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홀씨로 되어
강희선
나는 늘 이슬이 되고 싶었다. 아침 풀잎에 맺혔다가 햇빛에 실려 수증기로 증발해버리는 이슬로 되는 것이 정말 소원처럼 기도할 때도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버거웠을까? 보이는 모든 것들이 무게로 되어 내 몸을 누르는 그런 시간들을 견디는 것은 차라리 눈만 감으면 사라질 수 있는 투명체가 되었으면 했다. 저녁이 되어 시커먼 밤이 저벅저벅 들어올 때면 더 견딜 수 없는 가위에 눌려서 다음 날 아침이면 풀잎에 맺힌 이슬로 잠깐 영롱하게 반짝이다가 해님의 따뜻한 손길에 이끌려 하늘나라에 올라가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이고 싶었다.
길가다 길섶에 뽀얀 볼로 동그란히 바람을 기다리는 민들레 홀씨를 보았다. 너도 떠나고 싶지? 나처럼~ 너는 너를 미지의 어떤 곳을 데려다 줄 바람을 기다리고 나는 하늘나라로 데려갈 해님을 기다리고~
나는 왜 바람을 기다리는 민들레 홀씨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못했을까? 바람에 실려 둥둥 떠다니다가 바람이 내려놓는 곳이 양지바른 언덕이던 담벼락 모퉁이던 다시 오는 이른 봄이면 예쁘게 웃으며 세상을 즐기면서 조용히 자신을 꽃피우고 또다시 홀씨가 되어 여행을 떠나지 않는가? 모든 짐들을 훌훌 벗어놓고 떠가다 아무 곳에나 스스럼없이 정착하는 그런 민들레 홀씨가 참 이쁘고 착한데 만약 내가 이슬이 될 생각을 버리고 오늘부터 민들레 홀씨로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작은 가슴에 소원처럼 품는다면 세상사는 좀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세상사가 버거워서 사라지려고 바둥거리지 말고 버거운 생각의 방향을 조금 틀어서 행복으로 바꾸고 좀 더 가볍게 흘러 다니는 꽃내음처럼 그렇게 맑고 가볍게 흘러갈 수도 있잖은가? 봄바람이 지나가는 언덕 위에 살포시 내려앉아 비바람도 견디고 기승부리는 무더위도 견디다 보면 가끔씩 바람 따라 여기저기 떠돌다 다른 이름 모를 곳에서 또 다른 행복을 노랗게 피워서 한낮의 햇볕을 머리에 이고 길섶에서 길가는 행인들의 입가의 미소로 번지면서 그런 사소한 행복에 젖어들 수도 있잖은가? 밤새 내려온 이슬로 목 추기고 그렇게 씨앗을 뿔려서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따뜻한 봄과 새김질하면서 그렇게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한 것임을 눈물 나게 행복한 것임을 알게 되잖을까?
저 나무숲 뒤로 바람이 불어온다 이제 무거운 것들은 내려놓고 아주 가볍게 잠자리 날개 옷보다 더 가벼운 투명한 모습으로 한알의 희망의 씨앗만 품고 날아오르자 민들레 홀씨가 되어서 먼지와 친구 해서 지구의 반대편 쪽으로 날아가 보자! 거기에 분명 날 기다리는 희망의 별천지가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