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또 한 번의 인연은 가고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들에 그리움은 무성하기만 합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수없는 풍경을 만들고 또 다른 경치들로 인연은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그대 곁을 지나칠 것이니 굳이 잡으려고 바둥거리던 마음도 지쳐 사그라드는 시간에 포위되어 처져가는 일상들입니다.
살아보니 알 것 같은 세상사는 그저 그렇고 그런 시들한 것들인데 아쉬움은 늘 가슴에서 응어리로 맺혀 울컥거리게 하는 무엇이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올라옵니다.
가는 사람, 가는 세월 막을 수 있는 이는 없습니다. 마음이 떠난 사람을 잡아본들 빈 껍질을 움켜쥐고 있는 추한 모습만 궁상스럽게 남을 것이니 그냥 가는 대로 두는 것이 어쩜 해탈의 또 다른 경지가 아닐까요?
딱 여기까지가 인연이라면 손을 놓아주어야 하는 가벼운 인연도 그리 나쁘지는 않으니 미움 없이 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조금은 질긴 인연, 힘들어도 같이 하고 싶은 인연을 만나면 후회와 아픔 속에서도 조금만 더 붙잡고 싶은 시간들 속에서 상처로 뭉개지고 허무에 허탈해질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시간만큼 버티다가 어쩌면 그 답답한 갑속에 갇혀버려서 질식할 것 같은 시간 속에서 나오고 싶었던 건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일 수 있을 때 손을 놓아야 합니다.
이제는 할 만큼 했다고 이제는 정말 견디기 버겁다고 지쳐서 손을 잡을 수 없을 때는 정말 놓아주어야 합니다. 미움마저 익숙해진 환경에서 생소한 곳으로 옮겨지는 적응력이 퇴진하여 자꾸 만져지는 마음 벽에 돋아나는 앙금들을 무마시키는 시간 속에서 함께 무뎌지는 감각을 살려내기에는 너무나도 늦은 시간입니다.
그냥 흐르는 시간으로 베인 상처에 가제를 붙여주며 다독여 줄 것이라고 잠시라도 얼마나 큰 위안으로 곁에 머물까만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일어서야 할 시간임을 정확히 알려주며 새로운 시간들이 다가옵니다.
인연은 흘러가고 흘러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연으로 앓았던 세월은 흘러가면서 모든 깊고 옅은 상처들을 지워줄 것이라는 생각들이 주뼛이 일어서면서 내키지 않아도 지나쳐가야 함을 여린 살갗에 아픈 흔적을 남기고 스치며 지나갑니다.
누가 동행을 해주든 나 홀로 걸어가든 저 앞에 놓인 길을 우리는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움의 숲이 무성하게 자라서 길을 가리고 기억의 넝쿨들이 발목을 잡아도 가시나무에 옷이 찢기고 살이 떨어져 나가도 뒤를 돌아보지 말고 헤쳐가야 합니다. 누구도 떨어져 나간 살갗의 상처가 얼마나 쓰린지를 나처럼 기억해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밀었던 손은 돌아서는 그 순간에 차가워진 겨울밤의 바람처럼 시리게 할 것이고 모든 그리움을 자르려고 밤을 새워 낫을 갈지도 모릅니다.
더 이상의 부담스러운 인연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혼탁해진 못에 뿌리 없는 연꽃처럼 한때의 아름다움은 속절없이 사라지고 바람이 불 때마다 일렁이는 물결 사이로 무너지는 퇴색한 꽃잎들은 둥둥 떠 있는 이물질처럼 서로를 품을 수도 엮일 수도 없는 부평초 같이 흐르다 사라질 것입니다.
지지리 질긴 인연이었다고 어쩌면 만나지 말았어야 했던 악연이었다고 이젠 지워줄 거라고 하루에도 열두 번은 맹세하면서도 방안 가득 채워진 추억들을 쓰레기 버리듯이 버리지는 못하고 정녕 나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갔는지? 수많은 날들을 한 장으로 접어 가는 바람에 날려 보낼 용기를 키워야 합니다.
