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st week in Dublin (17/04/19~21/04/19)
밤잠이 많아지고 아침잠이 부쩍 줄었다.
다른 나라들을 여행했을 때에도 이처럼 시차 적응이 안 되어 힘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새벽 5시 반에서 6시면 잠이 깬다. 아무래도 여기는 아침 6시면 해가 뜨고 밤 10시가 되어서야 해가 지는 나라여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마치 새나라의 어린이가 된 느낌이다. 직장을 다닐 때에도 이렇게 꼭두새벽에 일어나지는 않았었는데.
더블린에서의 첫 일주일은 최대한 여유롭고 느긋한 마음으로 이 도시를 받아들이려고 했던 한 주였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는 예전의 이곳저곳 여행을 다녔을 때와는 조금 다른 마음가짐인 것 같다. 예전에는 짧은 시간에 많은 일정을 소화해야한다는 강박과 의무감이 커서 시간을 쪼개서 이곳저곳 다녔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그저 하루에 1~2개의 일정만 소화하면 그걸로 됐지, 라는 생각으로 좀 더 마음을 내려놓고 지내고 있는 중이다. 사실 떠나기 전 이렇게 한 번 여유롭게 지내보고 싶어 여기에 온 것도 있었는데. 어쩔 때에는 너무 여유로우니까(?) 오히려 조급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다음 주가 지나면 수업으로 또 그 이후에는 일로 여러모로 바쁜 하루하루가 될 테니 지금을 즐기자, 생각하고 있다.
내가 홈스테이로 지내고 있는 하노버 퀘이(Hanover Quay)라는 지역은 정말 매력적인 곳이다. 한쪽에는 그랜드 캐널(Grand Canal)이라고 하는 '운하'와 다른 한쪽에는 리피(Liffey) '강'이 마주하고 있어, 걸어서 1분 거리에서 강과 바다를 같이 볼 수 있는 꽤나 신기한 구조이다. 그래서 강쪽으로 가면 강물 냄새가 나고, 운하 쪽으로 가면 바닷물 냄새가 난다. 처음에는 집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난 길에 둘 다 물가가 있어서 그게 너무 헷갈려 세네번을 같은 자리에서 돌고 돌기도 했다.(지금도 가끔 헤맬 때가 있다.) 그리고 주변에 회사들과 주거단지가 섞여있는 곳이다보니, 다니는 사람들이 꽤나 젊은 느낌이다. 그래서 한낮에는 동네가 조용하다가도, 저녁 즈음이 되면 집으로 퇴근하는 회사원들과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옆 큰 규모의 공연장과 레스토랑들이 있어서 확실히 아침보다는 저녁 때 분주해지는 모양새이다. 가끔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바깥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물가 앞 벤치에 앉아 하루를 정리하곤 하는데 그 때 기분이 너무 좋다. 날씨마저 좋으면 더할 나위 없이 베스트이고.(지금도 운하 앞 카페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를 1달 동안 홈스테이 가족으로 맞아 준 Gosia와 딸 Sophie 얘기도 안 할 수 없겠다. 내가 홈스테이에 온 첫 날 부득이한 사정으로 서로 만나지 못하고, 다음 날 저녁이 되어서야 이들과 제대로 된 상봉을 할 수 있었다. 전날 코크(Cork)에서 중요한 미팅이 있었다고 했던 Gosia는 일을 마치고 긴 시간을 운전해서 더블린에 도착해서 꽤나 피곤한 모양이었다. 계속 나와 얘기를 나누면서 문자를 보내느라 바쁜 것이 일이 아직 제대로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서로 얼굴을 마주한 첫 날이다보니 반갑게 안아주고 식탁에 앉아서 짧게나마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나눌 수 있었다. 가족, 인천, 한국에서의 일상, 친구들, 더블린에서의 첫날, 비행 여정 등. 막상 말을 터놓다 보니 할 얘깃거리가 꽤나 많았다.
