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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y Apr 16. 2019

Everything is OK

디-데이

회사에서 나온 후 잉여롭게 지냈던 3개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선 정식으로(?) 30대를 맞이했다. 30대가 되면 엄청 어른이고 성숙하고 이미 새로운 가족을 꾸렸을 것 같고 안정적으로 자리잡혀 있을 줄 알았지만, 아직까지의 나는 어리고 세상 물정 모르고 불안하고 위험천만한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다행이도 새해를 맞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있었던 30번째 생일에는 친구들 그리고 가족과 함께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이렇게 지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빈둥댔다. 원래 엄청 늘어지고 미뤄대는 성격이지만, 일 때문에 그럴 수 없었던 지난 시간들을 보상받기라도 하듯이 대부분의 시간을 내가 하고 싶은 것들만 하며 느긋하게 지냈다. 멍 때리는 시간도 참 많았다. 그래서 그동안 충분히 빈둥댔으니 이제부터는 그만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도 안 되고.


평소 다니고 싶었던 어학원도 다녔다. 절반의 성공이긴 하지만 그래도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에서의 긴장감은 어느 정도 풀린 것 같다. 머릿속에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들은 한가득인데 입밖으로 내뱉어지지 않을 때의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했던 것 같다.


그렇게 3개월의 잉여생활이 끝나고 내일이면 다가올 나의 아일랜드행은 꽤 오래 전에 결정된 일이었다. 아일랜드행을 결정했던 2018년 4월 당시 나는 한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하고 있었고, 그 해 12월이면 나는 계약만료로 회사를 나올 예정이었다. 그 때의 나는 이미 다가올 12월을 엄청 두려워하고 있었다. 안정적인 일을 보장받을 수 없는 이쪽 분야에서 여러 일들을 해 오면서 느꼈던 불안함이 오래동안 내 몸 구석구석을 차지하면서 어느새 크게 자리잡게 되었던 것 같다.

그때 아주 오래 전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대학생 때 교환학생을 떠날 수 없게 된 일들과, 외국인 예술가들과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충동적인 생각, 그리고 시간만 나면 유럽 어디로든 떠날 수 있겠다는 흐뭇한 상상 등 여러 생각들이 겹쳐 마치 뭐에 홀린 듯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아일랜드 워킹 비자 원서를 넣었다. 그리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한 번에 비자를 받게 되었다.


떠나기 바로 직전인 지금까지도 내가 가는 것이 맞는 건가 무모한 건 아닌가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말해 주었듯이 지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지금의 내가 단 1이라도 바뀐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려고 한다. 일머리도 더 빠릿하게 되었으면 하고 의지박약의 나를 개선하고픈 생각도 있고. 가식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과 좀 더 터놓고 얘기하고 싶은 것도 있다. 잘 해 내고 웃으면서 돌아오자.

안녕, 한국. 안녕,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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