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인공관절 수술을 받고 나서 시골로 내려갔다. 시골에 있는 재활병원에 입원을 하기 위해서였다. 딸들은 엄마가 서울에서 치료를 받기를 원했다. 서울에 있는 병원의 시설이나 의료진이 월등하게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는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 있는 것이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엄마의 고집을 아무도 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엄마는 결국 시골에 있는 작은 요양 재활병원에 입원을 했다.
처음 얼마간은 엄마 입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병원 밥이 형편없다거나 물리 치료사가 서투르다거나 그런 불만이었다. 같은 병실에 있는 환자들도 서먹서먹하고 불편해서 오래 있기 힘들 것 같다고 걱정을 했다.
그런데 웬걸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엄마와 통화를 할 때마다 엄마의 목소리가 조금씩 밝아지고 톤이 높아지는 것이었다. 촌에 있는 병원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엄마는 다른 환자들과 치킨이나 족발 같은 바깥 음식을 시켜 먹는 모양이었다. 처음에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던 사람들과 음식을 시켜 놓고 자식 이야기나 살아온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금세 친해졌고 서로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엄마는 기숙사에 처음 들어간 여학생처럼 설레는 것 같았다. 어떤 날은 쌈장에 풋고추와 쌈야채를 펼쳐 놓고 다 같이 밥을 먹었는데 느글거리던 속이 확 풀렸다고 했다. 이제 병원에 있는 걸 걱정하는 게 아니라 퇴원해서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돌아갈 일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엄마는 참으로 신기한 일이라고 말을 꺼냈다.
" 나는 얼굴도 시커멓고 손도 못생겼고 말주변도 없잖냐. 그러니까 네 아버지도 나를 안 좋아하고 할머니도 나를 안 좋아하고 그랬겠지. 그런데 여기 병원에서는 사람들이 다들 나를 좋아한다. 참 신기하지?"
엄마는 그런 자랑 섞인 소리를 하는 게 부끄러운지 수줍어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딸한테 자랑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같은 병실에 환자들하고 지내면서 엄마보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도와 주기도 하고 음식도 인심좋게 나눠 먹다 보니까 병실에서 인기가 좋다고 했다. 엄마는 그 말을 하면서 기분이 좋은지 연신 중간에 간간이 웃음을 섞었다.
처음 엄마 옆자리는 90이 넘은 할머니였다고 했다. 엄마하고 잘 지냈는데 어느 날 다른 병실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마 병원에서는 대소변을 가리는 환자와 기저귀를 차고 있는 환자를 분리해서 관리했던 모양인데 그 할머니가 대소변을 못 가리니까 더 중증환자들이 있는 병실로 옮기라고 한 것이다. 할머니는 엄마와 같은 병실에 있고 싶다고 울면서 간호사한테 졸라대는 바람에 여러 사람이 난처했다고 했다.
" 그 할머니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 내가 퇴원하는 날에는 새로 산 슬리퍼 하나 하고 먹을 거를 주고 왔는데 그때도 계속 우는 거라.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하고 우는데 나도 눈물이 나와서 아주 힘들더라. 세상에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좋아해 주니까 참 이상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그런데 기분은 참 좋다"
엄마는 어쩌면 집보다 병원에서 더 행복한 것 같기도 했다. 생전 누리지 못했던 인기도 누려보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 재미있고 사람 사는 것 같다고 했다.
아주 예전의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엄마와 나는 대전역에서 가락국수를 먹었다. 아주 추운 겨울이었고 우리는 둘 다 기차역 플랫폼에서 칼바람을 맞고 있었다. 기차를 기다리는 플랫폼에 가락국수를 파는 작은 부스가 보였다. 우리는 춥고 배가 고파서 가락국수를 주문해서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기차가 들어오는 바람에 기차를 놓칠세라 허둥지둥 서둘러 기차에 올랐다. 엄마는 자리를 찾아서 앉고 나자 갑자기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국수값을 계산하지 않고 왔다는 것이었다. 그때 국수는 한 그릇에 2500원가 했던 것 같다. 이렇게 추운 날 그 성냥갑 같은 좁아터진 부스 안에서 국수를 말아서 장사하는 사람한테 그 돈을 안 주고 왔으니 어떻게 해야 하냐고 엄마는 발을 동동거렸다.
엄마가 며칠 동안 노이로제 걸린 사람처럼 가락국수 얘기를 하는 바람에 나는 몇 주 후 그 국수 부스를 일부러 찾아갔다. 국수를 먹고 돈을 안 내고 왔다고 하니 그 아줌마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 국수는 선불이기 때문에 돈을 안 냈을 리가 없는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줌마는 국수 두 그릇의 값을 받아서 챙겼다. 아차 싶었다. 생각해 보니 국수는 선불이었고 엄마와 나는 미리 돈을 치르고 국수를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국수를 먹고 허둥대며 기차에 오르다 보니 돈을 안 주고 온 것으로 엄마와 나는 착각을 한 것이었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국수 한 그릇도 절대로 떼어먹지 말라고 가르친 사람이었다. 받으면 그보다 항상 더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친정집 맞은편에 한식당이 있는데 그 식당 아줌마가 누룽지를 몇 번 가져다주었다. 엄마는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면서 근처 식육점에 가서 소고기를 두 근 사다가 갖다 주었단다. 그 식당 아줌마는 누룽지를 보내고 소고기를 받는 경우가 어디 있냐고 못 받겠다고 하고 둘이 그렇게 실랑이를 벌인 모양이었다.
엄마는 왜 항상 미안해하고 지나치게 고마워했을까. 누군가 자기에게 호의를 베풀면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쩔쩔매면서 다시 되갚아야 마음이 편하다고 했을까.
아마 그것은 엄마가 제대로 된 인정과 사랑을 받지 못해서일 것이다. 어린 시절에 외할아버지에게 받았던 엄격하고 냉정한 훈육과 결혼 생활 내내 무심하고 무관심했던 남편의 냉랭함과 시부모의 철저한 무시 때문에 엄마는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자꾸만 깎아내렸던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엄마는 일찌감치 스스로를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로 규정해 버렸다. 다른 사람들의 부당함과 몰인정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순응하면서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엄마는 병원에 입원하고 모처럼 누리는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이 신기하고 행복해서 아이처럼 좋아하고 즐거워했던 것 같다.
엄마는 알고 있을까. 엄마가 좋은 엄마이기 이전에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하나를 받으면 두 개를 주라고 가르쳤던 엄마, 가게에서 카스테라를 구워서 물건을 사러 오는 손님들에게 하나씩 안겨 주던 엄마,
내 기억 속에 엄마는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마음이 약하고 가끔 추스르지 못할 정도로 눈물이 많은 것도 모두 엄마를 닮은 것이리라.
엄마에게 이제 말할 수 있을까. 엄마는 좋은 사람이라고 그래서 엄마는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엄마한테 상처 주고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 모질고 못나서 그런 것이지. 그런 냉대가 당연 할리도 없고 당연할 수도 없다고 말이다.
이런 말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아마 쑥스러워서 말하려다가 그냥 포기 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다시 용기를 내어서 말할 것이다. 엄마는 좋은 사람이라고 사랑받기 충분한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