보통 대부분 생각하는 홈스테이의 모습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교외의 정원이 딸린 주택에 벽난로 아래에서 할머니가 뜨개질을 하고 있고 저녁에는 대가족으로 된 구성원들과 함께 밥을 먹고 뭐 이런 분위기인데, 나는 그런 면에서는 좀 다른 것은 사실이다. 여기는 도시의 한복판이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아파트먼트 느낌이 강하다. Gosia는 하루하루 일에 치이는 IT계열 종사자 커리어우먼이고, 12살인 딸 Sophie는 천방지축이긴 하지만 매일 학교에 학원에 꽉찬 스케쥴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밥을 제대로 챙겨먹는 분위기도 아니고. 그냥 여느 한국의 가정과 다를 바 없어보였다. 물론 일전의 분위기의 홈스테이도 좋았겠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이곳이 나쁘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만큼 나에게 주어지는 자유도가 높고 오전 시간에는 편하게 내 집처럼 써도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Gosia와 Sophie는 내 얘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라 서로 바깥일을 보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각자의 하루를 얘기하며 편안하게 말을 트곤 했는데, 내가 아직 말이 짧아서 그렇지 좀 더 영어에 능숙해지면 더 많은 일상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블린으로 오기 전까지 나는 아일랜드에 곧 긴 연휴가 있을 것이란 소식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다 더블린에 와서 Gosia와 Sophie를 만난 첫 날 이들이 연휴 동안 베를린으로 긴 휴가를 떠난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야, 금요일부터 월요일(Bank Holiday)까지 '부활절 연휴(Easter Holidays)'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일랜드에서는 이스턴 홀리데이를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상점 곳곳에서는 이 기간에만 파는 특정 상품들(주로 달걀 모양을 한)이 진열되어 있었고, 식당에서도 달걀을 주재료로한 메뉴들을 한정으로 선보였다. 나야 집안이 기독교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는 부활절을 이렇게 '연휴'처럼 맞이하는 문화가 아니다보니 조금 신기하게 다가왔다. 이와 관련해서 Sophie랑 얘기를 나누다가 한국의 부활절 문화가 있냐고 나에게 물어보길래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삶은 달걀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과 나눠먹는다' 정도로 얘기해 줬더니 엄청 똘망똘망한 눈으로 신기하게 생각해줬다. 여튼 나중에서야 긴 연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한국에서 미리 짜 왔었던 대부분의 계획(어학원 등록, 스튜던트카드 발급, 박물관 방문 등)을 나중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아일랜드 여행 책자에 대부분의 관광지 휴일란에 '부활절 어쩌구저쩌구'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때는 내 일이 아니겠거니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던 것 같다. 그래도 다가올 휴가에 들떠있고 신나있는 더블린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내 나름대로 즐겁고 쓸쓸한(?) 연휴를 보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연휴 기간동안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햇살을 마음껏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연휴 첫 날에는 메리온 스퀘어(Merrion Square)에 갔다. 가는 길에 너무 배가 고파 커피랑 도넛을 파는 데가 있으면 사려고 했는데, 한참을 걸어도 가게가 나오지 않아 결국 목적지를 지나쳐서야 한 컵케이크 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직도 점원이 땀을 뻘뻘 흘리는 나를 보자마자 '괜찮냐'라고 물어봐 준 것이 기억난다. 한 40분~50분을 뱅글뱅글 돌았으니 그럴 만도 했겠다 싶었다. 나는 레드벨벳, 초코퍼지 컵케이크와 블러드오렌지 음료수를 겨우 살 수 있었다. 다시 메리온 스퀘어로 돌아오니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 나와 있었다. 아이들은 토끼 머리띠를 하고 엄마아빠와 함께 무엇을 찾는 행사가 한창이었는데, 다들 싱글벙글하니 보는 내가 기분이 다 좋아졌다. 나도 얼른 나무 그늘에 자리를 깔고 앉아 사진을 찍고 가져온 빵을 먹고 음악을 들으며 그들을 구경했다. 또 가지고 온 책을 잠시 읽기도 했다. 집중이 많이 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초록초록한 공원에 풀내음을 맡으며 있으니 마냥 행복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샌가 내 앞에서 남정네 5명 정도가 공차기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에이, 설마, 혹시나 했던 생각은 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공은 곧 나에게로 곧장 날아왔고 나는 직격타로 공을 맞았다. 나는 벙해서 그들을 쳐다보고 남정네 5명은 전부 머리를 감싸쥐고 잔디에 주저앉았다. 그러고 우루루 나에게 어쩔줄 몰라하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아프진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한테까지 주목받게 된 나는 민망해져서 'That's okay! Thank you!(?)'라고 했다. 왜 그랬지, 그 때의 나. 그들은 멋쩍게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머지않아 먼 발치에서 조그맣게 동그랗게 모여 다시 공놀이를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왜이리 귀엽던지. 그리고 나는 그런 그들에게 왜 고맙다고 했는지.
