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넷플릭스의 여러 콘텐츠를 건드리기만 하다 보니 어느새 삼십 분이 지나있었다.
‘진짜 볼 게 너무 많아서 뭘 볼 지 모르겠네. 인생은 진짜 선택의 연속이구나.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다.’
그렇게 누른 영화가 ‘퍼펙트데이즈’였다. 두둥 소리가 울리고 나는 마치 어린 시절 극장으로 돌아간 듯 온전히 몰입하였고, 순식간에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울창한 숲을 걷는 기분이었다. 이윽고 숲길의 끝에 다다르자 현실의 문이 다시 열렸지만, 일상을 살아갈 기운을 얻었다.
중년의 남자 ‘히라야마’는 제대로 된 가구 하나 없는 연립주택의 이층 단칸방에서 새벽을 맞는다. 눈을 뜨는 장면부터 인상적이다. 출근하기 싫어 알람을 몇 번이나 재설정하고, 잔뜩 징끄린 얼굴로 화장실로 향하는 나와는 너무나 다른 얼굴로 아침을 맞이한다. 마치 어서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뜨고 오래 뜸 들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부자리를 개고, 세안을 한 그는 놀랍게도 자신이 기르는 화초에 물을 준다. 조촐한 집이 허름해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그는 잘 정돈된 자신의 소지품 (자동차 키, 핸드폰, 동전 등)을 챙겨 집을 나선다. 세상으로 나온 그는 아직 채 해가 뜨지 않은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자판기에서 캔 커피하나를 뽑아 작은 승합차에 올라 그날의 기분과 날씨에 맞는 음악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고른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시동을 걸어 출근지인 화장실로 향한다.
이제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화장질 청소 장면이 나온다. 콧수염을 기른 중년의 히라야마는 마치 예술품을 다루는 듯한 섬세한 손길로 공공화장실의 구석구석을 청소한다. 단언컨대 화장실 청소장면을 보고 나면 어떤 일의 가치를 부여하는 건 지식이나 직책이 아닌 경험과 진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히라야마에게는 늘 불평을 일삼고 청소도 대충 하는 MZ파트너가 있다. 심지어 히라야마에게 돈까지 빌려간다. 이 장면에서 나의 회사생활이 떠올랐다. 현대사회는 특히 회사의 업무는 분업화되어 있다. 때론 나의 성과가 묻히기도 하며, 심지어 나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상사도 있다. 또한 남의 과오로 인해 내가 질책을 받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맡은 구역의 화장실 청소를 하며 성과와 실패를 오롯이 받아들인다면 마음만은 편할 거라는 상상만으로도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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