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 영감은 별난 노인네였다. 그는 일대에서 가장 넓은 논과 밭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사과, 배, 복숭아 등 여러 가지 과수원 농사도 지었다. 집 뒤로 나지막이 이어지는 뒷산도 다 박씨 영감 땅이었다. 마을은 전체 가구를 다 합해봐야 40가구나 될까 싶은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그곳에서 박씨는 웬만한 읍내 부자들 부럽지 않게 커다란 양옥집을 지어 놓고 수확철이 되면 큰돈을 만지는 재미를 쏠쏠하게 보면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딸들에게는 이상하리만치 인색했다. 그의 딸들은 인근에서 일 잘하기로 소문난 일꾼들이었다. 딸들은 끝없이 펼쳐진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고 과수원 농사를 짓느라 자주 학교를 빠졌다. 딸들이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근방에 농사꾼들이 혀를 내두르며 탐을 냈다.
그런데 그 일꾼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큰 딸인 미선이 20살이 되자 박씨는 대뜸 선을 보라고 했다. 여자는 아무것도 모를 때 시집가서 애 낳고 사는 게 제일 큰 행복이라는 게 박씨의 지론이었다. 미선은 얼떨결에 선을 보러 나가게 되었다. 상대방 남자는 농사를 짓는 집의 아들이었다. 그 남자는 처음 본 미선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미선은 일 년 내내 밖에서 일을 하느라 얼굴과 손등이 볕에 그을렸지만 웃는 모습이 단아했다. 남자는 미선이 마음에 든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연신 흘끔거렸다. 시골에서 농사만 짓던 미선은 읍내 다방에 나와본 것도 신기하고 점잖을 빼고 앉아서 음료수를 홀짝이고 있는 것도 어색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그 남자가 빨대를 컵에 꽃아서 쪽쪽 소리를 내면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 것이 미선은 거슬렸다. 그 소리는 다소 경박스럽게 들렸다. 인상도 괜찮고 목소리도 괜찮았지만 그래도 이 남자는 싫었다. 그래서 미선은 다시 볼 수 있겠냐는 남자의 말을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난리가 났다. 박씨는 벼락처럼 성을 내다가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박씨는 남자 쪽에서 좋다고 하는데 여자가 싫다고 하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 남자, 저 남자 선만 보다가 혼기를 놓쳐서 결혼도 않고 늙어 죽을 거냐고 박씨는 말도 안 되는 비약을 하면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처음으로 선을 보고 온 것뿐인데 박씨는 도무지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았다. 그리고 미선이 방에 있는 장롱 서랍을 열어서 그 안에 있는 물건을 밖으로 던지고 서랍장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면서 겁을 주기 시작했다. 얼뜨고 순진했던 미선은 겁에 질려서 박씨에게 싹싹 빌기 시작했다.
" 아부지요. 제가 잘못했어요. 다음에 선을 보러 가서 남자가 좋다고 하면 무조건 시집갈게요."
그래서 미선은 두 번째 선을 보게 되었다. 두 번째 선자리에 나온 남자는 눈이 부리부리한 남자였다. 여기에서 '부리부리한'은 장동건 같은 부리부리함이 아니었다. (엄마는 유독 이 장면에서 느낌을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애를 쓴다. ) 그러니까 여기에서 부리부리한 눈은 우악스러운 눈이라는 것이다. 미선은 처음 이 남자를 본 순간 첫 번째 선을 본 남자를 떠올렸다. 두 번째 나오는 남자가 이 모양일 줄 알았다면 군말 없이 첫 번째 남자한테 시집간다고 할 것을. 이미 다 늦어 버렸다. 두 번째 남자는 짧게 자른 머리에 눈이 부리부리하고 약간 돌출형 눈을 가지고 있었다. 앙다문 입모양은 매서웠는데 화가 나면 보통이 아니겠다 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남자는 본인이 유도 유단자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무서운 생김새에 운동까지 잘한다고 하니 미선은 이 남자가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싫다고 할 수 없었다. 박씨와 했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선은 남자 쪽에서 혹시라도 싫다고 하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 봤지만 남자 쪽에서는 여자를 마음에 들어했다. 오히려 남자 쪽에서는 서두르는 눈치였다. 여자가 웬만큼 마음에 드는 데다가 시골에서도 소문난 부잣집 딸이라는 걸 중신아비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을 보고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양쪽 집은 약혼날을 잡았다.
미선은 매일 밤마다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성질이 포악하고 한번 화를 내면 길길이 날뛰는 아버지한테 싫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음이 가지 않는 부리부리 총각한테 시집을 가기도 싫었다. 미선이 매일 그러고 있으니 미선의 엄마도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미선의 엄마는 시집가기로 한 집이 어떤 집인지, 시어머니 될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때는 좋은 시어머니를 만나야 여자가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시절이었다). 그녀는 남자네 집이 살고 있는 형편이 궁금하기도 했고 직접 가서 동네에서 인심이 어떤지 확인도 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부리부리 총각의 집은 나지막한 기와집이었다. 집 앞으로는 제법 큰 길이 지나고 있고 옆으로는 골목이 있었다. 집은 낡아 보였지만 그래도 관리를 잘하는지 깨끗해 보였다. 시골처녀 엄마는 마침 배도 출출했던 터라서 총각 집 근처 모퉁이 국숫집으로 들어갔다. 국수는 금방 말아져서 나왔다. 시골처녀 엄마는 국수를 날라 주는 주인에게 무심한 듯 말을 걸었다.
" 주인 양반, 저기 앞에 구멍가게가 있던데 거기 할머니, 사람 어때요?"
질문을 받은 국숫집 아줌마는 당황했다. 왜냐면 구멍가게 할머니, 그러니까 우리 할머니는 동네에서 유명한 쌈닭이었기 때문이다. 시비만 붙으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성격에다가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참고 넘기지를 못했다. 상대가 애든 어른이든 가리지 않았다. 동네 꼬마들이 노느라고 시끄러우면 밖으로 쫓아 나가서 눈물이 쏙 빠지도록 소리를 질러야 직성이 풀렸고 별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늘 핏대를 세우고 싸움을 벌렸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얘기할 수 없었다. 국수를 먹고 있는 낯선 할머니가 누구인지도 모를 일이고 특히나 쌈닭인 할머니의 성정을 사실대로 얘기했다가는 후환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숫집 아줌마는 거짓말을 했다.
" 그 집 할매요? 그 집 할매 사람 좋습니다. "
미선의 엄마는 그 말을 듣자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뜨거운 국수를 후루룩 불어서 먹기 시작했다. 김치도 맛이 들어서 입에 맞았다. 그녀는 만족스러운 기분이 되었다. 이제 딸을 시집보낼 집도 보았고 사돈댁 사람 됨됨이도 확인을 했다. 그렇게 그녀는 국물까지 깨끗하게 비우고 식당을 나왔다.
" 오늘 내가 일부러 여기까지 와서 확인하기를 잘했구먼. 뭐든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문제가 없는 법이여"
그녀는 집으로 가서 딸을 잘 달래 보리라 마음을 먹는다. 그녀 뒤로 해가 뉘엿뉘가 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