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멜로디

엄마의 잔소리

by 강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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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잔소리

강희선

이른 아침 알람 소리처럼 시간을 맞춰 들려오는 멜로디,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됩니다.
굳 잠을 파고드는 이 소음, 좁은 공간에 부딪치며 들려오는 이 익숙한 소리에 잡혀 수많은 유치한 감정들이 엄마의 잔소리를 먹고 자랍니다.
본인도 싫어하는 잔소리를 본의 아니게 가끔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허구픈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는 그런 잔소리를 엄마들은 인성교육이라고 합니다.
그럼 인성교육이 왜 잔소리로 변질되어 귀찮은 존재로 시까스러운 존재로 되어 서로를 괴롭히는 걸까요?
잔소리는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위치에서 변질이 되는 생각들, 시대적 차이에서 오는 맞지 않는 관점들과 그 사이에 부딪치는 불필요한 듯 필요한 부스러진 말들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두 번의 강경한 말로 바로 행동에 옮겨지고 끝냈으면 좋을걸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에는 훈육은 그 성질을 떠나 화풀이 식의 잔소리로 늘어지게 되고 이런 잔소리는 지나치면 예리한 비수가 되어 상대를 상처 받게 합니다.
서로가 가족이라서 괜찮을 것 같은 수많은 감정들은 가까운 관계 때문에 쉽게 던지는 말에서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입게 됩니다.
보통의 잔소리는 여자들이 하여 아낙들의 바가지 긁는 소리에 진절이 친다는 말도 종종 들리군 합니다.
잔소리는 또한 철이 들지 못한 자식들에게 하는 훈육임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의 뒤통수에도 늘 따라다니니 아마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철이 늦게 드는가 봅니다.
거개의 아녀자들은 늘 아침부터 일어나서 밥하고 밥 차리고 잠에 곯아떨어진 식구들을 깨워서 밥을 먹이고 출근길 등굣길을 재촉합니다. 늘어나는 식구들 따라 잔소리도 늘어납니다.
나긋나긋 조용하던 여자로부터 허리가 굵어지면서 아줌마로 탈락되고 우아함과 유연함은 서글프게도 서서히 집안 잡일에 파묻혀 사라집니다.
따라서 목소리 톤은 높아지며 여대 장부라도 된 듯이 강해지고 온 집안 식구들을 군림하며 잔소리를 널어놓기 시작합니다.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일만큼이나 그로 인해서 해야 할 말 또한 사소하고 자질구레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좀 더 우아하게 좀 더 세련되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상대들의 합리한 것 같은 요구를 무시하고 매일이다시피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는 일상들에 모든 형상은 구겨지고 감정도 파삭파삭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모든 일들을 이렇게 만드는 사람들이 본인들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떤 이쁜 말도 여러 번 하거나 오래 한다면 잔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기 때문임을 스스로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았을까요?
지나친 잔소리는 여름밤 모기들의 귀전에서 울리는 반복되는 소음처럼 사람의 신심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맞는 말을 하는데 이처럼 상대의 귀속으로 파고들기 힘든 일이 너무나도 화가 날 정도로 지치게 만드니 실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두어 번 정도 말해서 행동에 옮겨지지 않거나 대답을 들을 수 없으면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법도 한데 당신의 의사대로 움직이기를 바라는 그 마음은 고집을 넘어서 아집에 가까운 불가사의 한 감정으로 칫닿습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서로 사이에 감정의 흐름을 가로막는 두꺼운 벽이 생기고 대화와 소통은 벽에 부딪쳐 에돌다 어색한 공기로 공간을 배회하다 사라지고 서로의 허심 탄한 대화는 불가능해지면서 침묵 속에서 애매한 시간만 흐르게 됩니다.
이렇게 잔소리는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만큼이나 지치는 일입니다.
자식을 키워보면 누구나 거쳐가야 하는 인성교육, 자기 자식은 용이요 봉황인 만큼 자식은 곧 꿈이요 희망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잘난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 욕망은 하늘 아래 부모가 되어서 자식에 대한 이런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쯤은 인지상정이라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참 아프고 쓰린 훈육의 과정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밥 먹고 학교 가라, 옷은 많이 껴입고 가라, 숙제는 했냐, 게임을 그만 하라… 이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부모 자식 간의 전쟁은 거의 매일 연속 몇 시간 며칠 몇 년으로 지속됩니다.
이렇게 자잘한 알갱이들은 쌓이고 쌓이면 앙금이 되고 자식은 어느 사이에 커가고 서로의 대화로 이루어져야 할 훈육은 그냥 혼자 하는 독백으로 끝나고 듣고 있는 자식의 귀에는 소음처럼 들리는 푸념들을 대충 응해주는 정도로 마무리짓는데서 그칩니다.
아침 내내 꾸역꾸역 올라오는 수많은 말들을 참아가면서 알맹이만 골라서 해도 먹히는지 마는지 애매한 행동들은 폭발해버리기 직전까지 해봐야 혼자 하는 미친 쇼 같은데 왜 허구한 날 이러고 있을까요? 당신이 해주지 않으면 다 틀어져 벌 것 같은 인생길, 그렇게 혼자 소리라도 푸념을 널어놓고 나면 다는 아니더라도 더러는 듣고 행동에 옮기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그 말릴 수가 없는 잔소리가 그리울 때가 있으니 참으로 긴 시간이 지나고 부모가 되고 보면 느껴지는 또 하나 아픈 굴곡들이 남기고 간 흔적은 부메랑이 되어 귀속을 파고듭니다.
십 대에는 못이라도 틀어박고 듣고 싶지 않던 엄마의 잔소리, 이십 대가 되면 건성건성 받아주던 잔소리가 사십 대, 오십 대가 되면 내가 하고 있는 잔소리가 먹히지 않아서 울화통이 터져 가슴이 답답할 때면 엄마의 잔소리가 그리운 날들이 옵니다.
왜 한 번이라도 들어주는 척이라도 못했을까? 얼기설기 서린 주름만큼이나 못다 한 이야기들을 지금은 어디서 주절거리고 있을지 가슴이 먹먹해지며 그리워지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밥은 먹었냐?’
허구한 날 굶고 다닐까 걱정인 우리 식사문화는 모든 엄마들의 푸념 중에서도 손꼽히는 잔소리가 아니던가요? 그대가 옆에 있어서 그렇게 먹지 않고도 배부르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지금은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것이 그대 사랑인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여서 가슴 아픈 시간들을 후회의 눈물로 씻어보려고 해도 다는 씻어내지 못하겠지만 다시 한번 들어보고 싶은 아침 알람 소리 같은 엄마의 멜로디가 그리운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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