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 영감은 딸들이 시집갈 때 혼수를 제대로 해 주겠다고 늘 큰소리를 쳤다.
" 시집갈 때 내가 제대로 혼수 해 줄테니까 군말 말고 일혀. 지금 공짜 일 하는 거 아니여"
부려 먹기 위해서 하는 사탕발림이겠거니 하면서도 미선은 아부지 말을 믿었다. '시집가기 전까지 이렇게 부려 먹고 일을 시켰는데 아무리 그래도 아부지가 시집갈 때는 뭐라도 크게 해 주거나 살림 밑천을 장만해 주겠지' 하고 기대를 했다.
박씨 영감은 그렇게 큰소리를 치더니 막상 미선이 시집갈 날을 잡고 나니 말을 바꿨다. 올해는 태풍 때문에 사과 농사도 망쳤고 배도 제대로 영글지가 않아서 일 년 농사를 망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혼수는 분수에 맞게 해 갖고 가는 것이지 허파에 바람 들어갈 일 있냐고 도리어 역정을 냈다. 시집가서 사랑받는 것은 다 너 할 도리니 어떻게든 시부모님 마음에 들도록 잘하고 살라고 그동안 네 덕분에 아부지는 큰 고생 않고 농사를 지었다고 말로 공치사를 했다.
그러면서 박씨는 리어카에 서랍장 2개를 실어서 사돈집으로 혼수를 보냈다. 안사돈은 혼수를 받고 나서 분해서 어쩔 줄 몰랐다. 안사돈이자 우리 할머니 이름은 김유순이다. 이름을 풀이하면 부드럽고 순한 여자라는 뜻으로 아마 그렇게 자라기를 바라는 선친의 뜻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사람의 인생이나 성격은 이름을 따라간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시어머니인 '유순'의 성격은 유순과 정반대였다. 그녀는 자기 관리가 철저했다. 밥은 항상 밥공기에 설풋이 떠서 반공기만 딱 먹고 숟가락을 내려놨다. 몸에는 군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매서운 눈매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녀의 특기는 목청을 높여 소리를 지르면서 본인의 논리를 펼치거나 주장하는 것이었다. 특히 그녀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어서 다른 사람들을 훈계하거나 가르치는 것을 좋아했고 항상 위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듯한 눈으로 사람들을 쳐다보기를 좋아했다.
그녀는 '해태 슈퍼'라고 하는 작은 구멍가게를 하고 있었다. 가게 위에는 간판도 걸려 있지 않았다. 그저 해태 제과 물건을 많이 들여놓기 때문에 동네에서는 알아서 '해태 슈퍼'라고 불렀다. 사실 슈퍼라고 부르기 민망한 구멍가게였다. 가게 안 좌판에는 과자들이 몇 개 놓여 있고 불량식품도 취급을 했다. 겨울이면 가게 앞에서 물 오뎅을 팔고 호빵틀을 내놓고 호빵도 쪄서 팔았다. 가끔 막걸리를 마시러 오는 인부들이 있으면 가게 안에서 먹게 하고 반찬 몇 가지를 갖다 주는 대신에 부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근처에 공사하는 곳이 있으면 낮에 국수를 끓여주고 돈을 벌었다. 닥치는 대로 팔고, 닥치는 대로 돈을 벌어야 겨우 대가족이 입에 풀칠할 수 있는 가난한 집이었다.
그런 그녀는 며느리를 맞으면서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중신아비 말로는 여자 쪽 집은 인근에서 소문난 부자인 데다가 갖고 있는 땅도 엄청나고 뒤에 산까지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 집 큰 딸을 며느리로 맞이하면 장차 아들한테 떡고물이라도 떨어질 게 당연한 노릇이었고 가끔 과일이며 곡식을 얻어다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시 나중에 땅이라도 뚝 떼어서 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유순은 이런저런 계산으로 머리를 굴리느라 신이 났다. 그리고 부잣집 딸을 며느리로 맞이하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위신이 서는 일이었다.
