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부뚜막을 그리면서
강희선
지금은 엄마의 그때 그런 부뚜막이 없다. 세월이 흘러 많은 것들이 변해가고 문명은 부뚜막도 현대시설로 탈바꿈해놓았다. 아궁이에 짚을 넣고 밥 짓고 물 끓이던 그 시골집 부뚜막은 벌써 사라지고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냉장고 이 외에도 여러 가지 가전제품들이 산뜻하게 주방을 차지하고 있다.
매일 아침이면 머리에 수건을 쓰고 먼지를 풀풀 날리며 재를 퍼내고 다시 짚단을 아궁이에 꾸역꾸역 넣고 밥 짓던 부뚜막, 볏짚으로 불을 지펴서 밥을 짓고 물을 끓이고 방을 덥혔던 시골마을의 재 먼지를 뒤집어쓴 부뚜막은 그래도 엄마의 깨끗한 걸레에 닦이워서 늘 정갈함을 유지했다.
유난히도 그릇들을 좋아했던 엄마는 여러 가지 그릇들을 사서 찬장 우에 짝을 맞춰서 진렬 해 놓기를 즐겨하셨다. 그 찬장 우에 꽃다지 그릇들을 사흘이 멀다 하게 높은 찬장에서 하나하나 내려서 큰 대야에 넣고 깨끗이 씻고 반짝반짝하게 닦아서 찬장 우에 올려놓고는 흐뭇해하던 엄마의 얼굴에는 미소가 찰랑거렸었다.
이쁜 그릇을 좋아하고 화분을 기르는 것을 좋아했던 엄마의 손을 거쳐 많은 식물들이 우리 집 창턱에서 이쁘게 자랐었지. 몇 년이 지나야 꽃을 한번 피운다는 군자란도 엄마의 정성 어린 손끝에서 이쁜 꽃을 피웠고, 불 밝혀주는 초롱꽃처럼 생긴 꽃이라고 초롱꽃이라 불리던 꽃, 가을이면 피어나는 노란 국화꽃, 장미꽃을 닮은 월계화. 몸에 온통 가시로 뒤덮인 흉측한 선인장도, 그리고 어느 날인가 몸에 약으로 쓰인다는 알로에도 엄마의 손에 이끌려 비좁은 창턱에 다른 꽃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꽃과 나무, 그리고 어항 속의 물고기, 우리 식구 외에도 엄마는 돌볼 식구들이 많았던 것 같았다.
음악을 켜면 꽃들이 춤을 춘다면서 식구들이 외출하면 녹음기를 켜놓고 춤추는 꽃들에 반해 좋아하시던 엄마, 한 번이라도 그 춤추는 모습을 들여다보라고 하여 본 적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음악소리의 그 울림의 진동에 흔들거리는 것인지 꽃이 절주에 맞춰 춤을 추는 듯했다. 그렇게 바쁜와중에도 엄마는 그런 사소한 일감을 만들어서 일상을 즐기셨다.
이처럼 세상의 사소한 것들에 마음을 기울여 사랑하고 즐기시던 엄마에게는 가끔씩 부뚜막에서 다른 식구들이 없는 사이면 콩 졸임에 소주를 털어서 넣으시던 슬프고 안쓰러운 시간들이 있었으니 그런 엄마의 모습을 사이 문 뒤에서 걱정스럽게 훔쳐보던 어린 내 모습이 한 폭의 회색 그림으로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언제부터 소주를 즐기셨을까? 어린 나는 그런 걸 잘 몰랐지만 어느 날인가부터 엄마는 모세혈관이 터져서 늘 몸에 피멍이 들기 시작하고 드신 음식을 소화시키기 힘들어하셨다. 그래서 저녁이면 엄마 곁을 차지할 수 있었던 행복만큼이나 늘 드신 음식들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셨던 엄마의 배를 쓸어주는 일들을 귀찮게 생각하면서 매일같이 해야 했던 그때, 졸려서 문지르는 둥 마는 둥 하면 좀 더 힘을 줘서 문지르라는 엄마가 그땐 정말 짜증 났다.
“엄마, 언제까지 문질러야 하지?” 혼자서 웅얼거리면서 잠이 들가 말까 할 때면 옆에 누운 둘째 언니가 나를 밀어내고 엄마 옆에 누워서 문지르면 그 소중한 엄마 옆자리를 언니에게 양보하고 꿈나라로 빠져들었던 못난 기억들이 지금도 날 슬프게 한다.
