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에 의해 죽었지만, 역사에 의해 부활하는 사육신의 시신을 거둔 이는 생육신으로 살아가게 되는 매월당 김시습이었다.
김시습은 세 살 때부터 한시를 지은 신동이었다. 늙은 정승이 찾아와 시 한수를 청했다. 정승은 아이에게 늙을 노 한 글자를 내밀었다. 다섯 살 난 아이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붓을 거침없이 놀렸다.
'늙은 나무에 꽃이 피었으나, 마음은 늙지 않았다'
늙은 신하의 감탄은 세종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세종은 다섯 살 난 아이를 직접 만나보고 싶어 했으나, 신하들이 만류했다. 궁에 들어와 도승지 앞에서 써 내려간 시는 아름다웠다. 세종은 비단 오십 필을 하사하며, 장성하면 궁에서 다시 만나자 격려했다.
과거를 준비하던 청년 김시습은 계유정난이 일어나자 붓을 꺾고 상투를 잘랐다. 유교의 나라에서 인과 예과 무너지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왕이 버린 예를 되살리기 위해 김시습은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했다. 한강 너머 노량진 언덕에 이른 김시습은 작은 돌무덤을 만들었다.
"그대들을 따르진 못했으나 편히 살지는 않을 것이오. 바람처럼 흐르다 마음이 이끌면 다시 들리겠소.“
김시습은 삼은각이 있는 동학사로 향했다. 조선의 선비가 찾은 삼은각은 조선을 부정한 고려의 충신 정몽주, 이색, 길재를 모신 곳이다. 김시습은 그 옆에 단을 쌓고 사육신의 제사를 지냈다. 상투를 자른 것에서 그치지 않고 머리를 깎은 김시습은 수행을 위해 길 위로 떠났다. 스님이 되는 것은 유교의 이념이 무너진 조정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 팔도를 돌며 백성들의 삶을 체득했다.
유랑의 끝자락에 경주의 금오산(남산)에 머물며, 필생의 역작이자 자신의 천재성을 마음껏 펼쳐낸 금오신화를 토해냈다. 최초의 한문단편소설이었지만, 당대에는 그 의미도 위대함도 인정받지 못했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낮에는 환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그의 작품세계를 천박하다며 입으로는 폄하했지만, 밤이 되면 필사본이라도 구하기 위해 안달을 부렸다.
시대가 담지 못해 흘러넘친 재능을 가졌던 김시습은 끝내 세상에 융화될 수 없었으나, 공신 중의 공신인 한명회는 왕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리며 늙어갔다. 한명회는 압구정 정자 위에서 살생부를 만든 지난날을 미화하며 시 한수를 남긴다.
청춘에는 사직을 붙들고, 늙어서는 강호에 누웠네. <한명회>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던 김시습은 한명회의 글에서 단 두 글자만 바꾸고 가던 길을 갔다.
청춘에는 사직을 위태롭게 하고,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혔네. <김시습>
영월로 유배 보낸 어린 조카를 떠올리자 왕의 미간에 주름이 깊어졌다. 이제 마지막 한 걸음이 남았으나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왕은 깊은 피로감을 느끼며 동이 틀 무렵에 겨우 잠이 들었다. 귀신이 다시 나타났으나, 말이 없었다.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을 귀신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체념한 눈빛은 아니었다. 천장에서 왕을 내려다보던 귀신은 바닥에 누운 왕에게 피를 토해냈다. 어린 아들의 죽음을 예감한 어미의 피는 짐승의 것과 같았다. 제 아무리 대담한 왕이라도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피의 질감에 잠이 깨고 말았다. 그 와중에도 놀란 티를 내지 않았는데 문 밖에서 다급한 인기척이 들렸다.
“주상전하!......... 세자 저하가.......”
자신을 해치려는 귀신은 두렵지 않으나, 자식을 해코지하려는 미물도 두려운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왕은 거칠게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정신이 온전히 깨지 않았다. 그런데도 다리가 먼저 움직였으나, 말은 입 밖으로 새어 나오지 못했다.
왕의 장남인 의경세자는 세종의 첫 손자였다. 문종의 장남 단종은 삼 년 후에나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된 세종은 관례를 깨고 대군의 가족을 궁에 머물게 하였고, 틈만 나면 손자를 안은 채 궁 곳곳을 누볐다.
"어떠냐? 요 눈매가 나를 쏙 빼닮지 않았느냐?"
"그러하옵니다. 주상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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