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며 다독이며

상처가 꽃으로 필 때

by 강희선




상처가 꽃으로 필 때

강희선

괜찮아, 괜찮아~
잠깐 발을 접질려서 넘어졌을 뿐이야. 다시 일어날 수 있어.
찢긴 무릎에서 피가 흐르고 차가운 눈길과 야유에 찔린 가슴에서 피가 굳어질 것 같아도 버티고 견뎌야 하는 시간들이다.

이렇게 안 깐 힘을 써가며 버텨가는 시간들 속에서 시간은 흘러가고 사람도 흘러가고 꽃들도 피고 지며 세상은 여느 때처럼 아무런 일도 없는 듯 잘만 돌아가겠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명 엄청 큰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도 무심히 스쳐 지나가고 흘러가는 그 시간 속에 우리들은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 번 수천번씩 조금만 견디면 괜찮아질 거야 하는 비현실적인 약속들이 고요 속에서 머리를 쳐들고 소름 돋는 음색으로 속살거릴 때 유령과 함께 동거하는 기분들이 일제히 다가와 온 몸을 옥죄여 올 때도 일어서야 하는 본능은 늘 가슴속에서 멈출 줄을 모른다. 눈을 꼭 감고 무심하게 흘려보내고 싶은 그 아픈 순간들, 그때 그 순수한 본능에서 등을 돌리지 말고 과감하게 마주 서서 스스로의 아픔을 들여다 보고 같이 아파하고 견뎌주고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늘 우리의 마음을 묶어두고 모든 상처와 아픔을 외면하고 곪아서 더 큰 상처가 될 때까지 방치해둔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상처로 인해 곧고 순수하던 마음은 기형으로 변형되어 삐뚤어지게 자라날 수 있다.

삶의 리얼리티 한 무대에 올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기형으로 된 마음들이 생겨나 누군가 무너지는 모습, 잘 되어가다 일그러지는 모습에서 어떤 짜릿한 위안을 받는 가슴 아픈 들이 있다. 친근하게 서로를 다독여주던 얼굴들도 가끔은 악마의 속삭임에 홀리듯 빙의된 수많은 각이한 얼굴들을 한 채 본인도 모르는 어떤 불투명한 얼굴이 되어 자기도 모르는 그 속내가 스스럼없이 가슴속에서 머리를 쳐들 때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본성이 민낯으로 드러나 선한 마음을 욕보일 때 마음은 이미 돌처럼 굳어져버리고 더 이상 웃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기가 어려워지는 스스로를 만나게 된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닌가?!

그러나 사람들은 살면서 저도 모르는 그런 마음이 본의 아니게 간직하고 있는 자신을 한 번쯤은 놀랍게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너무 힘들어서 미칠 것 같거나 만사가 아무런 의미 없이 흥청흥청 흘러갈 때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이 찬란하게 성공으로 반짝거리면 괜한 실의를 느끼며 지금까지 넌 뭐 하고 있었냐는 그런 질책의 채찍이 온 마음을 후려치고 뒤통수를 내릴 칠 때면 가슴은 쓰라리다.

스쳐가는 순간의 생각이 친구나 지인이 잘 된 것이 배 아파 오는 불순한 감정이 아니라 너무 멋져 보여서 상대적으로 볼품 없어지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울고 싶고 더 주저앉게 되어 생기는 질투는, 그 형체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악마의 속삭임일 것이다.

우리는 똑같은 시간을 분배받아 살아가지만 각자가 보는 각도에 따라 시간의 질과 량은 달라지며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 현상들이 생기고 감내야 할 일들 또한 다르게 다가온다.

사계절 피고 지는 꽃들도 바람과 햇볕의 온도에 따라 색을 곱게 물들이고 잎의 형태를 달리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향기와 빼어난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봄과 여름이면 더 호황을 이루는 꽃나무들의 황금 계절이다.
이 때면 백화가 만발하여 꿀벌과 나비들이 멈추질 않고 날아든다.

우리에게도 차례 지는 황금계 절인 젊음과 열정의 20대, 30대, 40대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
이 때면 짊어져야 할 것들이 투성이다. 연애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결혼하고 아이도 가져야 하는 이때 꿈은 점점 자신과 멀어지고 희미해져 꿈 많고 패기가 넘치던 자신의 원래 모습도 점점 사라져 간다.

삶에서 오는 수많은 경쟁자들과 맞서 이겨야 하는 삼사십 대들은 젊음과 열정을 과시하며 부딪치고 솟아오르고 무너지고 쓰러지고 추락도 한다. 그렇게 치열한 젊음이 지나가면 다시 못 올 그때가 다시 온다면 성공의 길을 걸을 것만 같은 부푼 가슴이 꿈틀거릴 것이다. 다시 그런 날이 올 수만 있다면~

그러나 미숙한 인생이던 성숙된 인생이던 한 번밖에 없는 우리의 인생에는 리허설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매일 연속 달리고 그러다 넘어지면 일어나서 또 뛰여야 하는 생방송이니까~

여기서 넘어지고 그냥 쓰러져 있느냐 아님 일어나 다시 기어서라도 스스로의 목적지를 향해 갈 것 이냐에 따라 결과는 현저한 차이로 우리들 앞에 나타난다.
그때의 선택은 선택의 여지를 줘야 할 선택지가 아니어야겠지만 생각 차이로 당락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은 스스로에게나 누군가에게 과녁으로 된 그에게도 참으로 좋은 에너지로 된다.
그 누구의 성공에서 반짝이는 희망을 볼 수 있는 사람들보다 넘어지고 실패해도 묵묵하게 힘든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시 용기 내어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짜릿한 위안과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릴 수 있다. 이것은 그 시간에 그들을 만나서 그들에게서 넘어지고 심장이 고장 나도 살아갈 수 있는 삶에 대한 용기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무리 힘든 시간도 아무리 슬픈 사연도 피가 줄줄 흐르는 상처를 치유하고 천연하도록 아름다운 꽃으로 필 수 있는 찬스를 다시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가끔 우리는 그런 상처 난 가슴을 안고 움츠러져 있는 사람들과 마주해야 한다. 그런 아픔을 안고도 살아갈 용기를 잃지 않고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구원처럼 떠올려야 한다.

타인의 망가진 모습을 보고 위안을 받는다고 하여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그 망가짐이 끝이 아니고 그 헐거운 자신을 밟고 일어서서 무욕의 경지에서 보다 안정되고 성숙된 모습으로 인생의 진리를 깨우쳐가고 있다는 것은 보석처럼 아름다운 감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스스로의 인생에 제2르네상스의 시기를 맞이 할 준비로 가득 채워야 한다.

바위를 뚫고 벼랑 끝에 피어난 꽃의 아름다움은 그 여느 꽃보다 아름답다. 그렇게 벼랑 끝에 몰린 상처가 꽃으로 필 때 그 아름다움의 아우라가 주위를 물들이고 물들어져 서로의 에너지로 흐르는 생의 기운은 무엇보다 고귀하고 경이롭고 사랑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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