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01.
날 선 고독과 빌어먹을 시대에 젊음의 패기를 거세당한 것이 분명하다. 어두운 방 안에 웅크리고 누워 핸드폰 액정만 들여다보는 날들이 얼마나 될런지…. 창 밖의 풍경으로 시간의 흐름을 가늠할 뿐, 벽에 걸린 시계는 이미 두 계절 전 숨이 멎었다. 병훈은 벽시계의 배터리를 갈아 끼울 생각은커녕, 칠흑 속 유일한 반딧불이가 되어, 익명 채팅방의 낯선 이들과 시덥잖은 대화를 주고받느라 여념이 없었다.
히키코모리.
그의 또 다른 이름이자 유일하게 빛 바라지 않은 정체성이었다. 병훈은 오랫동안 감지않은 머리카락을 대충 쓸어넘겼다. 남자라거나 여자라거나 그런 차원의 단계는 이미 지났다. 나는 온라인의 익명 채팅방에서만 존재하는 함초롱 바탕체 11포인트의 글자. 사람을 만나지 않고 몇 년을, 이 관과 같은 3평 방 안에서 살아냈는지 모르겠다. 방의 곳곳마다 쌓여있는 음식 쓰레기와 빨랫더미가 매미 혹은 뱀의 묵은 허물처럼 삶의 흔적이 되어주고 있었다.
오래 켜 둬 뜨거워진 핸드폰을, 병훈은 자신의 심장 가까이에 가져다 댔다. 사람의 온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뜨겁고, 사랑의 열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미적지근한 애매한 정도였기에, 꿈꾸고 바라던 그 무엇도 대신할 순 없었지만, 심장 언저리에 핸드폰을 올려 놓으면 누군가를 안을 때의 느낌을 어렵품히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게 엄마였는지, 아빠였는지도 이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병훈은 즐겁게 떠드는 온라인 친구들을 잠시 머리 맡에 미뤄두고, 천장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빛을 쫓으니, 눈과 마음이 시리고 아팠던 것이다. 병훈은 얼룩처럼 보이는, 전에 미처 보지 못하던 검은 점을 발견하고 두 눈을 부볐다.
파리.
병훈은 천장에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는 파리 한 마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창문조차 한동안 열지 않았으니, 분명 내다버리지 않은 음식물 쓰레기에서 구더기가 자랐나보다, 병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그렇지, 음식물 쓰레기의 구더기가 파리가 될 정도면….
자퇴해서 더 이상 읽을 필요없는 두꺼운 대학 전공 서적을 마구 휘둘러, 파리에게 내다꽂았다. 병훈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벽지의 얼룩을 대충 부벼서 지워냈다. 비로소 제 몫을 다한 전공책은 현관 어디쯤 던져버렸다. 아니 부엌 쯤인가.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수만원을 호가하는 묵직한 책이 본분을 다했다는 게 중요했다. 병훈은 뻑뻑한 눈을 몇 번 꿈뻑이곤, 다시 핸드폰에 마음을 쏟았다. 오늘은 어떤 밈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히히덕대던 그의 눈 앞에, 검은 점이 자꾸만 일렁였다.
시력이 나빠진 게 아니라면, 그건 파리 떼가 분명했다.
소스라치게 놀란 병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팔을 빠르게 파닥였다. 난데없는 푸닥거림에, 고요히 세를 불리던 먼지가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웃음을 터트렸고, 음식물이 담긴 비닐봉투 여럿이 바스락대며 소근댔다. 병훈은 십 수마리는 될 법한 파리 떼를 한 번에 쫓아내려, 암막커튼을 거두고 잠궈뒀던 창문을 벌컥 열었다. 그러자,
알 수 없는 강렬한 꽃 향기에, 눈 앞이 순간 아찔했다.
보랏빛 밤하늘, 별마저 지워버릴 듯 화려한 야경의 틈,
하얀 나비가 우아하게 날개짓 하고 있었다. 마치, 마치
나를 바라보는듯, 나를 부르는듯, 나를 기다렸다는 듯…
병훈은 우울과 비관을 헤집고 나와,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마주한 나비의 날개짓이 젊은 여성의 새초롬한 눈인사를 떠오르게 해, 병훈은 아랫배가 간지러워졌다. 수줍은 웃음 말미, 그는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골방에 나를 가뒀던 시간 동안,
세상은 초록을 품고
이토록
사랑스러운 향기를 틔워냈구나.
