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처음으로 학교에 온 날

by 느리게 걷기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 반에 한 남자아이가 전학을 왔다. 우리보다 키가 한 뼘은 더 큰, 그 아이는 11살이었다.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문제를 저질러서 강제 전학을 당한 아이였다. 키가 크고 검붉은 피부에 어딘가 아이 같지 않은 눈빛을 가진 아이는 비어 있던 책상으로 안내를 받았고 그 자리는 바로 내 옆 자리였다.

나보다 두 살이나 많았던 그 아이는 언제나 거친 욕을 입에 달고 살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머리를 때리거나 팔꿈치로 나를 심하게 밀었다. 나는 겨우 9살이었다. 나보다 훨씬 키가 크고 우악스러운 그 아이에게 어떻게 대항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고 점점 학교 가는 것이 두렵게 느껴졌다.


그 무서운 아이와 짝꿍을 하며 지내는 시간이 끔찍했지만 그래도 학년이 바뀌면 이런 고통도 끝이 날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3학년이 되면서 정말로 그 아이와 나는 반이 갈렸다. 나는 다행이라고 좋아했다. 그러나 불행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았다. 그 아이는 이번에는 나를 괴롭힐 아이를 지정했다. 나와 같은 반이 된 남자아이 중에서 장난기가 심하고 말썽을 피우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그 역할을 맡았다.

처음 시작은 도시락 테러였다. 나는 엄마가 사 준 새 보온 도시락통을 들고 학교에 왔다. 그 전에는 어디에서 얻어온 낡은 도시락통을 줄곧 들고 다녔기 때문에 나는 새로 산 도시락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도시락통을 열었을 때 나의 얼굴은 울상이 되어 버렸다. 밥이 들어 있어야 할 통은 텅 비어 있고 쓰레기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누구의 소행인지 짐작을 했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속으로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그 후로도 그 아이들은 나를 계속 괴롭혔다. 청소 시간에 하얀 고무 실내화를 나의 얼굴에 던지기도 하였다. 하필 그 실내화는 내 뺨을 명중시켰고 나의 뺨은 벌겋게 부어올랐다. 아픈 것과 분한 감정이 뒤범벅되어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선생님에게도 엄마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아니 요청할 수 없었다. 그때 담임 선생님은 엄마가 자주 찾아오는 집 아이들만 노골적으로 예뻐했고 나 같은 아이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엄마한테는 더더구나 말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내가 학교에 입학하던 봄에 막내 동생을 낳았다. 네 번째까지 줄줄이 딸을 낳고 나서는 할머니의 구박이 더욱 심해졌다. 할머니는 엄마를 마당에 세워 놓고 자주 호통을 쳐 댔고 엄마는 한 마디도 대꾸를 하지 못하고 못 박힌 것처럼 서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엄마가 가엾게 느껴졌다. 그래서 차마 엄마에게 내가 힘들다는 말이나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아이들의 괴롭힘은 점점 심해졌다. 나중에는 학교가 파한 뒤 학교 뒤 숲 속 교실로 나를 불러내서 괴롭혔다. 학교가 끝날 때가 되면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두려웠다.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었는데 그 아이들이 교문에서 딱 버티고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빠져나갈 구멍도 없었다.


나는 학교가 싫어졌다. 학교에 가서 그 녀석들이 나를 괴롭히고 재미있다고 저희들끼리 킬킬거리는 것이 싫었다. 나한테 관심도 없고 둘 다 잘못한 거라고 말하는 이상한 선생님도 싫었다. 그러나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어린 나는 외롭고 무섭고 서러웠다. 학교가 끝나고 그 녀석들에게 끌려가서 욕설을 듣고 가방으로 한 차례 얻어맞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가슴에서 뭔가 슬픈 것이 흘러가는 것 같았다.

이 지옥 같은 시간이 끝나기는 하는 걸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답이 없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학교에서 엄마를 보았다. 나는 처음에 그 사람이 엄마인지 몰랐다. 엄마는 하얀색 블라우스에 무릎 아래까지 오는 스커트를 입고 비둘기색 단화를 신고 있었다. 엄마가 그런 옷을 입은 것을 처음 보았을 뿐 아니라 그런 옷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 날 처음 알았다.

엄마는 누구를 찾는지 옆에 있는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묻는 눈치였다. 그리고 엄마는 나중에 한 아이를 불러냈다. 바로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던 그 아이였다. 엄마는 그 아이를 불러내서 그 앞으로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화가 난 것 같았고 한편으로는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멀리에서 몰래 엄마를 훔쳐보았다.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왠지 자꾸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제까지 그 녀석들이 나를 괴롭히고 때릴 때 한 번도 울지 않았는데 그 날은 자꾸만 코가 시큰거리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애를 먹었다.


엄마는 그 녀석에게 몇 번이나 다짐을 받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말라고 말했을까. 아니면 또 괴롭히면 혼쭐을 내줄 거라고 얘기를 했을까.

언제나 어눌하고 말도 잘 하지도 못하던 바보 같은 우리 엄마가 저기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맞는 건가. 나는 가슴이 뛰었다가 걱정이 되었다가 어쩔 줄 몰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참고 있던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엄마가 교문을 나설 때까지 아는 체하지 않았다. 엄마는 교문을 나서고 있었다. 엄마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나는 자꾸만 눈에 뿌옇게 뭔가가 올라와서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도 엄마는 다 아는 것이다. 엄마는 원래 그런 존재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가장 절박한 순간에 나를 지켜주는 사람, 엄마는 언제나 그런 존재다. 아이일 때도 어른이 되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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