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돈 순교 프로젝트

by 김재완

이번 시간은 예술에 이어 역사 시간이야.


1대 혁거세 거서간 2대 남해차차웅, 3대 유리이사금, 4대 탈해이사금……갑자기 왠 외계어냐고?

눈치 빠른 독자는 감을 잡았겠지? 맞아. 이건 신라 왕 계보야. 참으로 생소하지 않을 수 없어? 그래도 왠지 먼가 새로운 걸 배운 것 같은 뿌듯함과 함께 한국사 지식이 뇌 주름에 축척 되는 기분이 들지? 이런 생소한 이름은 신라 건국 후 무려 500년 넘게 지속되다 22대 지증 왕에서 변하게 되었어. 그럼 이런 개혁을 지증왕이 셀프로 하셨냐? 아니지. 일반적으로 왕의 시호는 사후에 추존 되는 거잖아. 고로 지증왕의 장남인 23대 법흥왕이 아버지의 시호를 추존 한거지. 그는 왜 순 신라말로 이어지던 왕의 이름을 중국식 시호로 바꿨을까?

“내가 왜 그랬냐고? 역알못 후손들은 잘 모르겠지만 신라는 개국 때부터 중신들의 파워가 너무 강해. 이래가지고서는 왕이라고 불리기도 창피해. 헌데 이런 작은 변화로 무슨 왕권 강화가 되겠냐고? 니 들이 사는 세상은 개혁이 싶니? 대통령 바뀌니까 바로 나라가 바뀌디? 사람 사는 세상 다 똑같애. 개혁이나 사회적 변화는 아주 느린 속도로 진행 되는 거야. 그래서 나도 인내심을 가지고 작은 것부터 한 번 슬슬 변화를 줘볼 생각이야.”

법흥왕은 백제(고이왕), 고구려 (소수림왕) 에 이어 –백제보다 무려 250년이나 늦음 – 율령을

반포 하면서 왕권 국가의 틀을 마련했어. 율령반포는 많이 들어봤는데 이게 왜 왕권강화나 고대

국가의 틀을 다지는 계기가 되는지가 사실 더 궁금하지? 그런데 수업시간에는 율령을 반포한 왕

의 이름과 연도를 외우라고 하니 환장할 노릇이야.


율령반포라는 말은 그래도 들어본 기억들이 있지?

<율- 형벌 법규 & 령-행정 법규> 로 정리가 될 수 있는데, 그럼 이런 것도 없이 그 동안 살았냐

고? 당연하지 고대 국가잖아.

법흥왕 통치 아래에서 신라는 이제 제대로 된 왕권 국가로써의 틀을 늦게 나마 갖추게 되었어.

신라는 고구려 백제에 비해 율령반포만 늦었던 게 아니야. 불교도 가장 늦게 자리를 잡았는데 이

유는.?

신라는 우리 민족 고유의 토속신앙이 어느 나라보다 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종교인 불교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어.

법흥왕이 절대왕권이라는 반지를 향해 차근차근 한 걸음씩 나아가던 중, -즉위 14년이 되던 서기

52년- 20대 초반의 꽃 미남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는데! 이상한 생각들 하지 마시요. 그는 신

라 불교의 아버지 이차돈이었어.


법흥왕은 이즈음 절대왕권이라는 반지를 얻기 위해 정기적금도 좋지만 주식 대박 같은 큰 것 한

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 황금주는 바로 신라 기득권이 완전히 배제된 신흥 종교

인 불교였어.

약 스포 이지만 법흥왕은 실제로 불교에 심취하여, 왕 자리를 내 놓고는 퍼스트 레이디와 함께

불교에 귀의 할 정도로 진성 애불자였어.

그러나 신라 사회 기득권도 이런 법흥왕의 심중을 모를 리 없었기 때문에 불교에 대한 격렬한 반

대와 탄압으로 대응했지.

“신흥 종교인 불교를 공인하게 되면 왕권과 합해져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요. 왕권의 강화는 우리 기득권의 몰락으로 이어진 다는 점을 명심 또 명심 하기 바라

오. 백성들이 불교를 빨갱이 보다 더한 사회 암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어야 하오!”

