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안부

by 느리게 걷기

상무님이 일주일의 휴가를 냈다. 처음 있는 일이다. 상무님은 오랫동안 부정맥 약을 복용했는데 더 이상 약으로 관리가 안 되었다. 할 수 없이 스탠트 시술을 받기로 했다.

상무님은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가 이상적인 군주의 '상'으로 제시한 군주의 모습과 닮았다.

' 이왕 사랑받을 수 없다면 두려워하게 하라'

그러니까 상무님은 두려운 관리자이다. 인자하고 존경받는 관리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인사 고과부터 승진, 부서 이동 등 조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상무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팀장들은 이미 옛날부터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상무님이 따로 관리하는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자연히 상무님은 두렵고 어려운 존재이다.


상무님이 병원에 입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다들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나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내가 수석팀에 있으니 상무님 성향을 잘 알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크게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요즘 스탠트 시술을 받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비교적 간단한 시술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지대한 관심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평소에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모습으로 조직에 존재감 없이 있던 사람들, 그 사람들 중에서 몇이 갑자기 열에 들뜬 것처럼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그중 몇이 사내 메신저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 상무님께 문자 메시지로 안부를 물으려고 하는데 이상할까요?"

나는 질문의 의도를 바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하면 모범 답안은 금방 찾을 수 있다.

"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되죠. 뭐. 그런데 병원에서 문자 받으면 귀찮지 않을까요?"

그들은 또 질문했다.

" 그런데 병원에 있을 때 문자를 받으면 무척 고맙잖아요. 오랫동안 생각도 나고요. 특별한 감정이 생기지 않을까요?"

답을 정해 놓고 묻는 질문이었구나. 나는 그들의 의도를 비로소 알아차리고 다시 문자를 보냈다.

" 그렇네요. 문자를 보내면 정말 고마워할 것 같아요. 고민하지 말고 보내세요"

그들이 정말로 문자를 보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문자를 보냈다면 그들이 어떻게 문자를 작성했을지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그려 볼 수 있다. 아마 그들은 문자를 썼다가 지웠다가 고쳤을 것이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 동안 심호흡을 하고 문장을 다시 들여다보았겠지. 그러고 나서 전송을 눌렀을 것이다. 무겁고 부담스러운 안부가 그렇게 날아갔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그들이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그들은 마치 어려운 문제 앞에서 답을 맞히려고 쩔쩔매는 작은 아이 같다.




상무님이 출근하자 상무님 집무실 앞에 한 여직원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김 차장이다. 그녀의 감작스런 등장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그녀는 꽃다발을 들고 있다. 베이지색 종이 포장지 안에는 흰색과 보라색의 꽃들이 싸여 있다. 꽃다발은 그녀의 얼굴보다 크다. 꽃다발을 안고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에는 어딘가 연출된 다정함이 풍긴다. 그녀는 꽃다발을 상무님에게 건넨다. 그녀의 부자연스러운 웃음소리와 높은 톤의 말소리가 섞여서 나온다. 이제 그녀가 문을 열고 나온다.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서 그녀를 바라본다. 그들은 그녀를 흘끔거린다. 부러움과 질투와 멸시의 감정이 묻어 있다. 그녀는 그런 사소한 것에 동요하지 않는다. 그녀는 임무를 완수한 병사처럼 당당하게 걸어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미처 안부를 묻지 못한 사람들, 안부를 건넬 엄두도 내지 못한 사람들, 그 사람들이 뒤늦게 한숨을 쉬고 있다. 어딘가 아쉬움과 서글픔이 섞인 한숨이다.


따뜻한 관심과 순수한 염려가 들어 있었나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그저 안부를 묻는 행위, 숙제처럼 그것을 했는가 하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그렇게 가짜 안부가 상무님의 집무실을 채우고 있다. 꽃다발은 책장 위에 놓였다. 그러나 그 꽃다발도 곧 시들 것이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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