늦은 봄이런가, 이른 여름이런가.
알 수 없지만,
문을 닫기 전의 나를,
글자가 되기 전의 나를 닮았다.
스스럼없이 뜨거운 우울이 뺨을 타고 흘렀고, 토해낸 서러움에 달빛마저 깨어 부서졌다. 창틀을 움켜잡고, 어깨를 들썩이던 병훈은, 몸을 돌려, 도사린 어둠을 바르게 마주했다. 크게 입을 벌리고서 자신을 기다리는 검정. 그는 눈물을 훔치고선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열려진 창문, 병훈의 걸음을 따라 달빛이 방 안에 들어섰다. 깨끗이 갈라진 어둠은, 답답했던 마음에 한 줄기 바람이 되어주었다. 맑은 공기가 폐부에 들어참에 병훈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살 것 같아. 생각말미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살고 싶어.
방 안의 파리 떼를 모두 날려보내고, 병훈은 삶의 일부가 된 쓰레기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버릴 것은 아주 많았다. 앞의 몇 장만 펼쳐 본 대학 전공 서적부터 떠난 여자친구의 짜증 섞인 고함, 썩어버린 음식물, 군대 선임의 발길질, 대충 뭉쳐서 버린 휴지들, 적다만 이력서 뭉치, 한 웅큼은 될 법한 머리카락들, 들고 있기에는 너무 무거운 슬픔과 끝 모를 무기력.
쓰레기봉투들을 현관 가까운 곳에 모아두긴 했지만, 그래도 한결 깔끔해진 방 안에서 그는 크게 기지개를 켰다. 방 안이 깨끗해진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볍다. 지금의 홀가분한 기분으로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병훈은 소리 내어 웃었다. 뭐라도, 해내고 싶어. 그는 열린 창문 너머 나비를 응시했다.
“… 나가고 싶어.”
문고리를 잡았던 그는 순간 멈칫했다.
밖으로 나가려는 지금, 문을 걸어 잠그기 전과 뭔가 달라진 것이 있던가. 친구 놈들은 서로의 어깨를 밟고 위로 오르겠다며 아귀다툼을 벌였고, 선봉에 선 녀석은 수많은 노예 중 그나마 빛나는 족쇄를 찼다며 으스대기 일쑤. 내다 팔 소조차 없는 집안에서 자란 자신은, 학기 내내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했으므로, 대학 졸업장 하나 제대로 거머쥐기 힘들었다. 밤샌 아르바이트로 인해 강의 시간마다 꾸벅꾸벅 졸았던 탓에, 채 3점이 되지 않는 비루한 학점이 한계이자 최선이었지. 볼품없는 이력으로 허술하게 채우기 급급한 자소서로, 취업은 커녕 진흙탕에 고꾸라져 생활고에 허덕인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생일날, 으레 알만한 가방을 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자친구는 고함을 내질렀다. 뺨을 얻어맞을 때는 어찌나 코 끝이 맵던지, 눈물이 왈칵 날 뻔 했었고…. 눈 앞이 핑 도는데, 군대 선임의 발길질이 떠오르는 건 도대체 왜 였을까. 그 새끼는 지금 뭐하고 살까.
병훈은 감싸 쥐었던 문고리를 놓았다. 세상의 초록이 엷게 혹은 짙게 번져도, 아가씨 눈매 같은 흰 나비가 마음을 잔뜩 헝클어도, 방 안, 3평짜리 세상이 안전하고 또 안락하다는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언제 죽을 지는 알 수 없지만, 죽는 그 날 까지 이 안에서 평온하게 지내는거야. 세상을 향해 펼쳐진 마음을, 반으로 접어서 대충 구겨버리는데, 곤충의 거슬리는 비행음이 귓가에 닿았다.
파리.
아니,
파리 떼.