한편 법흥왕은.

“불교.! 아! 내 사랑 불교가 국교가 된다면 (왕권+종교= 절대 왕권)의 아름다운 수학 공식이 완성

될텐데, 방법이 없네. 방법이! 하긴 이 자들도 어떻게 잡고 유지해온 권력인데 그리 순순히 내 놓

을 턱이 있나. 이렇게 하다간 내 죽기 전까지 절대왕권을 결코 잡지 못 할 것 일터. 먼가 획기적

이면서 민심도 잡을 수 있는 결정적 사건이 있어야 할 텐데….. ”

이런 왕의 의중을 파악한 20대 초반의 하급관리 이차돈이 은밀히 왕에게 독대를 요청했어.

“왕이시여!. 제게 불교를 신라 땅에 뿌리 내릴 기가 막힌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약간의 희생이 따

르겠지만 이것만이 절대왕권을 위한 유일한 방법입니다.”

“약간의 희생이라? 난 독실한 불교신자이다. 정적들을 죽이면서 까지 목적을 달성하고 싶지 않다.

그건 부처님 뜻에도 맞지 않는 일이야. 내 너의 젊은 혈기와 불교에 대한 간절한 마음은 충분히

알았으니 이민 물러 가도록 하라.”

“제가 말씀 드린 희생은 반대파의 제거가 아니옵니다만……”

젊은 이차돈은 몇 날 며칠을 준비 하여 만든 PT 자료를 법흥왕에게 보여줬어. 이 사업계획서를

본 법흥왕은 너무 놀라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어.

“자네 지금 제 정신인가? 천경림에다가 사찰을 짓겠다고? 여기가 신라 귀족들이 신성시 하는 풍

류도의 랜드마크 같은 곳이라는 것은 알고나 하는 이야기지?”

“지금 상식적인 방법으로 이 신라 사회에서 불교가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 하십니까? 왕께

서도 먼가 획기적인 방법을 찾고 있는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그렇지. 이건 마치 소망교회를 허물고 그 자리에 사찰을 짓겠다는 거나 마찬 가지인데.

후 폭풍이 엄청 날 것이야. 불가능한 미션일세. 다른 방법을 찾아 보세”


천경림은 신라의 귀족들이 매우 신성시 하는 곳으로 제사를 올리거나, 그 자제들의 심신을 단련

하는 등 정신적 성지와 같은 곳이야. 이게 트로이의 목마처럼 속임수도 아니고 적진 한 가운데

컨트롤 타워를 설치 하겠다고 하니 법흥왕도 반대를 할 수 밖에 없었어.

“당연히 미션 임파스블 입니다. 허나 모두가 안 된다고 하는 일에 도전을 해야, 모두가 갈망하

는 성공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세상 이치입니다. 현재 신라 사회에서 불교를 공인 받을 수 있는

일은 천지가 개벽하는 일과 동급의 미션입니다. 상식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 하다는 말입니다.”

“좋다. 어찌 어찌 하여 사찰을 지었다고 치세나. 사찰 이름이?... 어 여기 목차에 있구만. 흥륜사?

그래 이 절이 완공 된다고 불교가 저절로 공인이 되겠나?”

“30페이지를 봐 주십시오. 넥스트 스텝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사실 절의 완성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헐? 이건 또 먼가? 안돼! 안돼! 난 이 미션에 동의 할 수 없네.”

이 날의 독대 이후 이차돈은 천경림에 흥륜사를 짓기 위한 토목공사를 시작했어. 그리고 공사가

시작 된지 얼마 안되 경주 증권가에는 한 장의 찌라시가 돌기 시작했는데,

“자네도 그 찌라시 봤지?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차돈 그 자가 멀 믿고 감히 천경림에다

절을 짓는 다는 거지? 진짜로 찌라시 내용대로 왕의 재가가 있었던 걸까?”