하얗던 엄마의 얼굴은 누렇게 뜨기 시작했고 늘 피곤해하셨다. 뒷동네에 살고 있는 유명한 의사 선생님을 혼자서 매일 찾아다니시던 엄마, 그 외롭고 긴 걸음을 늘 혼자 하셨던 엄마, 그렇게 삶을 열망하시고 생을 사랑하시던 엄마 앞에 간암이라는 무서운 병마가 찾아왔던 것이다. 부뚜막에서 혼자 외로움과 인생의 쓰라림을 소주에 타서 콩 졸임을 안주해서 마시던 엄마의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는 천방지축이었던 그 시절의 나, 가끔씩 걱정 어린 눈길로 쳐다보았던 엄마의 모습에서 난 인생에 대한 비애가 무엇인지를 다는 읽지는 못했지만 걱정의 그림자가 내 마음에 찾아드는 시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근심과 걱정 외에 이미 나빠질 때로 나빠진 간 때문에 소화작용을 잘하지 못하는 위를 어루 쓸어주는 일 외에는 딱히 해준 기억이 없는 그 시절의 나를 용서가 안 되는 지금은 엄마를 그리면서 다시 태어나면을 마음속으로 다짐하군 한다.
더 이상은 집에서 치료가 불가능하여 병원으로 입원하신 엄마의 병문안을 삼촌 따라갔던 날 난생처음으로 큰 병원에 가보았다. 기분 나쁘게 콧속으로 들어오는 소독수 냄새, 아픔으로 일글어진 많은 환자들, 복수가 차서 임산부 배처럼 커진 엄마의 배, 얼굴에는 아픔을 참고 억지로 피워 올린 엄마의 서글픈 미소, 이름 모를 현기증으로 나는 병원 있는 게 고역이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아직 면회시간이 남았지만 집에 가자고 삼촌에게 졸랐던 철없던 기억들이 가슴 아프게 떠오른다.
삼촌 따라 버스역으로 향하는 우리 뒤를 따라 나오지 말라는 삼촌의 말도 뭉개버리고 하얀 환자복을 입고 버스역까지 끌 신은 끌며 따라 나온 엄마의 얼굴은 같이 갈 수 없는 아픈 몸으로 한없이 슬퍼 보였다.
이렇게 보내면 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들이 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떠나는 철부지 막둥이의 행동이 서운해서인지 왜소한 모습은 황폐한 가을 벌판처럼 쓸쓸하고 허허로왔던 것 같았다.
버스가 움직이고 창 너머로 힘없이 손을 흔드시는 엄마의 모습이 흐릿해지면서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을 때에야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음을 알았다. 조금만이라도 더 곁에 있어드리지 못한 후회의 눈물인지 이별의 눈물인지 이미 볼을 타고 내리기 시작해서 창 너머 엄마의 왜소한 모습도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다시 내려서 엄마께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난 망부석처럼 의자에 앉아 사라져 가는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쳐다만 보았었다.
그때 그렇게 딱 한 번의 병문안의 기회도 병문안답게 해드리지 못한 그 설익은 십 대의 나, 모든 것들이 후회와 한으로 남아 늘 나를 슬프고 아프게 하면서 몇십 년을 불효로 울어야 하는 이 못난 자식의 비애를 엄마는 보고 계실까?
요즘은 가끔씩 내 모습에서 엄마의 모습이 비친다. 부뚜막에서 외롭게 앉아 소주에 눈물을 타서 마시던 엄마의 모습이 우리 집 거실에서 오도카니 앉아 홀로 외롭게 맥주를 홀짝이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삶의 질곡으로 힘든 하루하루 홀로 부뚜막에서 쓰디쓴 소주로 쓰라린 가슴을 다독이시던 가엾은 엄마의 모습이 가슴을 후비면서 내 머릿속을 비집고 다닐 때면 가슴이 얼얼하고 슬픔으로 절여지는 마음속에 시원한 맥주를 부어 넣는다.
칠 남매 중 맏아들인 아빠에게 시집와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울 엄마, 이목구비 훤한 신랑 만나 일남 삼녀 키우면서 행복으로 가슴에 핑크빛 물 들었을 때도 있었으련만 아래 우로 조롱조롱 달린 식구들, 불같은 호랑이 아빠, 가끔씩 주사 부리는 도련님들까지, 난산으로 핏덩어리 막둥이를 철 모르는 아홉 살 난 큰 딸에게 맡겨놓고 병원에 가서 겨우 건진 목숨, 그렇게 얻은 막둥이는 철 모르는 큰 딸 등에서 조용히 저 세상으로 떠나가고 (그래서 막둥이가 된 나) 몸과 마음엔 아리고 쓰린 상처만 남아 이 모든 것을 가슴에 담아 삭이고 삭혀서 소주잔에 담아 털어버린 것이 암덩어리가 되어 하루하루 커져갔던 것이다.
