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다독이며

3)

by 강희선



배냇저고리가 준 행복


강희선

꼭 28년 만에 만들어보는 배냇저고리다. 나의 유일한 분신인 딸이 지금 임신 5개월 차가 된 것이다. 딸애의 불거지는 배를 보면서 뭐든 만들어 주고 싶은 어미의 마음이다. 맛있는 음식도, 이쁜 선물도, 해줄 수 있는 것이면 다 해주고 싶은 이것이 천하 엄마들의 사랑이겠지!
이번에도 내가 손수 만든 배냇저고리를 딸에게 선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너무 행복하다. 물론 많은 선물을 하겠지만 배냇저고리만큼은 꼭 내가 직접 만들어주고 싶었다.
28년 전 딸애를 임신했을 때도 나는 내가 직접 만든 배냇저고리를 제일 처음으로 천사같이 이쁘고 귀여운 딸에게 입혔다.
지질히 지독한 가난 때문에도 아니고 그냥 손수 해주고 싶은 충동으로 꽤나 입을만했던 봄가을 티를 가위로 서슴없이 잘랐다. 어쩌면 만들고 싶었던 충동이 현성까지 갔다 올 시간을 넘어서버렸던 것이다. 요즘 원단처럼 고급지고 산뜻하지도 않은 내가 입던 포근한 살구색 티를 가위로 슥슥 베어서는 스스로 재단을 하고 손수 바느질로 한 땀 한 땀씩 감쳐서 만든 배냇저고리는 새 원단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나의 정성과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사랑으로 한 땀 한 땀 만들어진 배냇저고리였다.
그때는 앳된 23세의 임산부로 새 생명의 태동을 느끼며 두근거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한 땀 한 땀씩 손바느질로 배냇저고리를 만들었었다. 바느질할 때마다 더 없는 행복의 파도 속에서 행복의 출렁임을 만끽했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오늘은 28년 만에 앞으로 4~5개월 뒤면 우리 곁으로 다가올 천사 같은 아기의 배냇저고리를 만들었다. 그때의 감동적인 태동과 설렘은 없지만 배냇저고리가 모양새를 갖추며 만들어질 때의 작은 기쁨과 감동의 파문도 나를 충분히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딸애가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속의 기쁨이 자꾸 웃음으로 번져서 입가에서 찰랑인다.
실은 딸애에게 가르쳐줘서 직접 만들도록 해주고 싶었는데 요즘애들은 그런 것에 시간 빼기는 것은 별로인지 배울념은 없다. 그리고 돈을 주면 더 좋고 고급진 아기 옷들이 넘쳐나는 세상인지라 그런 것들을 골라가면서 사는 재미도 나름 행복한 것 같다. 그래도 하나쯤은 내가 만들어서 주는 것을 좋아하고 고집하는 편이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참 좋아했다. 내 아기니깐 내가 스스로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들이 참으로 많았던 것 같았다.
“이것은 너에게 줄 엄마가 직접 만든 첫 선물이야! 이쁘지?” 이렇게 배속의 아기랑 소통을 하면서 ㅎㅎ내가 유별난 것인지 어찌 되었던 이번에도 이 담당을 직접 하게 되어서 기쁘기만 하다. 딸도 엄마가 만들어주는 배냇저고리는 기대하는 것 같다. 만들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이런 것을 만드는 소질도 쪼금 있어서 꽤나 이쁘고 산뜻하게 만들어 줄 거라는 걸 믿고 있는 것 같다.
천사 같은 아기가 이 할미가 직접 만들어준 앙증맞고 포근한 배냇저고리를 입고 새근새근 자고 있을 모습은 상상만 해도 기쁨이 찰랑찰랑 내 가슴에 스며들고 입가에 웃음이 일렁일 것이니 그 얼마나 행복한 순간순간들을 만들어 줄 것인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 것이 있고 그런 것을 행복하게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행복한 게 아닌가?
나는 이렇게 아주 작고 소소한 행복으로 나를 즐겁게 만드는 일을 하기 좋아한다. 그래서 늘 소중한 사람에게는 내가 만든 것을 주기 좋아하는 버릇이 있다. 내가 행복하니깐 그들도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일방적인 생각을 터무니없이 하면서 마냥 그런 것들을 즐기고 있다. 코바늘로 짠 모자나 목도리를 선물한다던지 손 편지를 쓴다던가 타인이 나에게 써준 손 편지를 오래도록 간직하고 가끔씩 꺼내서 추억을 보듬 군하는 것을 행복으로 간주한다.
행복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다. 행복은 이렇게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에서 온다. 늘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맛있는 차를 끓여서 나누어 마시고 조촐하고 담백한 시간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 자체가 행복이다.
지금 내가 곁에 있어서 해줄 수 있는 것들, 그런 것들이 있어 행복한 시간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작은 축복에 위로와 치유를 받으면서 행복해지는 것은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서만 빛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저기에 하얀 배냇저고리가 반듯하게 행복을 건네 줄 시간을 기다리며 고요한 달빛에 담겨있다. 고즈넉한 밤은 행복을 담고 깊어가고 있다. 내일의 행복을 약속하면서 서서히 천천히 행복의 꿈을 익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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