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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완 Sep 29. 2024

X세대 연대기

나는 X세대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20% 의 확률로 X세대 일 것입니다. 2022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중위연령은 45세이고 X세대에 해당되는 인구가 20%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X세대란 용어는 캐나다 작가의 소설 ‘제너레이션 X’에서 유래되었는데, 일반적으로 1970년을 전후해 태어나 90년대에 20대를 보낸 이들을 가리킵니다.

 X세대의 사회적 위치와 위상은 어떨까요?

기업정보분석업체 리더스인텍스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30대 그룹 임원의 47%가 X세대이며, 네이버와 카카오의 경우에는 비율이 90%를 넘는다고 합니다. 국민 앱이 된 배달의 민족의 최대소비자는 MZ세대이지만, 창업멤버는 X세대입니다.

 대중문화 쪽은 어떨까요? 신동엽, 유재석, 이정재, 이병헌을 필두로 방시혁, 김태호, 나영석까지 90년대 한국문화 르네상스의 창시자이자 소비자인 X세대가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X세대의 위상은 많이 다릅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사장의 권위라는 수직적 조직문화에는 머리를 숙이고, 수평적 개인문화의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MZ세대의 눈치를 보기에 바쁩니다. 꼰대라는 키워드를 가장 많이 검색한 이들이 X세대라고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우리 사회를 관통한 주요 키워드를 통해 한 때 신인류라 불렸던 X세대의 연대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교육>

 X는 1995년까지 유지됐던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한 학급의 학생수는 쉰 명을 훌쩍 넘었고, 일부 학교는 오전반/오후반으로 나누어야만 했습니다. 구구단보다 국민교육현장을 먼저 외워야 했고,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가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했습니다. 월급봉투와 체벌을 한 속에 쥔 부권과 교권의 힘은 막강했고, 개인보다는 집단, 과정보다는 결과가 우선시 되던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운동선수는 공부 못하는 애가, 연예인은 공부하기 싫어하는 되바라진 애가 새는 옆길로 치부되었지만, 이따금 개천에서 용이 나는, 야만의 시대이자 낭만의 시대를 보며 자랐습니다. 자녀의 진로는 자녀보다 교육 수준이 낮은 부모가 결정하였는데, 이는 당시에는 합당해 보였습니다. 한 세대 만에 개발도상국을 넘어 선진국이, 주판에서 스마트폰으로 점프하는 혁명이 일어날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X는 사고의 성장이나 사유의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한 채 20대를 맞이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미디어에 의해 ‘개성이 넘치는 톡톡 튀는 신인류 X세대’라고 타인에 의해서 정체성이 규정됩니다.


<문화>

 군사력과 GDP가 세계 톱 10에 들지만 선진국이라고 불리지 못하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이유는 문화적 소양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김구 선생이 그렇게나 바라던 문화강국이 되었습니다. BTS로 대표되는 K팝을 필두로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 그리고 소설과 웹툰에, 클래식 음악계까지 그 영역을 넓힌 지금이 K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보다 군사력이 위라는 중국도, 국토가 더 넓은 러시아도, 더 부유한 독일도 해내지 못한 일입니다.

 문화강대국의 시발점에는 90년대 한국문화 최대 소비자였던 X세대가 있었습니다. 서태지로 대변되는 90년대 음악계는 매년 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앨범이 쏟아지며 그야말로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을 누렸습니다. X는 음악산업뿐만 아니라 청바지와 농구화로 대변되는 패션계에도 대 이변을 일으켰습니다.

 1997년 소비자보호원의 발표에 따르면 겟유즈드, 게스, MFG 3개 브랜드의 평균 소비자 가격이 11만 7천 원이었습니다. X는 고가의 청바지와 에어 조던을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X가 부모님 몰래 구매한 것은 신발과 청바지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이었습니다.


<정치>  

 진보는 젊음의 특권이란 말은 21세기 한국 사회에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습니다. 이는 통계청 자료에서 수치로 나타나는데, X세대 보수화율이 MZ세대보다 10% 이상 낮습니다. X세대는 MZ세대를 포함하여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진보화된 성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군사독재에 맞선 386세대들 덕에 X세대의 캠퍼스에는 최루탄 가스 냄새 대신 막걸리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이런 X세대가 어떻게 가장 진보적인 세대가 되었을까요?

 1972년부터 1987년까지 대한민국 국민은 자신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수 없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16년이 지나서야 민주주의 꽃인 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하게 되었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1995년, 나라 안에서는 군사 정권을 이끈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었습니다. TV를 통해 이런 모습을 목도한 X는 정치를 기피하고 두려워하던 부모세대와 달리 투표의 힘을 인지하고, 민주주의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X의 정치 참여가 본격화된 계기는 2002년 ‘효순이 미순이 사건’입니다. 2002년 6월 13일 경기도 양주시에서 10대 소녀 두 명이 미국 장갑차에 의해 압사당한 사건입니다.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을 주도하던 X는 미군의 과실치사가 분명한 일에 무죄 판결이 나자, 다시 거리로 나갑니다.

