇게 30분 가까이 서 있다가 결국에는 추위에 굴복 당해서 벨을 눌렀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란 엄마의 목소리와 계단을 허겁지겁 내려오던 엄마의 슬리퍼 소리가 기억이 난다. 나는 컴컴한 계단 벽을 더듬거리며 위로 올라갔다. 추위에 오래 떨었던 때문이었을까. 나는 지독한 감기로 끙끙 앓았다. 겨우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낮이었고 나는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가게로 내려갔다.
참으로 염치가 없게도 배가 몹시 고팠다. 엄마가 뭘 먹고 싶냐고 물었는데 통닭이라고 대답을 했다. 시장 통닭은 금방 도착을 했다. 엄마는 바닥에 신문지를 펴 주었다. 그 위에 통닭 봉투를 뜯어서는 천천히 먹으라고 했다. 감기 때문에 목이 붓고 코도 꽉 막혀 있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통닭이 술술 들어갔다. 부끄러운 청춘은 그렇게 통닭을 먹었다.
그때였다. 가게 문이 드르륵 열리고 익숙한 얼굴들이 가게를 들어섰다. 나는 왜 그렇게 당황했을까. 마치 죄를 짓고 숨어 있다가 들킨 사람처럼 말이다. 벌써 일 년이 넘도록 시험 준비만 하고 있는 나에게 혹시 준비되지 않은 질문을 던지면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 것인가. 나는 숨을 곳을 찾는 사람처럼 두리번거렸고 눈은 불안하게 흔들렸다. 엄마가 일어섰다.
" 오늘은 우리 집에서 못 놀아. 큰 딸이 왔어."
엄마는 큰 딸이라는 말에 특히 힘을 주었다. 엄마가 생전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던 사람이었던가. 나는 어딘가 단호하고 결연한 엄마의 목소리에 놀랐다. 방 앞으로 다가오던 아줌마들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고 나갔다.
엄마는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바깥바람이 왜 이렇게 차냐. 엄마는 문을 닫았다. 너는 어서 먹어라. 누가 오는 거 신경 쓰지 말고 천천히 먹어라.
엄마는 전 날 시험을 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묻지 않았다. 엄마가 묻는다면 기대하지 말라는 대답을 했겠지. 그런 대답을 입 밖으로 밀어내는 것은 마음이 아픈 일이다.
나는 다시 통닭을 먹기 시작했다. 엄마는 먹지 않았다. 엄마는 그냥 조용한 그림처럼, 따뜻한 손길처럼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림: 이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