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판 글씨가 잘 보이지 않으면 안경을 써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어릴 때부터 시력이 좋았고 사물이 언제나 또렷이 잘 보였으니까 말이다. 중학교 1학년인가 즈음에 칠판에 있는 글씨들이 흐릿하고 뭉개져서 보였다. 나의 책상 자리가 교실 가장 뒤였으니까 너무 멀어서 그런 가보다 생각했다. 나중에 수업시간에 필기를 하는 것조차 힘들어지자 나는 엄마에게 안경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는 제일 먼저 안경이 얼마쯤 하는지 걱정을 하였다. 그때 안경의 가격은 지금과 비교하면 상당히 고가였다. 짜장면이 2천 원, 3천 원 하던 시절이었는데 안경은 5만 원이 훌쩍 넘었으니 말이다. 엄마는 안경이 얼마나 하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여기저기 알아보는 눈치였다. 그리고는 돈을 준비했는지 안경을 맞추러 가자고 했다. 안경점은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제일은행이 있는 사거리까지 곧장 올라가면 바로 왼쪽에 있는 큰 건물이 안경점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절대 안 된다고 고집을 부렸다. 같은 반에 있는 친구 중에 한 명이 안경을 맞출 때 반드시 안과를 가서 시력 검사를 하고 정확한 시력을 확인한 후에 안경을 맞춰야 한다고 얘기했기 때문이었다.
사춘기는 그런 나이다. 부모님이나 선생님 말은 미심쩍어도 친구들의 말은 어딘가 모르게 묘한 매력이 있어서 꼭 그 말대로 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고집스러운 나이 말이다. 엄마는 나를 살살 달래었다.
다른 사람들을 보니 안과에 가지 않고도 안경을 곧잘 맞추더라. 너무 고집 피우지 말아라. 엄마는 그렇게 좋게 말로 나를 달래 보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막무가내였다.
눈이 얼마나 중요한데 엄마는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 시력을 잘못 재서 안경을 잘못 맞추면 눈이 더 나빠지는데 그러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거야?
나는 그런 말로 고집을 부렸다. 엄마는 난처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사는 작은 소도시에는 안과가 없었다. 안과를 가려면 시외버스를 타고 45분쯤 달려서 옆에 있는 조금 큰 도시로 나가야 했다. 나를 데리고 그 도시까지 가려면 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집에서 버스 터미널까지도 30분 가까이 걸어야 했다. 걷는 것까지 다 포함을 한다면 안과를 다녀오는데만 왕복 4시간쯤 걸리는 것이었다. 집에는 엄마가 돌봐야 하는 동생들이 셋이나 있는 데 그 먼 거리를 다녀오자고 떼를 부리니 엄마는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의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안경 맞추는 것이 무슨 큰 벼슬이라도 되는 것처럼 꼿꼿하게 엄마 앞에서 고집을 꺾지 않았고 결국 엄마는 내 고집에 손을 들어 버렸다.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오자마자 엄마와 나는 서둘러서 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에는 버스 매연 냄새가 진동을 하고 먼지가 뿌옇게 앉은 버스들이 서로 출발하려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버스표를 끊어서 버스에 올랐다. 그때만 해도 버스가 고물이라 그랬는지 버스는 유난히도 덜컹거렸다. 엄마는 멀미가 아주 심한 편이었다. 짧은 거리를 갈 때도 차가 달리다 멈추면 속에서 뭐가 올라오는지 울컥하며 힘들어했다.
그런데 그 날따라 버스는 더 요동을 쳤다. 엄마는 결국 버스기사 아저씨한테 비닐봉지를 하나 얻어 왔다. 그때는 멀미를 하는 사람들이 흔해서 버스 안에 비닐봉지가 준비되어 있었다. 갑자기 멀미를 하다가 차 안에 토해 버리면 큰일이 나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비닐봉지에 머리를 처박고 몇 번이나 토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런 엄마가 창피한 생각이 들어서 창 밖을 보며 엄마를 모른 체했다.
그렇게 고생을 해 가며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안과는 버스 터미널에서 멀지 않았다. 나는 그곳에서 시력 검사를 했다. 시력 검사가 무슨 거창한 것이라도 되는 줄 알았는데 한쪽씩 눈을 가리고 숫자나 기호를 맞추는 것이었다. 간호사 아줌마의 안내에 따라 숫자를 읽다 보니 검사는 싱겁게 끝나 버렸다. 여기까지 오자고 했던 것이 살짝 후회가 될 정도였다. 그러나 내가 우겨서 온 것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일부러 꺼내지는 않았다.