죽음이란 미지의 세계가 주는 두려움으로 참담한 하루하루를 그 쓰디쓴 소주로 버티셨을 그 시절,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저승문을 두드렸어야 했던 엄마의 그때 그 마음을 피붙이 자식들은 눈곱만큼도 이해할 수가 없었음을 살면서 한이 되어 지금도 가슴은 쓰리고 아프다.
49세 젊은 나이에 끝내는 암이라는 병마의 손을 피하지 못하고 엄마는 봄비 내리는 봄날 저 하늘나라로 떠나가셨다. 줄줄이 흘러내리는 봄비의 줄기를 잡고 하늘로 올라가셨을까? 엄마가 누워계시던 자리엔 차가운 달빛만 깔려있고 창턱에 있던 화분들도 주인의 부재를 아는지 하나둘 시들면서 죽어갔다.
식구들은 하나같이 시들 어죽 어버리는 엄마의 화분들에 의견이 분분하였다. 화분에도 부고를 붙였어야 한다고 하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했다. 나는 이쁜 화분들도 엄마 따라 하늘나라로 갔을까? 아님 식구대로 하는 일도 별로 없으면서 아끼시던 화분들을 등한시할까 바 다 데리고 갔을 가? 지금쯤이면 엄마의 손끝에서 이쁜 자태로 음악에 맞춰 춤추면서 엄마를 즐겁게 해 드리겠지. 가끔씩 하늘 아래 살고 있는 자식들을 내려다보실까? 맥주를 홀짝이는 딸의 외로운 모습을 내려다보고 한숨짓고 계실까?
엄마, 미안해요~ 이렇게 홀로 울고 있는 모습 보여드려서~그런데 괜찮아요.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아도 홀로 걸어가야 하는 길과 홀로 버텨야 하는 시간들이 있음을 당신도 아시잖아요.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사연과 아픔들을 누구나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잖아요.
엄마가 홀로 모든 아픔과 고통을 삭히고 삭혀서 술에 타서 가슴 밑바닥으로 털어서 넣고 모든 것들을 가는 세월에 가볍게 흘러 보내고 죽음 앞에서도 초연해질 수 있듯이 이 시간 또한 흘러가고 모든 일들은 사라질 거예요.
기뻤던 순간들도 힘들었던 시간들도 흘러가는 세월에 밀려가는 자연의 섭리가 있음을 인간은 그냥 고맙게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함을 살다 보면 깨닫게 되잖아요. 술로 버틴 시간들이 간혹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하지만 시간은 가고 길은 열리기 마련이잖아요.
세상의 모든 아픔과 슬픔 , 기쁨과 행복을 뒤로 한채 또 다른 사연을 담으며 지구는 돌아가고 흐릿한 머리를 식히며 찾아오는 청신한 아침 공기를 마시고 나면 또다시 살맛 나는 이 세상, 전날까지 무너질 것 같던 몸뚱이도 똑딱거리는 시계 소리에 리듬을 맞춰 움직일 거예요.
이렇게 하루하루를 선물처럼 받을 수 있는 아침이면 기분이 날 것 같은 날들도 있어요. 새로운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시간을 내 손에 쥐고 새날을 시작하는 기쁨이 있어요. 다만 잠깐씩 휘청거리는 현기증으로 힘든 날이면 낮과 밤, 밝음과 어둠이 있듯이 마음속으로 찾아드는 허무와 슬픔에 자리를 비워주고 그것들이 내 마음속에 들어오게 된 리유와 그런 것들에 흔들리고 휘청이는 시간들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하니깐요.
그러니 괜찮아요. 새날이 오면 아침에 뜨는 태양처럼 얼굴은 밝아지고 재잘거리는 새처럼 포르릉 포르릉 날듯이 가볍게 움직이면서 삶을 즐길 거예요.
세월의 흐름에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과 줄어들지 않는 정이 있다면 모정이라고 생각되는 지금 저는 당신을 그리고 있습니다. 부뚜막에서 소주를 털어 넣던 당신을 그리면서 그때 당신의 그 아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은 시간들을 가져봅니다.
지금 곁에 당신이 계신다면 어쩌면 함께 세상 쓴소리 단 소리 하면서 잔을 기울일 수도 있지 않을까? 두 모녀가 잔을 부딪치고 잔을 기울이는 다정하고 따뜻한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제가 좋아하는 맥주를 마시고 있는 중입니다. 엄마의 그 부뚜막을 그리워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