 2002년 11월 26일 특정 단체의 주도 없이 당시 유행하던 인터넷 메신저 네이트온을 통해 수많은 X들과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효순이와 미순이를 위해 거리로 나섰던 것입니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 2016년 국정농단 촛불 시위로 이어지는 한국만의 평화시위의 시발점이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해외여행과 IT>

 1983년 1월 1일, ‘해외여행 자유화’가 발표됩니다. 그러나 이 발표에는 웃지 못할 전제조건이 따랐습니다. 간략하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계좌에 200만 원 이상이 예치된 만 50세 이상의 성인에 한해 연 1회 해외여행이 가능하며, 출국 전 반드시 반공교육을 받아야 한다.>

 해외여행이 본격적으로 자유화된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이듬해부터입니다. 효도관광, 신혼여행, 친목여행으로 대변되는 해외여행업계에 대 지각 변동이 일어납니다. X들이 배낭여행과 어학연수를 떠나기 시작하자, 90년대 20대의 해외여행 증가율이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결과로 이어집니다.

 X는 배낭에 종이지도와 카메라를 들고 나라 밖을 유영하며 호연지기를 길렀습니다. 이 여행을 통해 달러를 외국에 버린다는 기성세대의 우려와 달리 X는 서구문화에 대한 사대주의와 패배주의를 버리게 되었습니다.

 X를 깨운 또 하나는 PC통신으로 대표되는 90년대 인터넷 문화입니다. 세계적 IT강국의 첫 장에는 전화선으로 인터넷의 바다를 항해하던 X가 있었습니다. X는 20년 후, 온오프라인의 양쪽 세계에 능숙한 유일한 세대가 됩니다.


<IMF와 월드컵>

 X가 기성세대의 걱정 어린 기대와 주목을 받으며 사회에 진출할 시기에 이 땅에 IMF라는 암흑의 시대가 열립니다.

 IMF사태는 1997년 11월 21일, 경제부총리의 특별기자회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보유한 달러가 부족해 국제금융기구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마치 코로나 팬데믹의 첫날처럼 말입니다.

 대기업과 은행이 줄줄이 파산하더니 이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7%로 떨어졌고, 실직한 직장인들이 양복을 입은 채 등산로를 찾았습니다. X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을 안고 성장한 마지막 세대가 되었습니다. 신입사원이 된 X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당위로 뭉친 경직된 분위기에 억눌려 고개를 숙이고 숨을 죽이며 회사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위기 타파’라는 시대적 명제를 위해 경험과 연륜에 의지해야 했고, 기성세대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습니다. 장유유서의 깃발 아래 비정상적인 것이 묵인되고 비상식적인 것이 상식으로 간주됐습니다. X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어둠의 터널을 함께 지났습니다.

 2001년 8월 23일 IMF 차관을 모두 상환하며 IMF시대가 종식되었고, 이듬해 열린 2002년 월드컵은 그간 억눌렸던 감정을 분출하는 거대한 창구가 되었습니다. 흥은 우리 민족 고유의 DNA입니다. 선조들에게 노동요는 삶의 BGM이었고, 와인을 능가하는 전통주를 마시고 춤을 추며 축제를 즐기는 이들이 우리였습니다. 선조들에게 제사와 명절은 죽은 자를 핑계로 즐기는 축제였지, 오늘날처럼 산 자가 고통받는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우리의 DNA를 다시 깨운 창구가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이었고, 그 중심에 X가 있었습니다.

 축제는 끝났지만 삶은 계속되어야 했습니다. X는 살풀이 같은 한바탕 축제를 마치고, 끼와 열정을 관습이라는 압박 붕대로 다시 동여 맨 채 부모가 되고 팀장이 되었습니다.


<중년이지만 청바지는 입고 싶어>

 X는 이전 세대와 확연히 다른 중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과학정보통신 기술부의 2021년 인터넷 이용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온라인 경제활동을 가장 많이 한 연령층은 4050이라고 합니다. 이는 X가 중년임에도 디지털에도 능숙한 세대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왕성한 경제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X는 MZ세대를 넘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소비 집단입니다. X의 구매력이 높은 이유는 자신뿐만 아니라 자녀를 위한 구매를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X는 사회적 변화에 의해 결혼이 늦어진 첫 세대이며, 자의로 결혼을 미룬 첫 세대이기도 합니다.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의 맏형인 전현무는 혼자 사는 X세대의 전형입니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자신을 위한 소비를 아끼지 않습니다. 부모세대로부터 철들지 않은 어른이라는 우려 섞인 시선을 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X세대가 스스로 돌아본 X세대 연대기였습니다.

어떠셨나요? 즐거운 회상이었나요? 고통스러운 기억의 재생이었나요? 당신이 X세대가 아니더라도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고, X세대라도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세대별 구분이나 시대적 분류가 무의미하게 사람 사는 것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모든 세대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다른 크기의 고통을 이겨내며 살아갈 뿐입니다.

 백세시대는 우리에게 축복일까요? 저주일까요? 프랑스의 대문호이자 철학자인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수명이 늘어난 게 아니라 노년이 늘어난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유한한 생명에서 청춘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노년이 늘어난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플랜은 무엇인가요?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는 90년대의 청춘을 대표하는 말로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 다시금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짧은 말이지만 인생의 철학을 담고 있는 깊이가 있는 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청춘의 나이에는 청춘다운 시간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며 육체는 퇴보했지만, 다양한 경험과 책, 그리고 사유를 통해 정신은 진보하였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더 많이 돌아보고, 나의 취향을 발견하니 마침내 행복해졌습니다. 노년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수명이 늘어난 특혜를 누리기 위해 우리가 최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오지 않을 미래를 대비하는 일도, 바꿀 수 없는 과거에 집작 하는 일도 아닌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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