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16
더블린 홈스테이 집에 도착해서 짐 풀고 쓰는 첫 브런치. 지금 꼭 24시간째 잠을 자지 않아서 약간 비몽사몽하지만 그래도 써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16/04/2019 (TUE)
새벽 6시쯤 일어나 어제 마지막으로 싼 짐들을 다시 한 번 훑어보고 나갈 채비를 했다. 씻고 나와서 화장대 앞에 앉았는데, 홈스테이 아주머니인 Gosia에게서 문자가 왔다.
"Have you landed OK?" "잘 도착했니?"
??
무슨 소린가 싶어서 아직 나는 한국이고 4시간 뒤에 비행기를 탈 예정이라고 답장을 했다. 그러더니 엄청 곤란한 이모티콘이 연달아 도착하더니 자기는 오늘 오는 줄 알았다고 했다. 하루 종일 기다렸다고. 내가 분명히 전전날 문자에 아일랜드 시간으로 며칠 몇 시에 도착한다고 써놓고 OK라고 답장까지 받았는데... 그러면서 내일 본인은 출장이 있어서 Cork에 가서 1박을 하고 올 예정이라, 네가 도착하면 집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ㅠㅠ 그러면서 열쇠를 어디에다 두었고 비밀번호는 무엇이고 내일은 네 집처럼 편하게 지내라고 해 주었다. 일단 경황이 없기도 하고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 임박해서 알겠다, 잘 해보겠다 무슨 문제 있으면 바로 문자하겠다 하고 답장을 보냈다. 시작부터 험난한 난관이 예상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남동생은 아침 일찍 일찌감치 인사를 나누자마자 회사로 출근을 갔고, 이제 할머니와 인사를 해야 할 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꾹 참았다. 내가 울면 할머니도 힘들어하실 것 같아서. 최대한 방긋 웃으며 할머니와 인사를 나눴다. 잘 다녀올게요. 늘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짐을 부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진행되었다. 전날 가족들과 낑낑대며 무게를 재고 물건을 뺐다 넣었다 했던 수고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미리 신청해 둔 환전도 마치고 핸드폰 장기정지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나니 이제 정말 끝. 이제 엄마 아빠와도 인사를 나누어야 할 시간이 왔다. 엄마는 안 운다고 약속까지 했지만, 결국 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는지 내 얼굴을 끝까지 못 보고 멀찌감찌 뒤돌아섰다. 나도 울면 안 되는데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 아빠는 내가 보안검색대로 들어간 이후에도 안쪽으로 깊게 들어갈 때까지 자리에 남아서 계속 지켜봐주었다.
이후에도 친구들과 페이스톡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연락해야 할 사람들에게 문자를 남겼다. 비행기가 뜨기 전, 엄마에게 다시 한 번 전화가 왔다. 꺼이꺼이 울면서 못 해 준 것만 생각나서 미안하다고, 아빠가 돌아오는 차에서 우리 딸 장하다고 했다고. 그러니 너도 힘내서 잘 지내라고.
30대가 되어서 나잇값 못하고 늘 걱정만 시키는 못된 나인데... 비행기가 이륙하는 내내 두 손 모아 가족 얼굴 한 명 한 명을 떠올리며 이들의 건강만을 기도했다. 이제 정말 출발이다.
British Airways를 타고 이동하는 건 순조로웠다. 1. 영화 위플래쉬 보다가 2. 핸드폰에 담아온 노래 듣다가 3. 밥 먹고 4.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 보다가 5. 닌텐도 스위치로 젤다의 전설 게임하고 6. 밥먹고 7. 책 읽고. 잠이 오지 않아서 이렇게 부산스러웠던 것도 있는데, 그래서인지 지루하지 않게 12시간이 지나갔다. 자리도 불편하지 않았고.
그렇게 긴 비행시간을 견디고 London Heathrow Airport에 도착. 분명 중간경유는 어렵지 않다고 얘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수속과정이 은근히 까다로웠다. 영국에서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건데 왜 그런거지. 내가 가져온 서류들을 다 꺼내야 했고, 몇 가지 질문에 답을 해야 했다. (ex. 아일랜드에 왜 가, 어디에 머물거니, 비자는 몇 년짜리니, 공부는 어디서 할 건데?) 그래도 다행히 중간중간 농담을 던지면서 사글사글하게 구는 좋은 검사관을 만나 별 문제는 없었다. 보안검색대도 무사통과!
드디어 더블린행 비행기를 타고 약간 넋이 나간 채로 앉아 있는데, 옆에 엄청 멋스러운 아저씨가 탔다. 나에게 뭐라 살라살라 얘기하길래, 내가 못알아들으니깐 그냥 꺼이꺼이 웃으셨다. 잠시 뒤 또 뭐라고 얘기하길래 이게 맞는 질문인지는 몰랐으나 그냥 동문서답으로 처음으로 더블린 간다, 한국사람이다. 이러니 구글번역기를 켜더니 본격적으로 질문 타임. 왜 더블린에 가냐, 더블린에 아는 사람 있냐 등.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 모양이었다. 비행기가 막 출발하려고 하자 마지막으로 더블린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고, 프렌들리한 친구들 많이 만나. 그러길래 내가 "You are the first friend that I met in Dublin!" 이라고 농담식으로 받아치니까 진짜 좋아하면서ㅋㅋ 빵끗 웃으면서 악수하자고 자기 이름 안토니라고ㅋㅋ 귀여운 아저씨였다.
1시간 30분의 짧은 비행이 끝나고 드디어 더블린 도착! 입국 수속은 생각보다 쉬웠다. 아일랜드 수속이 까다롭다고 그랬는데(잘못 걸리면 따로 불려서 가져온 서류 다 보여주고 입국 못하거나 할 수도 있다고 했...), 오히려 몇 개의 서류만 보여주고 하니 슥~ 통과했다. 아무래도 영국에서 이미 멘탈이 탈탈 털렸어서 이건 약과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나와 함께 잘 비행해 준 2개의 캐리어도 무사 안착! 좋은 택시기사 아저씨도 만나 짐도 집 앞까지 다 내려주셨다.
자. 이제 홈스테이 집으로 "혼자" 들어가야 할 차례. Gosia 아주머니에게 나 도착했다고 우선 문자하고, 미리 알려준 대로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아무리 해도 안 열리는 게 아닌가. 긴 여행에 지칠 대로 지친 나에게 이런 시련이. 결국 아주머니에게 연락을 했는데, 잘 도착했냐고 웃으면서 일단 이렇게 이렇게 해보라 하는데 전화 소리도 지직대고 억양이 너무 세서 반도 못알아듣겠는거라. 어쩌지, 하고 있는데 옆에서 큰 강아지와 함께 나타난 언니. 도와줄까? 하길래 냉큼 엉! 나 좀 도와줘ㅠㅠㅠㅠ 라고 했다. 아주머니랑 마침 통화를 하고 있던 중이라 전화를 바꿔줬고 무사히 문을 열 수 있었다.
집은 아늑하고 조용했다. 아무래도 아주머니는 원체 바쁘고 딸도 오늘은 집에 없어서 그런지 휑한 느낌도 들었고. 우선 너~무 고되고 몸에 힘이 하나도 안들어가서(23kg 짐 3개를 낑낑대며 계단 위로 올려놓으니 완전 넉다운) 침대에 좀 누워있다가 뭐라도 먹어야겠다 싶어 일단 밖으로 나와 물이랑 샌드위치랑 맥주를 급하게 샀다.
그래도 이 정도면 큰 트러블 없이 정말 무사하게 도착한 것 같다. 일단 밀린 잠을 좀 자 볼까. 내일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