사기당한 것 같은 시간들을 보상받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려서 체념을 합니다. 어쩌면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을 똑같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혹이 나를 당혹하게 만들고 스쳐가야만 하는 이 순간들을 만든 장본인은 스스로임을 확인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순간의 아름다움에 흐리워진 눈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한 겹씩 한 겹씩 벗겨지고 드디어 추한 몰골들만 눈에 들어오면서 사랑의 감정이 비워지는 것만큼 미움이 싹트고 그 싹들이 자라서 마음을 뒤덮어버려 더 이상의 사랑이 차질할 자리는 사라질 것입니다.
미움이 가득 차 버린 마음엔 슬픔마저 들어설 자리가 없어 마음은 파삭하게 말라가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갈림길 앞에 서자 갑자기 눈에서 찝찔한 액체가 흘러 입귀로 들어와서는 긴 세월이 만들어 낸 슬픔은 짠맛임을 가르쳐줍니다.
방향을 잃고 헤매는 눈을 들어 푸른 창공을 보고 맑은 눈물로 탁해진 눈을 깨끗이 정화시키고 하얀 구름송이에 무거운 마음 실어 보내면 그 무거웠던 인연도 가벼워지고 홀연 같이 해준 시간들이 고마움으로 다가와 가슴을 적시며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한동안 상처의 깊이만큼 마음은 아픔으로 옹송거리고 수축되어 작아질 대로 작아져 그 어떤 색채의 감정에도 굳어져 있던 옹색한 감정들이 해후의 느슨한 햇볕에 서서히 풀리는 그런 시간이 옵니다.
살아가면서 피치 못했던 오해로 어긋난 인연들이 오래도록 가슴에 앙금으로 남아 아픈 시간들을 보내야겠지만 용서는 더 큰 자비로 웃으면서 뒤돌아볼 수 있는 위안처럼 여린 살들을 보듬을 그때가 올 것입니다.
‘용서는 미운 마음에 방 한 칸을 내주는 거라고’
하던 한 드라마 대사가 떠오릅니다. 마음에 용서의 자리를 내주어 참회의 눈물이 말라버린 가슴에 봄비처럼 촉촉이 적셔줄 때면 너무 멀리 와버린 망각의 해안에서 그대를 찾을 수 있겠냐만은 오래도록 머릿속에서 머뭇거리는 그리움들을 이젠 볕이 좋은 마당에 널어두어야겠습니다.
눅눅해진 아팠던 추억에 곰팡이가 피는 걸 지켜보지 말고 부는 바람에 뽀송뽀송 말려서 이제는 추억의 상자 속에 고이 넣어두고 오랜 시간은 그냥 잠을 청해두도록 해야겠습니다. 지난 추억의 미련과 어느 한동안 단절하다 보면 더러는 잊힐 것이고 새로운 인연들에 빈자리를 내여주어 따뜻함으로 서로를 품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은 때론 타인의 인생에서 례의 바르게 빠져주는 센스도 필요함을 살아가면서 배웁니다. 내가 있어 불편함을 주고 내가 있어 행복함을 느끼는 시간과 장소를 알아서 빠져주고 알아서 손을 내밀어주는 일들 생각보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매끄럽게 살아가는 삶의 재주를 부리면서 다시 만날 인연이면 꽃으로 향기로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생에서 다 하지 못한 인연 이 생에서 못다 한 사랑을 몇천억 겁이 지나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스쳐지날 지라도 새로운 인연으로 또 다른 사랑을 하면서 더 큰 아픔과 상처에도 흔들림 없는 신념으로 다지고 아낌없이 주고받는 그런 인연을 만나면 그땐 또다시 후회하더라도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비워두어야 하겠습니다.
가을바람이 설익은 농가의 경치에 울긋불긋한 색깔들을 물들이며 선들선들 불어옵니다. 영글어가는 계절에 미숙한 모습으로 쭈그러진 쭉정이들이 가볍게 바람에 흘러가고 누구의 거름으로 단단해진 씨앗은 흙에 묻혀 또다시 만날 그런 인연을 기다립니다.
이렇게 세상의 인연은 모든 사물의 화합과 또 다른 인연들과의 만남으로 아름다운 사랑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세상 인연 또한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니 이 한생 어떤 인연을 만나도 아름답게 사랑하다 헤어질 수 있는 지혜와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