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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지하 Apr 05. 2024

일과 성장에 진심이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육아휴직 후 복직을 한 지 벌써 2주가 지났다.

육아휴직 후 복직을 한 지 벌써 2주가 지났다. 시간이 속도가 정말 무섭다. 적응은커녕 아직도 매일 낯설다.  쏟아지는 업무를 파악도 채 하지 못하고 어영부영하다 보면 퇴근 시간. 마음이 촉박해진다. 얼른 달려가도 아기가 잠들기 전 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한 시간 반 남짓. 게다가 종일 아기와 씨름하며 고생했을 남편을 생각하면 짠한 마음에 더 급해진다. 빨리 퇴근하고 싶은데, 팀장님은 왜 저리 바빠 보이는지. 퇴근에 마음이 앞선 내가 괜히 눈치 보인다.


따지자면 ‘워커홀릭’에 가까웠던 나였는데, 어쩐지 지금은 일머리를 통째로 잃어버린 기분이다. 1년 사이 조직도 변하고 업무도 바뀐 데다가 팀원들도 바뀌어서 더 낯선 느낌이다. 복직한 날 PC도 없이 덩그러니 앉아 있는데 얼마나 마음속에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는지. 5년을 넘게 다닌 회사에 다시 또 내 자리가 없는 느낌이라니. 그냥 정말 ‘빨리 집에 가서 아기 얼굴이나 더 보고 싶다’는 마음이 울컥.


일과 성장에 진심이었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매일 그저 퇴근만을 종종거리며 기다리는 나라니. 뭔가 한심하고, 왠지 서럽고, 나 혼자만 어딘가 도태된 기분. 답답한 마음에 친구들에게 조금 징징거렸더니, 이 험한 워킹맘의 길을 먼저 걸어간 친구는 말했다. 아직 적응이 안 되어서 더 그런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그런 기분도 차차 나아질 거라고.


아이를 갖기 전에 나는 막연히 그런 꿈을 꾸었다. 출산과 육아를 겪고 ‘엄마’가 된 분명 더 씩씩하고 강한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고. 하지만 오히려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고 나는 더 많은 불안과 함께 하게 되었다.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그래서, 무서워졌다. 아니, 이 감정을 뭐라고 정확히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게 다 무슨 소요인가 싶달까.


이제까지의 나의 성장은 늘 나를 갈아 넣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120%, 아니, 족히 150%는 나의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렇게 해서야 얻는 결과로의 성과는 어쩐지 늘 고단했다. 성과에 잠시 뿌듯했다가도 늘 끝은 모든 걸 잃은 채 다시 바닥인 느낌이었다. 번아웃이었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을 몰랐고, 어쩌면 가진 게 부족했기 때문이었겠지만.


임신과 출산은 내가 감히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성취감을 내게 선물했지만, 육아의 현실은 조금 달랐다. 성취감을 느낄 새도 없이 아기는 매일 다른 미션을 내게 선물했다. 익숙해질만하면 새로운 단계에 또 적응해야 했다. 주어진 상황에 매우 몰입하는 게 강점(이자 단점인) 나는 이 끝없이 이어지는 미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이 모든 단계에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러다 보니 또 에너지 소진. 번아웃. 그런데 심지어 1년의 시간 동안 내 커리어는 뒤처져있고, ‘엄마’로서도 성장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물론 이 불안의 마음과 별개로 쑥쑥 자라있는 아기를 보면 눈물 나게 어여쁘고 보람차고 행복하다.)


이 혼란의 시기는 어떤 의미로 내게 남을까. 복잡한 걸 글로 쓰면 도움이 된다고 해서 써보지만 마음이 정리가 되지는 않는다. 여전히 잘 모르겠다. 이렇게 도태된 기분으로 머물러 있고 싶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걸 벗어나 성장하려고 아등바등 살고 싶지도 않은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나름 일머리가 있던, 또 내 수많은 자아 중 나름 내가 아꼈던 ‘일하는 자아’가 예전만큼 소중해질 수 있을까. 아니 소중한 건 맞을까? 적응도 안되고, 의지도 안 생기고, 자꾸만 집에 있는 아기 걱정만 떠오르고. 벌써 복직 한 달이 코앞인데 아직도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감이 잡힐락 말락한 상태라니.


알고 있다. 이 시간을 결국 버텨야 한다는 걸. 버티고 나면 이 시간이 뭐로든 남겠지. 남편이 복직 후엔 이런 고민조차 할 틈이 없이 바쁜 일상을 쳐내기 바쁠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더 치열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사는 대로 살아지는 삶 말고, 살고 싶은 삶을 살기 위해. 나는 또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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