연휴 둘째날에는 큰 스케쥴을 잡지 않고 계속 집에 있었다. 가족들, 친구들과도 긴 영상통화를 나누기도 하고, 6월과 7월에 있을 이벤트들을 위해 런던행과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도 끊었다. 슬슬 하나하나 생각해왔던 것들이 실현되고 있구나. 평소 퀴즈쇼를 보는 걸 좋아하는데 TV를 트니 'The chase'라는 퀴즈쇼가 계속 나오고 있어서 꽤나 재밌게 봤다. 왠지 영어공부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저녁에는 집 앞 멕시코음식점 부줌(Boojum)에 가서 부리또를 테이크아웃해서 먹었다. 나중에서야 알았는데 한국의 아일랜드 여행 책자에도 나온 맛집이었다. 그리고 JTBC에서 했던 '비긴어게인' 더블린편을 다시 보면서 저녁을 먹었는데, 와인을 먹어서 알딸딸한 상태에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소라 언니때문에 또 눈물 왈칵. 더블린을 알기 전에 이 프로그램을 접하는 것과 며칠이라도 직접 마주하고 난 이후에 다시 프로그램을 보니 기분이 참 많이 달랐다. 내가 그냥 스쳐 지나갔던 거리가 누군가에게는 엄청나게 소중한 장소였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꼭 가고 싶은 로망의 장소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새삼스레 마음을 다시 먹게 되었다.
연휴 셋째날인 일요일에는 처음으로 Dublin1 구역을 가 보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 쪽에서 큰 퍼레이드 행사가 있어서 내가 가고자 했던 상점 대부분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2시간 정도 주위만 뱅뱅거리다가 다시 동네로 돌아왔다. 그래도 내가 가려고 했던 "3FE"는 문을 열어서 냉큼 안으로 들어갔다. 3FE는 집 근처에 있는 카페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세계 100대 카페'에 선정될 만큼 커피 원두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는 곳이었다. 나는 그 중 플랫화이트랑 팬케이크를 시키고 빈 자리에 앉았다. 플랫화이트가 먼저 나오고 커피를 홀짝대고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고 있는데, 20분 정도가 지나도 같이 주문한 팬케이크가 나오지 않았다. 원래 이렇게 느린가 싶어서 주방을 흘낏 보니 내 뒷 순서 사람들 메뉴가 먼저 나오는 걸 보고 아, 이거 뭔가 잘못되었다 싶었다. 그제서야 직원한테 얘기를 하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미안하다고 곧바로 만들어주겠다고 하며 부랴부랴 내 메뉴를 만들어줬다. 그리고 커피도 다 식었겠다고 플랫화이트도 다시 만들어주었다. 쏘스윗. 자주 가야지.
더블린은 외식비가 꽤 비싸다. 제대로 된 한끼 식사를 하려면 적어도 10유로 이상은 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많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마침 이스턴 홀리데이 동안 Gosia와 Sophie는 베를린으로 여행을 갔었기 때문에, 연휴 동안에는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봐서 주로 요리를 해서 식사를 해결했다. 적어도 이틀에 한 번씩은 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사고 있는데, 갈 때마다 매번 새롭고 재밌고 신기하다. 원래 한국에서도 마트 가는 걸 좋아했었는데, 요즘은 가면 살 게 많지 않아도 기본 30분은 둘러보다가 나오는 것 같다. 무엇보다 야채나 과일, 고기, 유제품이 우리나라보다 저렴해서 진짜 각잡고 요리를 할 수 있는 상황만 된다면 매일 이것저것 해 먹을 것 같다. 여기 와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까르보나라를 만들어보기도 했고. 내가 자주 가는 곳은 Fresh라는 곳과 Tesco 두 곳인데, 우선 Tesco는 집과 거리가 좀 있지만 다른 곳 대비 저렴해서 마음 먹고 가는 곳이고 Fresh는 집 바로 앞에 있는 고급 마트 느낌으로 유기농 제품이나 이국적인 재료도 많이 팔아서 구경하거나 특이한 걸 사기에 좋은 곳이다.
내가 아직까지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할 수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아일랜드 사람들은 말이 참 빠르고 억양이 정말 세다. 떠나기 전 이곳저곳에서 익히 들어서 예상은 했는데, 직접 현장에서 맞닥뜨리니 당황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계속 입에 'Sorry'를 달고 살고, 한 번 더 물어보거나 천천히 말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귀찮아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또박또박 말해주는 편이라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래도 가끔 말을 못 알아들어서 바보되는 경우가 생기면 비참하기까지(?) 하다. 나도 얼른 영어공부 열심히 해서 이들이 하는 말도 알아듣고 나도 농담으로 툭툭 던지면서 받아칠 수 있게 되어야지. 첫 주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