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몽
강희선
“엄마, 나 어제 이상한 꿈 꿨어!”
약간 흥분을 하면서 말하는 딸의 눈빛이 야릇했다.
“꿈에 고양이가 손을 물고 놓지 않아서 놀라서 깼어.”
우리 모녀는 서로 마주 보며 ’혹시 태몽이 아닐까?’ 하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요즘 딸은 임신을 준비하느라 꽤 초조한 것 같다. 결혼한 지 3년이 되도록 그냥 임신을 미루고 있던 딸이 자기보다 후에 결혼 한 친구들의 임신 속 식을 하나 둘 들으면서 심적인 부담을 은근히 받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식들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 시부모님들에게도 이젠 손주를 안겨드릴 때가 된 것 같다면서 본격적으로 임신 준비를 서둘렀다. 우선 병원을 찾아갔고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라는 의사의 말대로 식단을 바꾸고 신랑에게도 금주령을 내리고 열심히 임신에 올인하고 있었다.
어느덧 4개월이 지났다. 임신이 생각처럼 이루어지지 않자 딸과 사위의 얼굴에는 실망과 초조한 기색이 어리기 시작했고 서로의 마음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서로를 다독이는 모습이 나에게는 더 짠하게 안겨왔다.
너무 부담으로 느끼지 말고 마음을 느긋하게 가져보라고 조언해주는 나도 실은 앞서는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래도 무조건 긍정적인 마음으로 새 생명의 도래를 기다리기로 마음을 다독였다.
잔뜩 기대에 차 기다리는데도 기별이 없어 시들시들해지는가 싶었는데 일 때문에 한국에 간 딸애한테서 임신한 것 같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임신테스트기를 무려 100개 정도를 썼다는 딸애의 말에 오죽 기다렸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왔다.
그리고 가슴이 뭉클 해났다. 고고 성을 울리며 이 세상에 태어나서 엄마의 젖꼭지에 작은 입을 딱 붙이고 오물오물 젖을 빨던 딸이 임신을 했다니,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재롱을 피우던 유아시절이 어제인 듯싶은데 아이를 잉태했다니,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엄마는 무슨 꿈 꿨어?”
“글쎄, 아직 나의 꿈에까지는 기별이 오지 않았는데…”
엄마로서 딸의 태몽을 꾸지 못한 것이 괜히 미안하고 당황스러웠다. 태몽도 타이밍에 맞게 잘 꿔줘야 딸도 즐거워할 건데 태몽이 왜 일찍 나를 찾아주지 않는지 서운하고 마음이 급해졌다.
그리고 이틀 뒤에 나는 오늘은 태몽을 꿀 수 있을까 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자는데 이불속으로 웬 황갈색 강아지가 들어와서는 내 손을 문채 놓지 않고 있었다.
임신하면 무조건 태몽을 꾸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딸을 임신했을 당시에는 복숭아도 따고 토마토가 엄청 많이 달린 텃밭에 서있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큰 언니가 조카딸을 임신했을 때는 엄마가 연꽃 한송이를 선물로 줘서 엄청 좋아하던 그 태몽이 기억나서 나도 꽃을 꺾거나 꽃을 받는 꿈을 꾸고 싶었는데 웬걸, 이번에는 강아지가 이불속에 들어와 있는 꿈이었다. 남자아인가? 난 얼른 딸한테 자랑했다.
“나 태몽 꿨어! 황갈색 강아지가 내 이불속으로 들어왔지 뭐야! 아주 잘 생긴 아들일 거야!”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환희에 찬 딸애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딸의 목소리는 봄 향기처럼 내 몸을 감싸는 것 같았다.
큰 언니는 알록달록한 예쁜 오징어를 여덟 마리나 봤다고 복권을 사려고 했는데 그게 조카딸 태몽이었다면서 복권에 당첨된 것보다 더 좋아했다. 그러면서 딸일 거라고 예측했다.
나는 아들, 큰언니는 딸이라고 우기면서 서로 내기도 했다. 태몽만으로도 집안은 행복이 넘쳤다.
임신이 확실했다. 딸애는 온 가족의 1호 보호대상이 되어 양가의 사랑과 보호를 한 몸에 받으며 태교에만 골몰했다. 딸의 얼굴에 전에 없던 행복의 물결이 남실거리고 종일 뭐가 그리 좋은지 흥얼흥얼 콧노래가 끝이 없다.
입덧이 심하지 않았으면 하는 나의 간절한 바람대로 딸은 잘 먹고 잘 자고 가끔씩 헛구역질하는 정도여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50일이 되자 딸 내외는 병원을 찾아갔다. 딸과 사위는 곧 초음파로 소중한 새 생명을 확인할 수 있다는 기대에 떨리고 벌렁거리는 심장을 달래며 두 손을 꼭 잡고 산부인과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간호사의 호명에 조심스레 침대에 누워서 검사받을 딸애의 모습을 떠올리려니 어느새 내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했다.
며칠 뒤 딸애로부터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건네받았다. 조그마한 까만 점이 태아라고 한다. 저토록 작은 생명이 딸의 배속에서 자라난다니 새삼스레 신기하면서 기특했다.
이제 8개월 남짓이 지나면 우리 집에도 새 생명의 왕림으로 기쁨과 행복의 웃음이 넘쳐나리라고 생각하니 지금부터 들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