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란 불가사의한 존재이다.
당신이 키운 아들이 결혼을 하고 나면 그 아들은 갑자기 손에 닿을 듯 닿지 않는 애틋한 존재로 변해 버린다. 그리고 당신이 긴 세월 동안 아들을 키워오며 겪었던 다양한 사건들은 서사가 되어 당신을 더 비극적인 존재로 만든다. 그전까지 당신에게 그저 그랬던 아들조차도 어느새 귀한 아들이 되어 버리고 아들의 능력이나 비범함은 실제와는 다른 수준으로 각인되어서 시어머니에게 아들은 대단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일까. 삐쭉삐쭉 짧은 머리에 눈은 부리부리하고 키는 중키에 특별한 특징이라고는 없는 이 평범하고, 다소 인상이 좋지 않은 남자는 결혼과 동시에 특별하고 대단한 아들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당연한 논리로 이 집에 시집온 며느리는 하잘것 없는, 함부로 막 대해도 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적어도 시어머니에게 말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그 집에서 가장 특별하고 대단한(?) 사람은 미선의 시어머니인 유순이었다.
그녀에게는 이상한 취미가 있었다. 그녀는 며느리가 시장에서 옷을 사 오면 유심히 보고 있다가 다음 날 똑같은 걸 사 가지고 왔다. 마당에 있는 빨랫줄에는 똑같은 티셔츠와 바지가 나란히 바람에 펄럭였다. 사이좋은 고부 지간이라면 다정하게 둘이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이해가 갈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이 집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서로 말 한마디 섞지 않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똑같은 옷을 입고 집 안팎을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기묘하고 어색한 풍경이었다. 그러다 보면 미선은 그 옷을 슬그머니 옷장 안으로 집어넣고 다시 옛날에 입던 낡은 옷을 꺼내서 입는 식이었다.
유순은 본인을 치장하는 일에 유난히 공을 들였다. 그녀는 며느리를 맞을 때도 고작 마흔이 조금 넘은 나이였다. 또래보다 젊어 보였으니 멋을 부리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집에는 늘 곡식이 모자라서 식사 때마다 가족들이 배불리 밥을 먹지도 못했지만 그녀는 남몰래 외제 화장품을 사다가 발랐다. 그녀의 방에는 나무로 만든 장이 있었다. 그 장 안쪽에는 갈색의 조그만 궤가 숨겨져 있고 자물통이 채워져 있었다. 유순은 그 안에 외제 화장품을 몰래 넣어놓고 썼다. 세수를 하고 나면 방으로 몰래 들어와서 그녀의 비밀스러운 화장법이 시작된다. 그녀는 자물통을 조심스럽게 열고 안에서 스킨과 로션을 꺼낸다. 그녀는 화장품을 손에 덜어서 조금씩 얼굴에 정성스럽게 펴 발랐다. 행여 손등에서 흘러내릴까 봐 조심을 하면서 거울을 들여다봤다. 그랬다. 그녀는 할머니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너무 젊었다. 다 쓰러져가는 집에다가 마당에는 개똥이 뒹굴고 있고 변소는 아무렇게나 널빤지 두 개를 얹어 넣고 쓰는 푸세식 화장실인데 그런 집에 살면서도 먹고사는 일보다 유순은 본인을 가꾸는 일에 더 정성을 기울였다.
그리고 시어머니인 유순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는 것이 또 있었다. 그건 바로 절에 새벽기도를 드리러 가는 것이었다. 유순은 초저녁이면 잠자리에 들어서 새벽 4시가 되면 일어나서 새벽기도를 나갔다. 그때마다 그녀는 깨끗이 씻고 정갈하게 옷을 갈아입은 후 근엄한 표정으로 집을 나섰다. 그것은 하루도 빠짐없이 경건하게 이뤄지는 의식과도 같았다. 그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섰고 같은 시간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새벽기도에 목을 매는 이유는 그녀의 간절한 바람 혹은 욕심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불교의 교리나 윤회설이나 자비롭게 사는 법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그녀의 절절한 욕망을 부처님이 들어주시리라는 믿음이 그녀를 매일 절로 이끌었다. 그녀는 차가운 마룻바닥에 엎드려 108배를 올리며 수많은 기도를 했다. 그녀의 기도는 돈을 많이 벌 수 있게 해달라거나 아들이 출세를 하게 해 달라거나 딸들이 부잣집에 시집을 가게 해달라거나 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장남인 정호가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도 빌었다. 그녀는 커다란 방석에 몸을 파묻고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그녀의 기도는 절절해서 때로는 기도를 하던 중에 그녀는 감정이 복받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기도를 하다 보면 그녀는 위대한 어머니였고 따뜻한 아내였다. 아니 그녀는 절 문을 나올 때마다 그녀 자신이 얼마나 인내심이 가득한 사람인지 감탄하고 스스로 감격해했다. 고즈넉한 새벽에 아무도 없는 길을 홀로 걸어갈 때마다 그녀는 잠들어 있는 수많은 사람과 본인이 얼마나 다른 존재인지 감격하고 감사했다. 그녀는 절에 오래 다니는 동안에 마치 본인이 부처와 같은 절대적 존재가 되었다고 착각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녀를 가르치거나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그녀만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특별한, 선택받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병적으로 깔끔한 성격이었다. 물건에 먼지가 내려앉은 걸 그냥 두고 보지 못했고 빨래는 몇 번이나 헹궈서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헹궈야 했다. 그런 깔끔한 성격의 그녀는 이제 그녀의 몸을 움직여서 깔끔함을 유지하는 대신에 며느리인 미선이 깔끔함을 유지하도록 지시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녀는 미선에게 집안일 외에도 지켜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수칙을 지시했다.
