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의 사진이 거의 없다. 카메라가 귀했던 시절이고 사춘기라서 사진 찍는 것을 질색했기 때문이었다. 사진 속 학생은 아주 모범적이지만 다소 고지식해 보인다. 잔머리가 하나도 없이 빗어 넘긴 머리며 두꺼운 안경이 그런 인상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 준다. 앞머리는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로 돌돌 말아서 이마 위에서 달랑거리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에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사진 속 여학생이 아주 건장하고 통통하다는 것이다. 그 점에 나는 새삼 놀라고 이상함을 느낀다. 왜냐하면 나는 그 시절의 내가 건장하고 통통하다는 생각을 거의 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늘 입버릇처럼 " 애가 약해서 큰일이다" 거나 "요즘에 통 먹지를 않네"하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을 거치면서도 내가 뚱뚱하다거나 과체중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중학교 때 갑자기 불어난 몸무게 때문에 학교 조회 시간에 쭈그려 앉다가 얇은 여름 바지가 쭉 찢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도 엄마는 바지 원망을 했을 뿐 볼이 터질듯한 나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청구도 하지 않았다. '역시 싼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 바지를 싸다고 샀더니 얼마 입지도 못하고 이 사단이 났구나' 하고 엄마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다른 바지를 건넸다. 나 역시 다른 바지로 갈아 입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학교로 돌아갔다. 그러니 살이 쪘다고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었고 밥을 평소보다 적게 먹는 날이면 (그래도 정량 초과였지만) 엄마는 심하게 걱정을 했다.
고등학교 때는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팠다. 아침을 먹고 와도 10시만 되면 배가 푹 꺼져서 매점으로 달려가서 딸기 우유와 빵을 사 먹었다. 점심 반찬이 좀 괜찮다 싶은 날에는 3교시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미리 까 먹었다. 점심은 매점에서 컵라면을 사서 국물까지 해치웠다. 그렇게 먹성이 좋던 학생이었으니 아침을 굶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쯤 되자 못된 버릇이 생겼다. 그것은 마치 내가 엄마를 위해서 공부를 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엄마에게 제멋대로 성질을 부리고 유세를 부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았는데도 아직 밥솥이 돌아가고 있으면 그냥 나가겠다고 하고 집을 나와 버리는 것이었다. 엄마가 목청이 터져라 이름을 부르며 따라 나와도 뒤도 돌아보지 않는 못된 성질 머리는 자전거에 올라타고 페달을 밟아서 엄마로부터 멀리 달아났다.
그러다가 학교에 가서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기라도 한 것처럼 배가 고파서 머리가 띵하고 기운이 빠지면 엄마를 원망하며 투덜거리곤 하였다. 엄마 때문에 밥을 못 먹어서 오늘 컨디션이 안 좋고 그래서 공부가 잘 안 되면 이건 모두 엄마 탓이라는 과다 망상까지 이어지는 사고의 전환은 도무지 끝갈데 없이 이어져서 나중에는 저녁까지 이 화를 삭이지 않고 고스란히 집으로 가지고 가야겠다는 이상한 오기까지 발동 하였다.
그러면 교실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야, 너네 엄마가 주래. 그리고 그 친구가 내미는 것은 작은 도시락 통이었다. 점심 도시락은 아침에 내가 들고 왔으니 이 친구가 건네주는 것은 그러니까 나의 아침 도시락인 것이었다.
엄마는 아침밥도 먹지 않고 줄행랑을 친 나 때문에 조바심을 내다가 기어이 도시락을 직접 들고 학교까지 배달을 왔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5키로 정도 되었다. 학교는 시내를 벗어나서 외곽에 있었다. 옆에는 장례식장이 있고 넓은 논이 한참 동안 이어지는 곳이었다. 우리는 모두 자전거로 통학을 했다. 집에서 자전거를 타면 학교까지 20분쯤 걸렸다. 그나마도 날씨가 좋은 날이야 자전거 통학이 재미있는 일로 생각이 되지만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날 자전거를 타고 학교 가는 길은 아주 고난의 시간이었다.
한 손으로는 우산을 받혀 들고 한 손으로는 자전거 핸들을 잡고 자전거 앞 짐칸에는 책가방을 넣고 핸들 옆에는 도시락이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다. 우리는 다들 자전거의 달인이었고 가끔은 양 손을 다 핸들에서 떼고 자전거를 타는 곡예를 선보이다가 근처 도랑에 빠지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나 바람이 부는 날, 자전거를 타 보시라. 바람이 두 배쯤은 더 세게 얼굴에 부딪힌다. 머리는 마구 헝클어지고 가슴팍과 다리까지 벌벌 떨릴 정도로 한기를 느끼면서 앞으로 나가는 것은 몸이 오싹할 만큼 춥고 힘든 여정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그 황량하고 추운 길을 달려온 것이었다. 부서지듯이 문을 내던지고 가 버린 딸한테 따뜻한 아침을 먹여야 된다는 생각으로 자전거를 타고 바람처럼 온 것이었다.
엄마는 카레에 단 맛을 내려고 고구마도 큼직하게 잘라 넣었다. 밥을 비벼 먹도록 국물까지 넉넉하게 넣었다. 그렇게 자작하게 끓여낸 카레는 혹여나 국물이 샐까 봐 밀폐 용기에 잘 담겨서 엄마와 함께 학교로 왔다.
친구 누군가가 1층에서 받아서 전해 주는 카레를 받으면 그제야 민망한 생각이 들었다. 뜨끈뜨끈한 통을 열어 보면 카레는 금방 냄비에서 펴낸 것처럼 김이 펄펄 나고 있었다. 나는 아침 자습이 시작하기 전, 10분의 짬을 내어서 그 카레를 먹었다.
부드럽고 뜨거운 카레의 향이 서서히 퍼져 나갔다. 엄마는 자전거를 타고 그 철로 옆을 달려서 왔겠지. 엄마도 나처럼 바람을 정면으로 받으면서 달려왔을까. 두꺼운 잠바를 입지 않고 집에서 늘상 입고 있는 얇은 보라색 잠바를 입고 왔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꼬리를 물고 하나씩 나타났다 사라졌다가 했다.
그런데 그토록 추운 날에도 카레는 하나도 식지 않았다. 엄마는 이렇게 맹렬하게 추운 날에 어떻게 카레를 뜨거운 채로 가지고 왔을까. 엄마는 참으로 재주도 좋다.
그렇게 학교에서 책과 졸음과 씨름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훌쩍 저물고 저녁이 되었다. 이제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엄마가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왔던 그 좁고 황량한 길을 이번에는 내가 달린다. 그러나 매서운 바람에도 나는 그다지 춥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집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