“에이 설마. 왕도 집권 14년 차이긴 하지만 아직 귀족들의 파워를 넘었다고 보긴 어려운데 설마

그런 무모한 짓을 할라고,”

“그래도 먼가 이상하지 않나? 왕의 결제가 없었다면 천경림에 건축 허가가 날 리가 없지 않나?”

“오잉? 자네 말을 듣고 보니 그렇구만. 이거 진짜 피 바람이 한 번 불겠는걸?”

신라 귀족들과 대신들은 천경림에 토목공사가 시작 된 걸 두 눈으로 확인하고 법흥왕에게 떼거지

로 몰려갔어.

“이 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감히 신성한 천경림에 근본도 알 수 없는 사이비 종교인

불교 사찰을 짓다니요. 나라의 국격이 떨어질 까 심히 걱정 되어 신 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

다.”

“거 입은 삐뚤어 져도 말을 바로 하라고 했소. 불교가 근본이 없다니요! 그리고 이미 백제와 고구려는 불교를 공인하지가 언제 인데, 국격이 왜 떨어집니까. 아무데나 같다 붙이지 마시오!”

“어쨌거나 우리 신라는 아직 불교를 받아 들일 준비가 안되었습니다. 당장 건축허가를 취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멀 잘못 알고 있나 본데, 난 허가를 내 준 적 없소이다. 이차돈이 젊은 혈기로 그렇게 한 건가 본데, 난 모르는 일이요. 어. 마침 이차돈이 입궐 했구만. 삼자 대면을 합시다.”

이차돈은 PT자료 30페이지의 내용을 이행하기 위해 결연한 눈빛으로 왕 앞으로 나왔어.

“왕이시여! 제가 불교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넘쳐 그만 왕의 재가를 받았다는 위조 문서로 사찰 건축 공사를 시작 하게 되었습니다. 허나 왕명은 없었지만 저는 부처님의 말씀을 받들어 천령림에 사찰을 짓게 되었습니다.”

“저런 미친 자를 봤나! 어느 안전이라고 헛소리를 짓거리는 게야? 부처가 네 놈한테 절을 지으라고 계시라도 내렸단 말이냐?”

“그렇소이다. 제 목숨을 걸고 맹세 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정착은 신라 발전에 큰 도움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빨갱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좋다. 네 놈 말대로 부처가 정말로 있다면, 왕명을 위조한 이 위기에서도 네 놈의 목숨을 구해 주겠구나.”

“부처님은 그런 사사로운 일에 개입하지 않소. 왕명을 위조한 죄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오. 다만 내가 죽을 때 과학으로 설명 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면 불교를 공인 해 주시오.”

“오냐. 네 놈이 죽고 싶어 아주 환장을 했구나. 마마. 저런 미친 자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당장 사형 집행을 허락해 주십시오.”


법흥왕은 이차돈과 이미 입을 맞추었지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어. 하지만 이차돈의 말 대로 일반적인 방법으로 불교를 공인 받기는 불가능 했어. 어쨌거나 왕명을 위조한 죄는 죽어 마땅하니 율령에 따라 이차돈은 사형장에 끌려 가게 되었어.

이게 우리가 어린 시절 한 번쯤은 들어 본 적이 있는 이차돈 순교의 과정이야. 여러 가지 다른 설이 있지만, 작가가 여러 자료를 수집 한 결과 개인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스토리 라인이라고 생각되는 시나리오를 재구성 해봤어.


이차돈의 목을 베는 순간의 묘사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 적이야. 그의 잘린 목에서는 붉은 피 대신 흰 피가 솟구쳐 올랐고 마른 하늘에서 꽃 비가 내리고 천지가 진동을 했다고 해. 1500년도 전의 이야기야. 왜곡되거나 과장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 주변에는 과학과 상식으로 설명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잖아. 이날 이후 신라의 귀족들은 불교를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다고 하니 먼가 인간의 상식을 압도하는 일이 벌어 지긴 한 것이 아닐까?

우리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를 보더라도 새로운 종교가 한 국가에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내 건 희생이 있었어. 종교가 때로는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인간에 의해 그 높은 뜻이 왜곡 되기도 하지만 종교 본연의 숭고함만은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이 한 무신론자의 생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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