수건은 이틀에 한 번씩 삶아야 하고 시어머니의 속옷은 매일 삶아야 했다. 그리고 숟가락과 젓가락에는 가족마다 표시를 해서 각자 숟가락을 정해 놓고 밥을 먹었다. 시아버지 숟가락 손잡이 부분에는 구멍을 1개 뚫어 놓고 시어머니 숟가락에는 구멍을 2개 뚫어 놓고 하는 식이었다. 밥 먹을 때가 되면 어딘가에서 뒹굴고 있는 숟가락을 찾는 게 일이었다. 어떤 숟가락은 미숫가루를 먹고 나서 툇마루에 나가 있기도 하고 어떤 숟가락은 아이한테 미음을 먹이고 나서 뒷 방 이불속에 처박혀 있기도 했다. 미선은 밥을 안치랴 국을 살피랴 가족들 숟가락을 찾느라 매 끼니때마다 기진맥진했다.
그때쯤에 미선은 네 번째 아이를 낳았다. 셋째의 이름을 몽치로 짓고 그 노력을 했는데 이번에도 딸이었다. 미선이 네 번째 딸을 낳고 나니 시어머니는 아예 집 밖 골목에 나 앉아서 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아이고'하는 소리는 작은 골목을 지나 집 앞으로 서글프게 울려 퍼졌고 방에서 막 아이를 낳고 누워 있는 미선의 귀에도 들렸다.
미선은 햇볕도 잘 들지 않는 방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있었다. 이제 이 아이까지 모두 딸만 넷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남편은 아이들한테 아예 관심이 없다. 아이가 아프다고 울면 화를 내면서 벌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버릴 뿐 아이를 살필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는다.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미워하니 남편은 더 심하게 곁을 주지 않았다. 자신이 그렇게 냉정하게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는 듯이 남편은 찬바람이 불었다. 딸만 내리 낳은 것이 미선의 잘못이란 말인가. 하지만 미선은 그런 생각을 밖으로는 차마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모든 것이 그녀의 잘못이라 생각했다. 뒷집 경선네도 아들을 낳았고 건너 연희네도 셋째와 넷째는 연달아 아들을 낳았다. 다들 아들을 낳아서 돌잔치를 벌이고 집집마다 아이를 자랑스럽게 들쳐업고 나오는데 나는 넷을 낳는 동안 어떻게 아들 하나를 낳지 못한단 말인가. 미선은 비정한 삼신할머니를 원망하며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기세 등등한 시어머니에게 따뜻한 말 한번 들어 보지 못했다. 그래도 아들을 낳았더라면 이렇게까지 구박을 받지는 않았을 텐데. 미선은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보다 바보 같은 스스로와 기구한 자신의 팔자가 원망스러웠다.
그때쯤 정호는 노름에 빠지기 시작했다. 정호는 타고난 노름꾼이었다. 그가 타고난 노름꾼이라는 것은 노름을 잘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저 그는 노름으로 돈을 잃어도 속을 끓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월급봉투를 통째로 노름판에서 날려도 덤덤하게 일어났다.
" 내 돈 맡겨 놓은 거니까 잘 갖고 있어. 다음번에 내가 다시 찾아갈 테니"
하고 호기롭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나 집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그 돈은 그저 월급봉투가 아니었다. 그 봉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한 두 명이 아니었다. 그 돈이 들어와야 구멍가게에 담배를 사다가 갖다 놓을 것이고 시어머니 외제 화장품도 살 것이고 쌀집에서 한 달 먹을 쌀을 양동이로 사다 놓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돈이 봉투째 들어오지 않았으니 집은 난리가 났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욕을 먹는 사람은 바로 다름 아닌 미선이었다.
" 옛날부터 그런 말이 있다. 집에 여자가 잘 들어와야 되는데 여자가 잘못 들어오면 집이 패가망신하는 법이야"
" 저게 들어오고부터 정호가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밖으로만 돌고 있으니. 어떡하면 좋단 말이냐?"
"우리 정호가 그전까지 노름이 뭔지 그런 걸 해 보기라도 한 줄 아느냐? 이게 다 너 때문이다. 네가 들어오고 나서 줄줄이 가시나들만 주구장창 놓고 있으니 정호가 어디에 마음을 붙이겠냐?"
시어머니 유순은 말을 하다가 악에 받히면 본인의 성질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미선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마당에 동그마니 서 있었다. 그런데도 유순은 꼬투리를 잡았다. 저년이 눈을 치뜨고 나 쳐다보는 것 좀 보소. 저 년이 겉으로는 순한 척하고 있어도 속에는 백여시가 들었네 하고 소리를 지르다가 뒷목을 잡고 나자빠졌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어차피 아빠와 남편으로 낙제점이었던 정호의 생각 없는 노름질이 어떻게 미선의 잘못이란 말인가. 그리고 아이의 성별을 결정하는 것은 남자 쪽인데 그것을 시어머니에게 과학적으로 자세히 설명을 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지옥 같은 집을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래도 미선은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그녀는 바깥세상을 구경해 본 적도 없었고 어떻게 생겼는지 아예 구경해 볼 생각도 하지 못한 얼뜨기였다. 세상은 무섭고 여차하면 코 베어가는 곳이라 했고 여자들을 길에서 막 잡아간다고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꼬물거리는 애들이 넷이었다. 이 애들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견뎌야 했다. 견디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희망이라는 건 보이지도 않았고 감히 꿈꿀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저 밤이면 아무 탈 없이 잠자리에 들고 아침이면 거짓말처럼 눈이 떠지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자 그녀의 삶을 지탱해 주는 유일한 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