안과에서 검사 결과를 받아서 나오니 늦은 오후였다. 해가 막 산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많이 걸은 데다가 저녁 식사 때가 되어서인지 배가 많이 고팠다. 버스 터미널 근처에 오니 짜장면을 파는 식당이 보였다. 외관은 허름했지만 손짜장이라는 안내가 붙어 있고 제법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나는 엄마에게 짜장면을 먹고 싶다고 했다. 평소 같으면 조금만 참고 집으로 가자고 했을 텐데 웬일인지 엄마는 나를 데리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나는 짜장면을 주문했고 엄마는 어쩐 일인지 먹지 않겠다고 하였다. 엄마는 짜장면이 느끼해서 싫다고 했다.
누빔 조끼를 입은 나이 많은 아주머니가 금방 만든 짜장면을 갖다 주었다. 단무지도 함께였다. 나는 단무지에 식초를 듬뿍 뿌렸다. 짜장면은 정말 먹기 힘든, 귀한 음식이었다. 우리 집은 형편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1년 내내 짜장면 먹을 일이 없었다. 어쩌다가 운동회날, 큰 맘먹고 식구들이 짜장면을 먹은 적이 있지만 그것도 연례행사였고 평소에 외식을 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나는 짜장면을 게눈 감추듯이 먹어 치웠다. 짜장면 면발을 잘 씹지도 않고 목구멍으로 꿀떡꿀떡 삼켜 버렸다. 돼지기름에 잘 볶은 커다란 감자 덩어리도 먹성 좋게 먹어 버렸다. 그러나 나는 짜장면을 다 먹고 나서도 못내 아쉬워서 금방 일어나지 못했다. 사춘기 여학생이었던 나는 그런 체면치레 같은 것도 없었던지 빈 짜장면 그릇을 들고 핥기 시작했다. 결국 내 앞에 놓여 있던 짜장면 그릇은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깨끗해졌다.
엄마는 그때까지도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러나 내가 그릇을 들고 핥기 시작하자 민망했는지 일부러 식당 아주머니한테 말을 걸었다.
짜장면이 정말 맛있나 보네요. 아이가 저렇게 싹싹 핥아먹는 걸 보니까요.
그때서야 뒤늦게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취학 전의 꼬마도 아니고 그렇다고 초등학생도 아닌 덩치가 커다란 여학생이 짜장면 그릇까지 핥으면서 음식을 해치운 것이 말이다. 그러나 엄마는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우리는 식당을 나왔다. 내 입술 양쪽으로는 짜장면 양념이 묻어 있었다. 칠칠치 못해서 그렇게 짜장면 먹은 티를 온몸으로 내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내 입을 닦아 주었다. 엄마는 나를 보면서 웃었다.
그렇게 짜장면이 맛있냐? 자주 사 주면 좋을 텐데.
엄마의 목소리는 어딘가 쓸쓸한 냄새를 풍겼다. 그러나 나는 그런 걸 알턱이 없었다.
짜장면 매일 먹으면 좋겠다. 진짜 맛있다. 엄마.
나는 신이 나는 몸짓으로 엄마를 따라갔다. 배도 부르겠다. 시력 검사도 했겠다. 게다가 오늘은 엄마가 완전히 내 차지였다. 집에서는 동생들이 엄마를 붙잡고 서로 자기 얘기를 들어 달라고 달라붙어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러나 오늘만은 외동딸이 된 것 같은 하루였다. 엄마를 독차지하고 엄마와 함께 짜장면을 먹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짜장면으로 잔뜩 배를 채운 나와 오후 내내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엄마는 다정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한참 세월이 지난 후에 엄마도 짜장면을 꽤나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골집에 가서 딸들이 외식하러 가자고 하니 엄마는 짜장면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 엄마는 짜장면 싫어하잖아" 우리가 엄마를 쳐다보자 엄마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 짜장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냐? 여기는 수타 짜장면이라서 특히나 맛있더라. 어서 가보자"
정말로 짜장면집에 가서 보니 엄마는 짜장면을 잘도 드신다. 양이 많다고 걱정하더니 어느새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엄마가 짜장면을 좋아한다는 것은 오래도록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 시절의 엄마는 정말로 짜장면을 싫어했던 걸까. 아니면 그저 그렇게 말했던 것일까. 아직도 답을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