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을 푸는 여자
몇 년을 아글타글 벌어서 모은 돈을 사우나 사업에 투자하여 열성을 다해 운영했지만 결국에는 큰돈만 쓰고 빚만 지고 그 사업을 접게 되었다. 사업을 망친 것이 코로나 때문이라고 우기고 싶지만 처음부터 그곳 사정과 실정을 잘 모르면서 국외에다 사업을 차린 것도 무리였고 사업을 해본 경험이 부족하여 자신감이 없었던 것으로 인해 소극적인 기운이 여기저기에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 제일 큰 원인이 아닌가 싶다. 그 와중에 코로나가 터지고 온역의 두려움으로 사회는 거리두기에 들어갔고 하늘길이 막히기 시작하고 비자도 막혀 모든 것이 거칠 것 없이 내리막길로 치닿기 시작하자 실패는 막을 길이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사업을 접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서 마음은 조금 가벼웠지만 거기에 들어간 돈과 정성을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늘 쓰리고 아프다. 다시 어떤 사업을 운운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환경이고 그럴 여력도 없다. 그렇다고 두 손 놓고 몸 편히 있으면 주머니 사정만 급격히 나빠지게 되니 멀쩡한 몸을 움직여서 돈을 벌어야 했다. 뾰족하게 잘하는 일도 손재주도 없고 비상한 머리가 있는 것도 아니니 몸으로 때우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벼룩시장을 기웃거려서 일자리 찾아보니 집에서 8분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직원 구한다고 하여 면접을 보고 그 식당에 홀서빙 일을 하기로 했다. 서빙하기에는 좀 많은 나이지만 통과해준 사모님도 빠른 시일 내에 출근해줍사 하시는 대표님도 모두 감사할 따름이었다. 5일 근무에 270만 원, 이런 조건에는 보통 일이 쉽지는 않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여러 가지 걱정 중에서도 직원이 많다는 것이 제일 큰 걱정이다. 직원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말이 많을 수 있는 환경이라는 뜻이고 서빙 직원은 거의 여성 직원이니 골치 아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더욱이 미셀 링들의 높은 평점을 받은 소문난 강남권에 자리 잡은 음식점이라 출입하는 고객들도 다들 까탈스럽기로 소문난 사모님들과 아가씨들이 와인병을 들고 빈번히 드나들고 모모한 판검사, 교수, 국회위원, 대통령 후보까지 다닌다는 곳이다 보니 의복에 말투, 행동 하나하나에 실수 없이 완벽할 것을 요구한다. 면접에서는 통과했으나 직원들과 고객님들과의 트러블을 잘 막고 처리한 것이 또 하나의 난관이다.
월요일에 출근하고 보니 홀직원 중 나이순으로 나는 중간이었다. 의외였다. 요즘 직원 찾기가 어렵다더니 나이 든 아줌마들이 이런 고급 한우집에서도 일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나이 때문에 쫄았던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업무는 과중했다. 12시간에 쉬는 시간은 식사시간 포함해서 2시간이고 한우부터 시작해서 모든 음식은 고객님 앞에서 직접 조리해서 나가는 것이었다. 수고한 만큼 팁은 별도로 나 올 확률이 높다고 면접 때 이미 들었으나 팁이 중요한 게 아니라 빠른 시일 내에 이곳 환경에 적응하고 오래 버티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첫날은 7층으로 배치되었다. 입사한 첫날부터 7층에 배치하는 일은 여태 없었다며 7층 담당인 은하 씨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보다 4살이나 어린 직원임에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홀일을 차근차근 가르쳐 주는 그녀는 선한 말투에 후배들을 배려하는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런 분과 함께라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사흘 기분 좋게 일을 배우고 잘 적응해 나가다가 나흘째 되는 날 매니저를 만났다.
