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리(가명)는 1월에 우리 팀으로 발령받은 직원이다. 홍대리에 대한 글을 얼마 전에 브런치에 써 본 일도 있다. 그 후로 시간이 흘렀으니 홍대리에 대한 나의 생각은 어떻게 변했을까.
홍대리는 일단 잘생긴 얼굴이다. 키는 180이 조금 넘고 얼굴에 잡티가 전혀 없고 약간 귀티가 난다. 머리는 짧게 커트한 스타일이고 특이점은 없다. 옷차림은 주로 데님 팬츠에 타미힐피거 스타일 티셔츠나 셔츠를 코디한다. 외모가 상당히 훌륭하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홍대리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모든 팀원이 홍대리랑 밥을 먹지 않으려고 도시락을 싸오게 만드는 그 마력, 홍대리를 슬슬 피하면서 되도록이면 말을 섞지 않으려고 하는 그 이유는 바로 홍대리의 허세와 말버릇이다. 홍대리는 입만 열면 허세가 작렬한다. 자기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 몇 년 전에 CEO 표창을 받았다는 것, 자기 실적으로 팀을 먹여 살렸다는 것, 그런 얘기를 끝도 없이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홍대리는 이상한 말버릇이 있는데 누구에게나 약간 명령조로 말을 한다. 자기보다 10살 이상 연배인 사람이나 차장이나 부장에게도 그런 말버릇을 쓰는데 상대방을 무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자아낸다.
홍대리는 우리 팀으로 오면서 업무를 하나만 받았다. 그 업무는 우리 조직의 13개 팀에서 한 주간 주요 실적을 작성해서 보내면 그걸 다듬고 정리해서 상무님께 보고하는 업무이다. 그 업무는 사실 한 사람이 맡기에는 업무량이 과하게 적다. 그 업무는 사실 하루면 끝나는 업무다. 내가 이렇게 장담하는 이유는 내가 작년에 그 업무를 해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팀장은 홍대리에게 다른 업무를 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둘은 자주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데 팀장이 홍대리를 대하는 태도에는 애증이 섞여 있다. 그러니까 홍대리가 4차원이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걸 뻔히 알고 있기 때문에 팀웍을 해치는 점에서는 화가 나다가도 한편 그런 홍대리가 안쓰러운 것이다. 왜냐면 우리 팀장이 이번에 새로 오면서 홍대리를 데리고 왔기 때문에 둘은 그런 애증의 감정으로 묶인 관계이다.
그런데 금요일 오후 기분 나쁜 초대를 받았다. 우리 사무실 옆에 있는 이 부장이 나에게 커피 한잔 하러 오라고 문자를 보냈다. 이 부장은 타인에게 쓸데없는 관심이 많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는 인간적인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약간은 파충류 같은 느낌을 풍긴다. 특히 임원 앞에서 말을 할 때 눈을 양쪽으로 번갈아 돌리는데 그럴 때 그의 기묘한 행동은 뱀을 연상시킨다.
어쨌든 금요일 오후에 이 부장과 커피 한잔이라 내키지 않지만 벌써 여러 차례 거절한 전적이 있으니 나는 마지못해 이 부장 자리로 찾아갔다.
이 부장은 다른 사람들 일에 악의적인 관심과 호기심이 지대하다. 나를 갑자기 부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서 이 부장은 술술 자신의 관심사를 드러낸다.
" 보니까 요즘 너무 열심히 하는 것 같던데. 괜한 기운 빼지 말라고 불렀지. 그 팀은 올해 보나 마나 홍대리가 승진할 텐데 한 팀에서 두 명이나 승진하기는 쉽지 않을 거야. "
이 부장의 의도가 무엇인가 나는 정신을 가다듬는다. 이 부장이 선한 의도로 나에게 그런 조언을 할 리 없기 때문이다. 과연 이 부장은 본색을 드러낸다. 이 부장은 올해 우리 팀에서 무조건 홍대리가 승진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나의 의중을 떠본다. 이 부장은 자신이 그렇게 예측하는 근거를 제시한다. 홍대리가 입사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대리라는 사실, 홍대리가 SKY 출신이라는 사실, 홍대리 입사 동기 중에 대리가 없다는 사실, 그리고 홍대리가 작년 승진에서 누락하고 나서 억울하다고 여기저기 징징거리고 다녀서 조직이 시끄러웠다는 사실, 결정적으로 우리 팀장이 홍대리와 친하다는 사실, 이 부장의 근거들은 역시 설득력이 있다.
