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는 결혼이란

그녀의 결혼과 삶 # 3

by 느리게 걷기

사랑 없는 결혼이란 무엇을 의지하고 지탱할 수 있을까?


미선의 결혼에는 사랑이 없었다. 결혼생활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없었다. 희망적인 요소를 하나도 가지지 못하고 현실의 시궁창 속에 내동댕이쳐진 결혼 생활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싹트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한 희망이다. 시궁창 안에서도 꽃은 피어날 수 있지만 역시 확률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미선의 남편인 정호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당시에 공무원 시험은 예상 문제집 몇 권을 사다가 달달 외우면 승산을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웬만큼 공부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공무원 시험에 어렵지 않게 합격을 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정호가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맨 것은 미선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저 대가족 입에 풀칠은 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더 큰 요인이었다. 그 많은 식구가 콧구멍만 한 구멍가게 수입으로 먹고 살기는 요원한 일이었다. 그래서 정호는 임시직 계약이 끝나자마자 시험공부에 매달렸고 모든 식구들이 과거 준비를 뒷바라지하듯이 극진하게 정호를 뒷바라지했다. 그래서 정호는 군청 임시직에서 군청 정식 공무원으로 발령이 나서 처음으로 정식 월급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정호는 첫 월급을 받자마자 봉투째 자신의 어머니인 유순에게 그 봉투를 넘겼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여서 미선은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었다. 정호는 갓 결혼한 새신랑이라는 본인의 처지보다 대가족의 장남이라는 본인의 처지를 더 깊게 자각하고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그가 벌어온 돈은 당연히 집안의 제일 어른인 시어머니에게 넘어가는 것이 응당 당연하게 보이기도 했다.


미선은 남편이 벌어오는 돈을 만져보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시어머니에게 돈을 타서 시장을 보러 갔다. 그리고 더 아이러니한 것은 가게에서 아이들 군것질 거리라도 먹이려고 하면 돈을 내고 과자를 사야 했다. 남편이 벌어온 돈은 모두 시어머니 주머니로 들어가고, 시어머니 가게에 있는 과자를 사는 돈은 며느리 주머니에서 다시 나와야 하는 웃기고도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졌다.


미선의 남편인 정호는 부리부리하게 생긴 생김새와는 다르게 마마보이였다. 그는 엄마 말이라고 하면 꼼짝을 못 했고 그것은 애정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자라면서 주눅 들어온 오랜 습관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시아버지도 마찬가지였는데 시아버지는 언제나 시어머니가 말을 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본인의 의사를 대신할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시어머니는 집안에서 제왕적 존재였고 그녀의 말을 거역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살벌한 분위기에서도 미선은 아이를 가졌다. 그녀는 첫째를 낳고 연년생으로 둘째를 낳았는데 모두 딸이었다. 며느리가 연거푸 딸을 낳자 유순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이 집에 대를 끊을 참이냐고 소리를 지르는 일이 잦았다. 사실 그 집안은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는 집안이었다. 대대로 유명한 인물이 나온 적도 없었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그렇게 소리를 지를 때마다 미선은 마치 명망 있는 집안에 시집와서 대를 끊어 놓는 박복한 여자가 된 것 같아서 죄스러웠다.


미선은 곧 셋째를 가졌는데 배 모양이 영락없는 아들이었다. 이번만은 느낌이 좋았다. 그런데 낳고 보니 셋째도 딸이었다. 셋째를 낳고 나서는 눈치가 보여서 미역국도 먹을 수가 없었다. 집에는 기분 나쁜 적막이 괴괴히 흐를 뿐 사람들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끔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면 그 소리는 참을 수 없는 불쾌한 파동을 불러일으켰고 미선은 바깥에서 아이를 데리고 온 죄인처럼 아이를 둘러업고 집 밖으로 나갔다. 어른들은 아예 아이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을 낳으려면 셋째 이름을 이상하고 웃긴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셋째를 '몽치'로 부르기로 했다. 몽치의 원래 뜻은 '사람이나 동물을 때릴 때 쓰는 짤막하고 단단한 몽둥이'를 의미한다. 그러나 몽치라고 불렀을 때 입에서 나오는 발음이 주는 느낌처럼 그것이 사람을 부를 때 사용되면 마치 못생기고 희한하게 생긴 그 무엇을 지칭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래서 그렇게 못 생긴 이름을 부르면 그 뒤로는 반드시 아들을 낳게 된다는 것이 시어머니의 믿음이었다. 셋째는 이름도 없이 몽치로 집에서 불렸고 말귀를 알아듣게 되자 몽치라고 부르면 고개를 들고 웃어 보였다.