내가 입사한 지 나흘 만에 휴가를 맞히고 돌아온 그녀는 매니저의 신분으로 나에게 홀서빙을 가르치는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아침일은 그럭저럭 끝나고 식사시간에 그녀는 딱히 누구에게 꼭 집어서 말하는 것도 아니고 지나가듯이 "어제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버스를 타고 목적지도 없이 흔들거리다가 명동까지 갔었다." 고 멍하니 말하였다. 그런 그녀의 말이 찡한 울림으로 이 가슴에 가는 실금을 긋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사람은 가끔씩 그렇게 아무런 목적도 없이 훌쩍 떠나가고 싶을 때가 있지 않는가? 그녀는 "나는 외로워!"라고 말하는 것 같았고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나는 알 것 같았다. 외롭고 쓸쓸하게 나이 든 여자의 냄새가 물씬 풍겨와 괜히 마음이 알싸했다. 그래서인지 이 여자 하고도 어쩐지 잘 어울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시간이 지나고 이제 곧 손님이 들어 올 시간이 다가오자 다들 일하기에 분주했다. 매니저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면서 시키는 일을 이것저것 하는 와중에 이 여자는 결코 쉽게 어울릴 수 있는 그런 부류의 사람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 외로움으로 뭉클거리던 감수성이 짙은 연린 여자는 사라지고 상기된 얼굴과 푸념 섞인 말투로 잔소리가 많은 노파로 변한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 주위에서 끊임없는 잔소리 하고 있었다. 단순한 일도 제대로 못하냐는 식으로 빈정거려 저의기 당황한 나의 촉각들이 일제히 뾰족해지면서 방어태세를 갖추고 언제든지 들어오라는 식으로 곤두선 상태가 되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매일 같은 것을 가르쳐 주는 것도 스트레스라고 하는 노인네 같은 그녀가 경악스러웠다. 그녀는 자신이 맡은 업무를 일이 아닌 짐으로 지고 있었다. 아마 한두 명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입사했다가도 일이 힘들어서 여러 직원들과 어울리기 힘들어서 그만두는 상황이 거듭되다 보니 같은 말을 너무 많이 반복하는데서 쌓인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면서 마음 한 구석에 드리워지는 어두운 그림자를 느끼면서도 잘 가르쳐주면 잘 따라 할 거라고 반죽 좋게 어울리려고 웃어넘겼다.
그녀는 다들 그래 놓고는 가버린다고 툴툴거리고는 물건은 챙겨두는 곳들을 잘 기억하고 필요할 때 누구든 바로바로 쓸 수 있게 항상 준비해두고 늘 청결을 유지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녀의 끊임없는 잔소리를 들으면서 두태가 들어있는 봉지를 풀려고 애쓰는 나의 손에서 비닐봉지를 채가서 옭매어져 있는 매듭을 애써 푸며 물어보지도 않는 자신의 사적인 얘기를 스스럼없이 꺼내는 것이었다. 자신은 성질머리가 못 돼먹어서 살면서 많은 사람들과 매듭을 짓고 되돌이 킬 수 없는 좋지 않은 상황들을 많이 만들어서 그런 자신의 지난 일들이 후회도 되고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면서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 듯이 모든 매듭을 애써 푼다고 했다. 그러면 뒤틀린 지금 상황이 잘 불리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막연한 생각으로 그러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를 성격을 가지고 있는 그녀에게 혼동을 느끼며 이 사연이 많은 것 같은 여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 "그러면 인간관계도 그렇게 푸는가요?" 이렇게 묻는 나의 물음에 그렇다고 말하는 그녀, 꼭 마치 이런 식으로 인간관계를 멋지게 푸는 자신은 남과는 다르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잔소리 많은 만큼 마음에 쌓인 사연이 너무 많아 수시로 술술 풀어대는 풀어진 아줌마의 궁상 같기도 했다. 그런데 매듭을 처리하는 그녀의 말과 행동이 묘하게 나를 뒤돌아 보게 하는 것이 더 당혹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껏 모든 매듭을 너무 쉽게 처리한 것 같다. 이렇게 풀기 힘든 옭아 든 매듭은 풀려고 시도했다가도 가위를 찾아 쉽게 잘라버리는 편이다. 시간도 단축되고 힘도 들지 않고 얼마나 간결하고 시원한가! 풀리지 않는 것을 풀려고 시간을 낭비하고 손톱도 아프고 그런 행동은 필요 이상이 아닌가? 그럴 때 사용하라고 가위도 생기고 칼도 생기고 그런 것이 아닌가? 그런데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이 찝찝함과 나를 뒤돌아보게 하는 이 묘한 느낌, 나라는 인간은 인 관계도 너무 쉽게 잘라버리고 성격인 것 같아서 괜히 마음이 뜨끔했다.
십 대의 나는 활달하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주위에 친구들이 부지기수였다. 언제나 구름처럼 몰려들어 바람처럼 여기저기 휩쓸고 다니던 그때 친구들은 나의 통쾌한 성격을 좋아했다.
