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다독이며

만남의 약속

by 강희선

만남의 소망

사랑하는 외 손주 유진에게:

네가 세상에 태어난지도 벌써 두 돌이 넘었네. 세 돌 때는 만날 수 있을까? 아님 네 돌 때…


이렇게 쓰는 편지도 언제 어떻게 전달될지 막연한 지금, 그래도 언젠가는 네 마음에 닿을 것 같은 예감으로 이 할미의 마음을 담아 이 편지를 쓴다.


네가 태어날 무렵에는 코로나가 막 무한시로부터 확산되기 시작하여 교통이 차단되기 시작할 때였어. 너무 빨리 퍼지는 코로나 균의 공포로 인해 거리에는 사람도 차도 없이 한산했지.


그런 와중에도 네가 곧 우리 곁으로 올 것이라는 확신으로 집안에는 하루하루가 행복한 감동의 기류가 감돌고 우리의 마음에 크나큰 기대로 부풀어 있었지.


달이 차고 출산 예정일이 지나도 네가 태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네 엄마는 “세상이 역병으로 복잡하니 나올 생각이 없는 거냐?”라고 커가는 배를 걱정하면서 그 높은 아파트 층계를 저녁마다 오르락내리락했었어. 출산이 늦어 위험해질까 봐 이 외할머니가 닦달을 했거든. 막달은 자주 운동해야 출산일을 앞당기고 순산할 확률이 높으니깐. 이 할미가 별 얘기를 다 쓰는구나.


그렇게 며칠이 지나도 출산 기미가 없자 미리 병원에 입원하여 너를 기다리기로 했어. 여차하면 제왕 수술을 해서 너를 받으려고 미리 싸인도 해놓고 산실로 들어간다는 네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고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너희 모자간의 평안을 기도하며 두 손에 땀을 쥐고 기다렸어.


천신만고 끝에 네가 세상에 태어나고 모자 둘 다 건강하다는 희소식을 전해 듣고 눈물이 헤픈 이 할미는 또 뒤돌아서서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야 했어.


일주일 되어 집에 오는 날 코로나 때문에 병원에도 가보지 못하고 미역국을 끓여놓고 창문에 매달려 너와 네 엄마, 아빠를 목 빠지게 기다렸던 날이 지금도 눈에 선하구나.



문이 열리고 일행이 들어서자 붓기가 채 가시지 않은 네 엄마 얼굴을 보네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갓 태어난 네 앞에서 부끄럽게도 눈물을 흘렸어. 사람이 사람을 잉태하여 이 세상에 보내오는 것이 얼마나 큰 진통을 겪어야 하는지 세상 엄마들은 다 아네까. 니 엄마가 배 아프게 너를 낳을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한 그 미안함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지만 흥분으로 들뜬 식구들 사이에서 너를 발견한 순간 이 험한 세상에 아름답고 신비한 새 생명을 도래시킨 경이로움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그 기묘한 감정에 휩싸여 얼굴에는 눈물, 입에는 웃음이 걸린 채 너의 존재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어. 빨간 옷을 입고 아빠 품에 안겨 있는 인형 같은 너는 그냥 기적 같았거든!


그날 이 외할미는 너에게 손수 만들어 온 순백처럼 흰 배냇저고리를 입히고 싶었지만 네 친할머니는 친할머니라는 신분으로 이 외할머니가 미역국을 끓이고 밥을 하는 사이 당당하게 병원으로 너를 데리러 가 너에게 빨간 옷을 입혀 데리고 왔어. 그때의 그 이색적인 이질감 때문에 공연히 속상해서 토라지려는 마음을 인형같이 귀여운 네가 싹 가셔 주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그때 이 할미는 마음 또 하나의 짐을 쥐고 있었어. 한국에 계시는 외증조할머니의 날로 악화되는 병세 때문에 언제든지 한국으로 날아가야 하는 마음으로 너와 네 엄마를 기다렸으니 하루가 천추 같았어. 너와 네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었던 시간은 옹근 24시간, 바뀐 잠자리 때문인지 잠을 설치고 우는 너를 두고 서로 달래 보려고 두 할미가 얼마나 치열하게 경쟁을 했던지, 지금 생각하면 그 유치했던 기싸움이 웃음이 나지만 그땐 우린 참 진지했어. 너와 네 엄마 옆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일분일초도 나에게는 금싸락 같았거든. 잠자는 시간마저 아까운 시간은 금방 지나가고 젖줄기가 돌아오지 않아 엄마 젖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너에게 젖꼭지 물리기에 성공한 네 엄마와 나의 그 땀나던 하룻밤이 잊히지 않아.



그리고 이튿날 나는 눈보라 치는 겨울 아침 사랑하는 너희들 곁을 떠나 한국으로 날아왔지. 그렇게 바람이 차고 마음 시린 겨울날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슬펐던 이별이었어. 한국에 계시는 외증조할머니가 위독하시다는 통보를 받았거든, 갓 태어난 인형 같은 너와 출산 통을 겪고 있는 네 엄마를 두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공항으로 가는 마음이 너무 쓰려 눈에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어.


그 뒤로 코로나는 세계 각국으로 거침없이 확산되고 드디어 하늘 길이 막히기 시작했어. 신청해서 일주일 안으로 나오던 비자도 나오지 않고 3개월 뒤면 가려고 했던 외할머니의 계획은 무산되고 귀엽고 기적 같은 네가 자라나는 모든 순간을 아쉽게도 영상으로만 봐야만 했어. 향긋한 젖 냄새와 솜사탕 같은 너의 하얀 손과 발을 얼마나 만지고 싶었는데… 그래도 인터넷이 밭달한 이 세상에 감사해야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상으로 웃고 애교 부리며 즐겁게 해 주려고 애쓰는 너를 보려고 휴대폰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는 시간들에 감사해야 했지. 더 기특한 것은 엄마가 이 외할미와 통화할 때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한 마디씩 따라 하고 이 할미와 영상 통화할 때면 한글로 해야 한다는 것까지 깨닫고 한글 책 가지러 뛰뚱이며 가는 네 모습에 감동은 배가 되고 영상통화가 끊어지는 것이 아쉬워 운다는 네가 내 핏줄 이어 서일 까 늘 가슴에 아쉬움이 남아 물결치는 이 감정의 여운은 만나지 못한 안타까움으로 매일 너와의 영상통화를 기다리게 되는구나. 너의 맑은 눈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며 눈으로 정을 나눌 수 없는 서글픔과 아쉬움, 멀리 있어 더 애절한 그리움의 시간들에 간간히 일어서는 원망과 원성을 달래느라 답답해지는 마음을 너의 그 순진무구한 눈길이 다 가셔 주지.



세상이 복잡해지고 환경이 나빠져도 우리는 그 한계를 넘어 더 밝고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기에 거리두기로 더 멀어져 피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서로 이어주는 매개체들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어버리고 마스크가 패션이 된 세상이 되었을 지라도 창궐하는 역병은 우리들의 영역에서 언젠가는 물러갈 것이고 세상은 다시 밝음이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견디고 있어.



여기저기서 백신도 만들고 치료제도 만들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여러 가지 이름을 달고 교묘하게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코로나도 요즘은 많이 줄어들고 있으니 곧 새날이 오지 않을까?!



우리는 복잡하고 위험한 이 시국을 잘 견디고 꼭 다시 만나자! 지금도 영상 속에 서로 “다시 만나요, 낼 또 봐요” 하고 약속하는 우리는 곧 만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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