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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Jun 29. 2023

<이런 날 그림책> 우리의 안녕을 묻는 날

『잃어버린 얼굴』,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올가 토카르추크 글




  올가 토카르추크와 요안나 콘세이요가 5년 만에 만나 『잃어버린 얼굴』을 출간했다. 전작인 『잃어버린 영혼』은 영혼을 놓치면서까지 바쁘게 사는 현대인을 위로하며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했다면 『잃어버린 얼굴』은 SNS에 올리는 과시용 이미지가 본래의 삶을 망치고 있음을 경고한다.


  『잃어버린 얼굴』이라는 제목처럼 일부만 드러난 표지의 얼굴은 또렷하지 않다. 뭉개져서 흐릿한 얼굴은 슬픔을 담고 있는 듯도 하고, 절망을 담고 있는 듯도 하다. 떨어져 나온 조각들 역시 불분명해서 무엇을 그린 건지 모르겠다. 이야기가 시작되자 표지의 얼굴과는 달리 인물들이 선명하다. 연필로 세밀하게 그린 흑백사진 속 인물들의 표정에는 생동감이 넘친다. 사진은 누군가의 성장기를 담고 있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있는 사진에서도, 혼자 있는 사진에서도 주인공은 마냥 행복하고 즐겁다. 빛바랜 종이에 담긴 흑백사진이 아련한 감성과 추억을 불러온다. 글 없이 사진으로만 구성된 책장을 넘기다 보면 말랑대는 무언가가 올라오면서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그렇다고 마음 놓고 편하게 볼 수는 없다. 이 두 작가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있기에 이 이야기에는 어떤 심오한 장치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콘세이요의 그림에는 하나의 감정이 아닌, 서로 다른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에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에서도 기이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더군다나 어떤 사진에는 커다란 검은 점이 얼굴을 가렸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책장을 더 넘겨봐야 알 것 같다.






  『잃어버린 얼굴』은 아주 또렷한 얼굴을 가진, 아니 가졌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한 번만 봐도 기억할 만큼 또렷한 얼굴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그의 빛나는 눈, 선이 예쁜 코, 또렷한 입술을 좋아한다. 또렷한 사람 역시 자신의 모습이 좋다. 그는 자주 거울을 보고, 신나게 셀카를 찍는다. 도시와 유적지, 구름과 바다 앞, 도서관 등을 배경으로 그는 자신의 사진을 찍고 인터넷에 올린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또렷한 남자의 얼굴이 흐려진다. 사진을 찍을수록 얼굴의 형체가 지워져 희미한 얼룩이 된다. 이제 사람들은 남자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주인공은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고, 알아보지도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 인간의 얼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예민한 진짜 꺼풀이 있는데 사진을 찍을 때마다 이 꺼풀이 벗겨진다는 가설을 본 남자는 좌절한다. 결국 그는 불법으로 새 얼굴을 구하기 위해 거래인을 찾아간다.


  『잃어버린 얼굴』에도 역시 요안나 콘세이요 특유의 깊은 감성이 난해하면서도 알 것만 같은 그림 안에 담겨 있다.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그림 작가 요안나 콘세이요는 어렸을 때부터 경제적인 이유로 헌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누렇게 바랜 종이에 연필과 색연필로만 그린 그림이 이제는 콘세이요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빛바랜 종이의 낡은 느낌과 묵직하고 세련된 감각이 만나 이번에도 그림을 찬찬히 보게 된다. 콘세이요의 작품을 볼 때마다 연필과 색연필만으로 이렇게 압도적인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사실적이면서 환상적인 요안나 콘세이요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여러 갈래의 감정과 생각이 켜켜이 쌓인다. 재치 속에 섬뜩함이 있고, 묵직한 슬픔 안에 따스한 위로가 얹어진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어도 가슴이 뭉클하고, 의미를 깨달았을 때에는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텍스트에 봉사하는 그림이 아닌 텍스트의 동반자로서의 그림을 고민한다는 요안나 콘세이요는 이번 작품에서도 글과 상호작용하면서 이야기를 더욱 빛나게 했다. 다양한 색을 갖는 배경과 대비되는 흑백의 인물, 픽셀로 이루어진 이미지를 확대하고 부각하면서 불분명하게 처리한 얼굴, 점점 뭉개지는 얼굴이 결국 모자이크가 되는 과정 등을 통해 이미지에 갇혀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는 우리를 일깨운다.





  글을 쓴 올가 토카르추크는 201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를 대표하는 소설가이다. 토카르추크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융을 존경하고, 심리학, 철학, 신비학에 조예가 깊다. 그 전문적인 지식이 작품에 녹아 생명을 탐구하고, 세상을 통찰한다.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이 아닌 존재에 대해서도 고민한다는 올가는 다정한 소통을 강조하며 세상을 향해 끈질기게 질문하고 답을 찾는다. 문학은 현실보다 강하고 사실적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잃어버린 얼굴』의 이야기가 허구가 아닌 것 같아 등골이 서늘하다. 올가는 우리의 진짜 모습은 안녕한지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운 이야기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는 책 제목처럼 SNS에는 멋짐을 기본으로 한 행복과 즐거움이 가득하다. 현실에서는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게 많은데 SNS에는 결핍이 없다. SNS에 올라온 이미지는 삶의 모든 순간이 특별한 것처럼 매 순간을 전시하고 자랑한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을 수 있지만 그것을 보는 많은 이들은 절망하고 좌절한다. 갖진 못한 것을 욕망하면서 결핍은 커지고, 그 부족함을 들키고 싶지 않아 삶의 어느 순간에 만나는 즐거움을 삶의 모든 순간인 것처럼 위장한다. 그렇게 우리는 만들어진 이미지에 갇혀 본모습을 잃어가는 중이다. 이 사회가 만든 또 하나의 병폐다.


  지금 우리 사회는 생존 불안에 시달리며 불평등을 견디라고 한다. 소확행이니 마음 챙김이니 워라밸이니 등의 행복해지는 방법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개인에게 그 모든 의무와 책임을 떠넘기며 각자도생의 길을 찾으라 한다. 모두에게 다 주어지는 것도 아니면서 모두가 다 가질 수 있다고 유혹하고, 갖지 못한 이들을 멸시한다. 이 참담한 현실을 견디는 방법은 가상의 세계에서 가짜 이미지를 만들어 위안을 삼는 것이다. 하지만 SNS에 올라오는 게시물을 보면서 남들과 같아지려 기를 쓸수록ㄷ 이 세상은 더욱 불평등해지고 불행해진다.


  부모가 물려준 집과 가진 것을 모두 팔아 새로운 얼굴을 받은 『잃어버린 얼굴』의 주인공은 곧이어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한다. 공포에 질린 남자에게 곧 익숙해질 거라는 여자의 대사가 섬뜩한 건 그게 결코 위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절대로 익숙해지면 안 되는 것에 동화되어 순응하는 사회에 희망은 없다. 나의 또렷함을 지키면서 타인의 또렷함을 흐리지 않는 세상을 『잃어버린 얼굴』 속 인물들은 이제야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얼굴』,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올가 토카르추크 글, 이지원 옮김, 사계절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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