병훈은 팔을 사방으로 휘저어, 놈들을 멀리 떨쳐내려 했으나, 밖에 내다버리지 못한 우울과 슬픔, 마지막으로 무기력은 팔과 다리에 사정없이 감겨 더 깊은 바닥으로 그를 끌어당겼다. 파리 떼는 감지않은 병훈의 머리에 둥지라도 틀려는 듯, 요란스레 덤벼들었다. 병훈은 방을 가로지르며 내달리거나, 손에 닥치는대로 아무 물건이나 잡아, 허공을 향해 던졌지만…. 사라지지 않는,
파리.
아니,
파리 떼.
병훈은 창틀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쓰레기라서.
내가 쓰레기 인간이라서.
내가 쓰레기 같은 삶을 사는 쓰레기 인간이라서.
병훈은 열려진 창문 틀에 몸을 걸치듯 반쯤 내놓았다. 그리고선 거칠게 헐떡였다. 그는 도심가를 향해 갈구하듯 손을 뻗었다. 저 반짝이는 야경, 저 아름다운 세상 속으로 나도 들어가고 싶다. 이런 쓰레기 틈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 빛 속에서, 나 역시 그들과 같이 사람답게 살고 싶다. 병훈은 주먹을 움켜쥐었다가, 손에 가득 찬 울분을 맥없이 놓치고 말았다.
삶이 허락이 되지 않는다.
쓰레기라서.
내가 쓰레기 인간이라서.
내가 쓰레기 같은 삶을 사는 쓰레기 인간이라서.
...
이렇게 홀로 갇혀 살다가, 죽을 것이다.
꿈꾸며 바라는 삶이 허락되지 않으니까.
창 밖으로 내다 놓은 이불처럼 엉망인 꼴로 걸쳐진 몸 위로, 애처롭게 뻗은 손 끝에, 미묘한 감촉이 느껴져 병훈은 고개를 천천히 들어, 주변을 살폈다. 아까 보았던 흰 나비가 그의 손 끝에 앉아있었다. 병훈은 흐, 울음 섞인 숨을 들이키고서는 나비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나비는 그의 손 안에서, 품 안에서
잠시 파닥이다가,
달빛이 비추는 어딘가로 지워졌다.
나비의 행방을 눈으로 쫓던 병훈은 창틀에서 몸을 일으켜서, 천천히 현관으로 향했다.
쓰레기라면, 내가 정말 쓰레기 인간일 뿐이라면
세상 속의 퇴비로 녹아들어, 기꺼이 양분이 되리라.
삶이 꽃길이 아니라면, 나는 꽃을 심는 삶을 살리라.
문고리를 잡은 병훈은 주저없이 단번에 세상으로 뛰어들었다. 맑은 밤 공기가 가슴에 차오르고, 달빛 아래 선 그는 숲 속에 들어선 것처럼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지워졌던 나비가 눈 앞에서 날개짓을 하고 있었다. 몇 년만의 외출인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밖으로 나왔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이 생각보다 그리 힘들지 않았다는 것. 병훈은 나폴대는 나비에게 다가가려 천천히 발을 뗐는데,
바닥에 흥건한, 또한 끈적한 액체에 신발이 달라붙어 흉한 소릴 내었다. 알 수 없는 액체는 병훈의 옆집, 열린 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고, 병훈이 옆집으로 다가갈수록 파리 떼가 드글대는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못 견딜 정도의 심한 악취. 꽃 냄새 쯤은 가뿐히 뭉개버릴 듯한 폭력성에 병훈은 코를 감싸쥐었다. 그는 열려진 문 틈으로 안을 살폈다. 불 켜진 거실에 누군가 누워있었다. 병훈은 틀어박히기 전, 안부 인사를 몇 번 나눴던, 옆집의 말 수 없던 노인을 기억해냈다. 쓰러진 사람의 얼굴은, 썩어서 쉽사리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분명….
너무 놀란 병훈은 비명을 내지르며, 거리를 마구 달려 나와, 골목 전봇대를 붙잡고 토악질을 해댔다. 한참 게워낸 그는, 헐떡이며 더러워진 입가를 훔쳐냈다. 토사물은 전봇대 옆 화단에 쏟아져 그 흔적이 잘 보이지 않았다. 병훈은 땀 범벅이 된 얼굴로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혔다. 흰 나비가 경찰차 싸이렌 소리 너머로 날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