그러니 야근하지 말고 작년처럼 휴가를 반납하지 말고 쉬엄쉬엄하라고 이 부장은 친절하게 덧붙인다. 이 부장의 얼굴에는 유치하고 비열한 호기심이 고개를 든다. 이 부장은 내 반응이 궁금하고 구경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열을 내면서 흥분할지 아니면 풀이 죽어서 슬퍼할지 나의 반응에 이 부장은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 나른한 금요일 오후에 이보다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을까 하는 표정이다.
이 부장의 호기심을 채워줄 생각이 없는 나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승진이 제 맘대로 되나요. 작년에도 겪어 봤는데 이제 이골이 났죠. 이 부장의 얼굴에는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놓친 아쉬움이 스친다. 이 부장은 한마디 더 던진다. 승진은 운칠기삼이야. 그러니까 운이 7이고 실력이 3이라는 거지.
나는 이 부장 사무실을 나온다. 역시 이 부장하고 커피를 마시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한다. 내 등 뒤에 대고 이 부장이 외친다. 힐링이 필요할 때 언제든 와요.
금요일 저녁 내내 기분이 나빴다. 홍대리와 대적해야 하다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홍대리와. 일도 하지 않고 땡땡이치고 윗사람 코드 맞추는 데만 여념이 없는 홍대리와 대적을 해야 하다니. 그런 홍대리와 대적하는 것도 약이 오르는데 그나마 내가 불리한 상황이라니. 기가 막히고 기운이 빠졌다.
밖으로 나갔다. 이럴 때는 음악을 들으면서 걷거나 뛰는 게 최고다. 운동의 효험은 거짓말 같은 것이다. 나는 1시간 넘게 걸었다.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다. 이제 겨우 3월인데 연말의 모든 판이 다 짜여 있을 수도 있다니. 나는 언제나 그런 것을 미리 계산하는 편이 못 된다.
내가 학교 다닐 때 시험지는 거의 객관식 문제였다. 객관식은 단순하고 공정했다. 3번이 답이라면 그냥 답인 것이다. 주관식처럼 보는 관점이나 채점하는 사람에 따라서 점수가 오락가락하지 않았다.
어릴 때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이 꽤나 쓸모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라고 배웠고 반칙을 하지 말라고 거짓말을 하지 말고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고 배웠지만 어른이 되고 보면 그런 행위들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자행되는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슬프고 무기력해진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내가 하루아침에 처세술에 능한 사람이 되어 상황을 유리하게 되돌릴 수도 없고 높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불편한 친밀감을 꾸며 낼 수도 없다. 이의를 제기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인사 담당자 얘기로는 이제까지 고과에 이의제기를 해서 이긴 사례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얘기다.
나는 그냥 내가 하던 대로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연말이 되어서 정말로 홍대리와 나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볼 것이다. 나의 이야기지만 내가 등장하는 그 이야기의 결말이 나는 흥미롭고 궁금하다.
그리고 참혹한 결말을 받게 된다면 나는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쓸 것이다.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들, 비열하고 야비하고 천박한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건들, 그렇게라도 밥줄에 의지해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우리가 배웠던 공정과 정의가 아무렇지 않게 훼손되는 현장의 모습들.
지저분한 이야기들을 모아서 내 글의 불쏘시개로 이용할 것이다. 그래서 그 글을 통해서 누군가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혹은 누군가 대리만족을 느낀다면 이런 굴욕적인 경험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강력하고 행복한 무기를 가지는 것이다. 불합리한 것을 당장 고칠 수는 없지만 글로 고발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글은 불합리한 것을 고칠 수 있는 작은 불씨가 될 것이다.
사진: 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