그래서 신부집에서 혼수랍시고 서랍장 2개를 실어 보낸 걸 보고 유순은 적잖이 실망했다. 힘든 시절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부잣집에서는 세탁기나 냉장고를 혼수로 보내던 시절이었다. 기대가 없었더라면 실망도 없었을 텐데 기대가 컸기 때문인지 유순은 새로 맞은 며느리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 그렇게 부자라고 하면서 딸년 시집 보내면서 서랍장만 달랑 실어 보내다니 집에 데리고 살던 머슴을 내보내도 이것보다는 낫겠다"
유순은 혀를 끌끌 찼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혼사를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부잣집 딸이라는 거 빼고 뭐 하나 볼 게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유순은 미선이 말수가 없어서 조용히 있는 것도 꼴 보기 싫었고 뭐라고 말을 하면 겁에 질려서 고개를 숙이는 것도 못마땅했다. 세상에 저런 천치가 들어왔나 싶은 생각에 울화통이 치밀었다.
유순은 미선을 함부로 대하기 시작했다.
" 그 골목 끝에 양장점 있지? 그 집에서 우리하고 사돈 맺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다.
그리고 사거리에 있는 약국집에서도 우리하고 혼사를 하고 싶어 했는데 그 좋은 집들 다 물리치고. 아이고. "
이런 말도 서슴지 않았다. 미선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시집와서 보니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누이 2, 시동생 2, 시할머니까지 있는 대식구였다. 누구에게도 정을 붙일 수 없었다.
미선은 시골에서 그저 농사나 짓고, 신나서 논둑길을 펄떡펄떡 뛰어다닐 줄이나 알았지 세상 돌아가는 물정은 아무것도 모르던 아가씨였다. 미선은 혼수를 그렇게 보낸 아버지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불평을 할 줄도 몰랐다. 시어머니는 눈을 마주치기도 무서웠다. 유순은 조금만 기분이 거슬리면 소리를 질렀다. 기세가 대단했다. 집 앞에서 싸움이 붙으면 " 내가 아들이 셋이야. "하고 삿대질을 하며 싸웠다. 미선은 시어머니인 유순 앞에서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미선은 시집오는 날부터 대부분의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가게 앞에 내다 놓고 파는 물오뎅이나 국수도 끓여야 했고 10명 가까이 되는 대식구의 매 끼니를 만들어야 했다. 시집와보니 집에는 먹고 살 양식이 늘 부족했다. 그 많은 식구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 툭하면 갱시기를 끓여야 했다. 갱시기는 김치와 멸치, 쌀, 소면을 넣고 퉁퉁 불도록 끓이는 음식이다. 밥 2~3 공기만 넣으면 10명이 먹을 음식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음식을 끓이고 상을 차리고 그릇을 씻는 것은 모두 미선의 몫이었다. 10명이 넘는 대식구의 빨래도 미선의 일이었다. 남편은 무뚝뚝한 사람이어서 미선은 그에게 불만을 표시할 수도 없었다.
그 대식구 중에 돈을 버는 사람은 시어머니와 남편뿐이었다. 남편은 군청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다. 남편은 인상이 부리부리하고 무뚝뚝했다. 아무리 뜯어봐도 어디 하나 호감 가는 구석이 없었다. 그래도 남편의 직업은 공무원이었다. 군청에 다니는 공무원은 당시에 최고로 쳐주는 직업이었다. 남편은 군청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월급이 형편 없었지만 그래도 어엿한 공무원이었다. 그리고 공무원은 시간이 지나면서 호봉이 올라가는 구조니 지금은 힘들어도 나중에는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 거라고들 했다. 깐깐한 박씨 영감이 딸 미선을 흔쾌히 시집 보내기로 했던 것도 사위될 남자가 군청에 다니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어쨌든 주변에서 미선에게 그만하면 시집 잘 가는 거라고 위로를 한 것도 모두 새신랑이 공무원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식구들은 집에서 돈을 버는 시어머니와 남편을 최고로 쳤다. 나머지들은 밥만 축내는 식충이로 취급을 받았고 특히 핏줄을 나누지 않은 미선은 그 집에서도 서열이 가장 아래였다. 미선은 갱시기조차 마음껏 먹지 못하고 식구들이 다 먹고 나면 냄비를 박박 긁어서 배를 채웠다.
그런데 미선이 첫 번째 아이를 가졌을 때 미선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남편인 정호가 공무원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정호는 군청에 임시직으로 당분간 일을 봐주는 신분이었다. 그걸 속이고 공무원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선을 보고 결혼까지 했던 것이다. 정호는 몇 달 후면 그마저도 계약기간이 끝나는 신세였다. 미선은 기가 막혔다.
속고 속이는 비정한 결혼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사랑 없이 조건만으로 시작된 결혼은 그 조건이 거짓이라는 것이 들통났을 때 어떻게 유지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위태로운 다리 위를 건너는 것과 같은 비극적인 상황의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