엄마를 일찍 여의고 크게 고민하지도 않고 한 결혼은 순탄치 않았다. 불행한 혼인 생활로 하여 많은 일들을 겪고 신경이 예민해지자 타인으로부터 나를 방어하는 심리가 생기면서 온몸에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살아온 것 같았다. 주위의 사람들과 친해지기 힘들어하고 나와 생각이 거의 일치하고 취향이 비슷한 친구들과는 늘 마음을 오픈하고 사이좋게 잘 지내지만 나의 사유와 가치관이 맞지 않은 사람들과는 어떤 식의 관계로도 유지하려고 하지 않고 단절하는 상황들이 꽤 많았던 것 같다. 우선 나랑 안 좋은 일이 있었던 사람들과는 더 이상 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폰에서 아웃시킨다. 더 이상 피곤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번호를 삭제하고 절대 등록되지 않은 전화는 받지 않는 지금의 나, 지나가는 모든 것은 나로부터 흘러 보내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편안해서 늘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나에게는 타인과 접촉하는 횟수가 적어서 그녀의 말대로라면 누구랑 매듭질 일은 별로 없다. 그렇다고 지난날에 맺어진 매듭을 애써 풀고 싶은 마음도 이유도 없지 않은가?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니 매듭도 세월에 닳아서 없어질 것이므로 거기에 그토록 집착할 이유를 만들어서 소중한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별로 찬성할만한 소행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삶과 생계를 위해서라면 또 다른 일종의 사람들과 섞여서 생활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그런 곳이 직장이다. 싫어도 얼굴에 웃음을 한껏 바르고 웃어야 하는 직장 상사, 종일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하는 일, 소소한 일로 자꾸 부딪쳐야 하는 동료들과 고객들, 이렇게 직장에서 종일 보내다 보면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고 일에 지친 몸에는 스트레스까지 덤으로 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기수 부지이다. 이렇게 세상과 어울려 살다 보면 맺어지는 매듭들이 결 고운 매듭도 있고 진짜 끊어버리고 다시 쳐다보기도 싫은 악연도 생긴다.
그렇다고 모든 매듭을 풀 이유 없다. 예쁜 매듭은 그냥 그대로가 좋고 풀어야만 상황이 종료되는 매듭은 잘라버려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러다가 직장까지 자르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렇게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이 노력하여 매듭을 푼다는 그녀의 문제는 정말 그녀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처럼 일이 잘 풀릴지 의문스럽다. 차라리 그런 말도 안 되는 의식 치르듯이 모든 매듭을 애써 손톱이 닿도록 풀기 전에 자신의 왜 자꾸 타인들과 매듭을 짓는지 그 이유를 깨닫고 자신이 자칭하는 못된 성격부터 고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한 달가량 지내보니 그녀는 결벽증에 강박증까지 겸비한 아주 까탈스럽고 변덕이 많은 여자였다. 문제점이 자신한테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병증 때문에 이어지는 악연을 그녀는 계속 쌓고 후회하면서 매듭을 푸는 의식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매듭을 푸는 그녀와 매듭을 옭아매는 그녀는 시각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그 자체를 모르거나 아니면 너무 과도한 자신감 때문에 자신이 하는 생각과 하는 일들의 완벽함에 도취되어 있는 듯싶다. 그로 인해 상대방의 단점을 용인하지 않으려는 결벽증과 강박증으로 짜인 완벽한 그물에 옭아 든 그녀에게 속삭여주고 싶다.
매듭은 풀기 힘들게 옭매지 않으면 힘들게 풀 이유도 그런 수고로움도 피할 수 있다고, 종당에 가서 풀어야 할 매듭이라면 풀기 쉽게 지혜롭게 매듭을 지으면 된다고, 당신이 짓는 매듭이 스스로 자칭하는 못돼 먹은 마음가짐이나 성질머리 때문이라면 맺지 않아도 되는 실마리를 헝클어 놓아서 풀기 힘든 매듭이라면 멈추라고,
시시때때로 하는 잔소리, 모든 일을 자신이 정한 규정에 어긋나면 참을 수 없어하는 결백증과 강박증으로 인한 강요로 타인의 일상까지 피폐하게 만드는 그녀는 많은 사람들과 필요 이상의 매듭을 맺히게 할 뿐만 아니라 그런 강박관념은 그녀로 하여금 더 풀기 힘든 매듭의 옹이에 묶이도록 이끌어 가는 것이라고,
언제라도 단단히 굳어진 그녀의 생각의 벽층을 뚫고 따뜻한 바람과 햇볕 같은 손길이 그녀를 다독여주고 감싸 안아 줄 수 있게 그런 시간이 그녀의 얼어버린 마음에 하루빨리 당도 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