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차로 30분 거리가 3시간 30분이 되었답니다. 새벽 3시경 컨퍼런스 취소 결정이 내려졌고요. 고객사 담당자분들과 우리 프로젝트 팀원들이 고생한 이야기를 들으며 오전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제주에 왔습니다.
어제 정오만 해도 눈발이 날리는 정도였습니다. 비행기 이륙도 연기되지 않았지요. 지금은 어떻게 왔냐고 다들 신기해합니다. 그러게요. 우리는 여기에 왔고, 눈대신 비바람이 부는 제주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아이코 지금은 우박이 쏟아지네요.
북카페를 찾았습니다.
그림책 카페입니다. 책 한 권을 소개해주십니다. 천천히 보게 되는 그림과 꾹꾹 눌러 담긴 간결한 문장들에 마음이 머물게 됩니다.
말 더듬는 아이 이야기입니다. 저자의 어린 시절 경험이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힘들었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강가로 데려가 말씀하십니다.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아이는 생각합니다. 강물처럼 말하는 것을요. 책은 이 장면을 접이식 그림으로 알려줍니다. 눈감고 상상하는 아이 얼굴을 열고 펼치면, 강물 속을 걸어가는 아이 모습이 나타납니다.
'나는 울고 싶을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릴 거예요. 나는 강물처럼 말한다.'
마무리 글이 거울이 됩니다.
'언어 치료사 선생님은 내가 유창하게 말하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씀하시곤 했지요. 하지만 나는 강물 앞에 서면서 유창하다는 것에 대해 달리 생각하게 되었어요.... 강물은 자연스레 꾸준히 흐르면서 더 큰 무언가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요. 자신의 길을 만들어요. 그런데 강물도 더듬거리며 흘러가요. 내가 더듬거리는 것처럼요.
말을 더듬는 건 두려움이 따르는 일이지만 아름다운 일이에요. 물론 나도 가끔은 아무 걱정 없이 말하고 싶어요. 우아하게, 세련되게, 당신이 유창하다고 느끼는 그런 방식으로요. 그러나 그건 내가 아니에요. 나는 강물처럼 말하는 사람이에요. - 조던 스콧'
저는 유창하게 말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야 워크숍과 강의에서 목적을 달성하기 쉽거든요. 그렇게 말하도록 노력하고 연습합니다.
그런데 어떤 순간에는 상황에 따라 그저 버튼이 눌려져서 패턴화 된 말이 유창하게 나오는 느낌을 받곤 해요. 전문가스러운 언어, 도시의 언어라 생각한 실용적인 말들이요. 뭐랄까요. 효율적인 자판기 같지요. 빠르게 시원하게 마실 수 있지만 어느새 빈 깡통만이 남네요. 말도 삶도 이렇게 느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더듬는 말'이 그립습니다. 삶을 더듬어 가며 나와 당신의 마음을 살피고, 더듬거리지만 진실하게 꾹꾹 담아 전하는 말이요. 내게도, 이웃에게도, 하나님께도 그렇기를 바래요. 컨퍼런스 취소로 고생한 분들께도 그렇게 위로의 말을 전해야 했는데요. 너무 유창하진 않았을지요.
제게 제주는 서울에서 잊고 있던 것을 알려주는 곳입니다. 아. 여기 그림책방 이름을 말씀드렸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