사랑이 없는 결혼은 시간이 지나면서 마치 평범한 결혼의 그것처럼 아이를 가지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이며 일정한 모양을 갖춰갔다. 하지만 그런 일련의 시간 속에서 남편과 아버지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정호는 애초부터 미선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가정적인 남자도 아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무서운 어머니의 기세에 짓눌려 살다가 이제 숨통을 틀 수 있는 '직장'이라는 공식적인 변명거리를 찾게 되었다.


집에 들어가 봐야 좋을 일도 없었다. 어머니는 작은 트집이라도 잡으면 하루 종일 했던 말을 반복하면서 사람을 질리게 하고 아버지는 존재감도 없이 가게에 딸린 작은 방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을 뿐이다. 애초에 사랑 없이 결혼했던 미선은 원래도 말수가 없었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는 아예 벙어리가 된 것 마냥 입을 닫아 버렸다. 정호는 미선 같은 성격을 좋아하지 않았다. 정호가 좋아하는 여자는 싹싹하고 애교가 많은 그런 여자들이었다. 친구 동생 중에 그렇게 싹싹하고 잘 웃어주는 여자들도 있었다. 정호는 그런 여자들한테 마음이 설레서 일부러 친구 집에 용건도 없이 자주 들락거리곤 했지만 부인인 미선에게는 그런 매력이 없었다. 시골에서 농사만 지은 탓인지 손등에는 푸른 핏줄이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고 애교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다. 정호는 내심 미선을 무시하는 마음도 있었다. 정호는 그래도 시내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을 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거기에 비하면 미선은 중학교를 나왔다고는 하지만 농사짓느라 학교도 거의 부지기수로 빠진 것 같고 영어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 같으니 은근 무시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정호는 밖으로 나돌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몰래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녀는 바로 같은 사무실에 있는 영임이었다. 물론 그녀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아가씨이기 때문에 대놓고 좋아한다고 고백을 하거나 들이댈 수는 없었다. 그저 사무실에서 가끔 말을 걸거나 회식이 있을 때 그녀와 마주 앉아서 농지거리를 주고받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집에 가봐야 애들은 빽빽거리고 울어대고 어머니는 늘 인상을 구기고 앉아 있다. 마누라는 애교라고는 없이 늘 그늘진 표정으로 바쁘게 움직일 뿐이고 도무지 웃을 일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정호는 차라리 그런 골치 아픈 것들을 잊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남들보다 일찍 사무실로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도 집에 갈 생각 없이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는 이 골목 저 골목을 배회했다.


그렇게 사랑 없는 결혼 위에 의미 없는 시간들이 내려앉았다. 사랑으로 이어진 결혼도 현실이라는 냉엄함 앞에서 몇 번이나 위기를 겪는 법인데 사랑 없이 그저 조건만을 보고 이어진 결혼이 어떻게 순탄할 수 있단 말인가. 한 여자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담보로 한 결혼은 그렇게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미선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미선은 불과 몇 년 전까지 비가 쏟아지면 토란잎을 꺾어서 우산처럼 받쳐 들고 시골길을 장난스럽게 달려가던 본인의 모습을 기억하기조차 힘들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철없는 웃음과 장난기 대신 삶에 찌든 피곤과 고단이 내려앉았다. 이제 스물을 겨우 넘긴 그녀의 얼굴에는 짙은 기미까지 내려앉고 있었다.


사진출처: https://kr.123rf.com/photo_58622246_%EC%9A%B0%EB%8A%94-%EC%97%AC%EC%9E%90%EC%9D%98-%EA%B7%B8%EB%9E%98%ED%94%BD-%EC%9D%BC%EB%9F%AC%EC%8A%A4%ED%8A%B8-%EB%A0%88%EC%9D%B4-%EC%85%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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