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영혼의 음식, 골금짠지

# 엄마의 반찬

by 느리게 걷기

무말랭이를 경상동에서는 골금짠지라고 부른다. 골금짠지는 무우를 잘 말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볕 좋은 옥상에 무우를 펴서 말린 후에 고춧가루, 찹쌀풀, 까나리 액젓 같은 재료들을 잘 버무리면 골금짠지가 완성된다. 엄마의 골금짠지는 일반 무말랭이와 조금 다른 부분이 있었다. 엄마는 다른 사람들보다 무우를 큼지막하게 잘랐다. 씹는 맛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무우를 말릴 때도 신경을 많이 썼다. 무우를 완전히 말리면 너무 질겨져 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무우는 약간 덜 마른 것 같다 싶을 때 얼른 거둬 와서 양념을 버무려야 한다고 했다.


나의 도시락에는 언제나 골금짠지가 있었다. 골금짠지와 멸치 볶음, 골금짠지와 깻잎, 골금짠지와 김, 골금짠지와 오이 소박이, 골금짠지와 김치 볶음, 골금짠지와 고구마 줄거리 볶음. 언제나 골금짠지는 붙박이었다. 다른 반찬들이 조금씩 바뀌는 동안에도 골금짠지는 언제나 반찬통 한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도시락 통을 열어 보면 얕은 한숨이 나왔다. 그때는 골금짠지가 지긋지긋했다. 다른 친구 엄마들은 센스 있는 도시락통을 들려 보냈다. 친구들 도시락 통에는 쏘세지나 불고기 같은 반찬들이 자주 등장했다. 그러나 엄마는 골금짠지가 몸에 좋다고 강조했다. 비타민 C가 웬만한 과일보다 많다고 TV에서 봤다는 말도 여러 차례 했다. 어쨌든 도시락을 싸 주는 사람은 엄마였고 우리는 투덜거리기는 해도 엄마가 들려 주는 도시락을 얌전하게 들고 학교에 갔다.


엄마는 매년 많은 양의 골금짠지를 만들었다. 커다란 김치통에 몇 통이나 되도록 만들어 놓고 딸들에게 택배로 그것을 보냈다. 골금짠지가 들어 있는 통에는 작은 라벨지가 붙어 있고 거기에는 네 딸들의 이름이 가지런히 쓰여 있다. 그나마 요즘에는 그게 귀찮았는지 1번, 2번, 3번, 4번 이런 식으로 번호를 매겨서 딸들에게 골금짠지를 보내 주었다. 그렇게 번호를 매겨 놓지 않으면 정신이 없어서 누구에게 보내고 안 보냈는지 자꾸 헷갈린다고 엄마는 말했다.


엄마가 보내 주는 택배 상자를 열어서 골금짠지 통을 발견하면 그다지 반갑지가 않았다. 요즘은 밖에 나가면 맛있는 음식들이 많고 새로운 음식이나 퓨전 요리도 참으로 많다. 그런 음식들을 다 맛보기도 힘들 뿐더러 퇴근이 늦어서 대충 때우다 보면 엄마가 만들어서 보내는 골금짠지를 챙겨 먹을 시간도 마땅치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일일이 반찬통에 골금짠지를 담고 택배 상자를 구해다가 포장해서 보내는 일은 또 얼마나 수고로울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제 허리가 굽고 다리도 불편한 엄마가 그런 번거로운 일을 그만하고 마음 편하게 지냈으면 하는 게 딸들의 공통된 바램이었다.



그런데 그 푸대접만 받던 골금짠지의 처지가 바뀌는 일이 생겼다. 코로나 때문에 여직원들이 도시락을 싸서 다니기로 하였다. 회사 3층에 여직원 휴게실이 있는데 그 곳에서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도시락을 싸 와서 먹기로 한 것이었다. 집에 마땅한 반찬도 없던 터라 나는 계란 후라이 2개와 골금짠지를 싸서 회사에 들고 갔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도시락을 쭉 펴 놓고 밥을 먹는데 직원들이 골금짠지 맛을 봐도 되냐고 물었다.

" 그럼요. 얼마든지요. 그런데 별로 맛있지는 않아요."

직원들 몇이 골금짠지를 먹어 보더니 어디에서 샀냐고 물었다. 회사 건너편에 있는 유명 반찬가게에서 산 거냐고 했다. 회사 건너편에 유명한 반찬가게가 하나 있다. TV에도 여러차례 출연한 집이다. 나는 아니라고 이건 얼마 전 시골에서 올라온 거라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직원들은 너무 맛있다고 몇 번이나 감탄을 하는 것이었다.

' 이 골금짠지가 그렇게 맛이 있었나?' 나는 새삼스러운 마음으로 골금짠지를 먹어 보았다. 역시 엄마가 알맞게 무우를 말리고 양념을 하기는 했다 싶었다. 오드득 씹는 맛이 있으면서 양념도 적당히 잘 배어 있었다.


사람들은 나의 골금짠지가 무척 맛있는 모양이었다. 혹시 돈을 내고 살 수는 없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집에서 늘 푸대접을 받던 골금짠지가 웬일로 회사에 나와서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게 되니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다들 맛있다 맛있다고 하니까 골금짠지가 정말로 그렇게 맛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서 자꾸 꺼내 먹다 보니 정말로 맛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심하게 끓인 콩나물국이나 배추를 듬성듬성 넣고 끓인 배춧국이나 골금짠지하고 모두 잘 어울린다. 금방 지은 밥 한 공기를 푸고 그 옆에 골금짠지와 뜨끈한 국 한 그릇을 올리면 내가 어릴 때 먹던 엄마의 밥상과 비슷한 밥상이 뚝딱 만들어진다.


오늘 엄마가 도시락통에 넣어 주던 골금짠지를 다시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분주한 주방의 풍경을 그려 본다. 쉽게 만드는 인스턴트 반찬 하나 없이, 그저 지지고 버무리고 무쳐 내며 바지런히 음식을 만들던 투박하고 정성스러운 손을 생각해 본다. 밥을 푸고 밥상에 그릇을 올리던 젊디 젊은 엄마의 뒷모습을 생각해 본다.



" 이제 내 골금짠지가 인기가 없나 보다. "

얼마 전 통화할 때, 엄마는 골금짠지가 인기가 없어서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고 했다. 가게 앞에 박스를 얻으러 오는 할아버지한테 한 통을 드렸는데도 아직 남았다고 걱정을 했다.


이번에 시골집에 가면 그 골금짠지를 가지고 와야겠다.

밥상 위에 언제나 친근하게 올라가 있던 골금짠지, 어린 시절 상처 받고 힘든 순간마다 뜨거운 국과 함께 밥상에 올려졌던 그 골금짠지의 온기를 담뿍 얻어서 돌아와야겠다.




사진: 엄마의 골금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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