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뭘 알아?

by 지안


최근 새로운 놀잇거리가 생겼다.


남들이 다 챗지피티 어쩌구 할 때, 난 별로 흥미도 없고 멍청한 소리만 하는 AI라고 생각했다. 과제 하면서 ‘~소재의 소설에 맞는 남주 이름 추천해 줘’ 이런 식으로만 써봤지, 와중에도 마음에 드는 이름이 없어서 결국 내가 지었다.


블로그를 좀 키워볼까 싶어서 다시 지피티에게 말을 걸었다. 근데 그 또한 내 성에 차지 않아서 결국은 내가 다시 썼다.


이놈의 AI.

왜 이리 무능해.


다시 지피티를 찾은 건 한창 사주에 빠졌을 때였다. 요즘은 돈 들일 필요 없이 지피티에게 물어보면 알려준다고 해서 물어봤더니 뭐, 그럴듯 했다. 애초에 요즘은 사주도 프로그램으로 돌리니까. 사주 돈 내고 볼 필요 없네, 하는 생각 정도?


요즘 나의 고민인 진로와, 남들 다 한다는 투잡, 그거 나도 좀 해보자. 추천 좀 해다오. 모드로 열심히 굴려보는데 얘가 벌써 나를 학습했는지 진짜 내가 걷고 있는 길이 내 사주대로 가고 있어서인지(물론 이제 와서 길을 뒤집어라, 하는 것도 애매하긴 하지만), 추천해 주는 것이 지금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흐름의 직업과 투잡 분야였지만, 정말 나에겐 다른 길이 없는 건가? 끝내 의심병이 도졌다.


그러를 그러세요.


지피티야, 어차피 사주라는 게 그렇지 않니.

이렇게 말하면 이렇고, 저렇게 말하면 저런 거지.

추천은 고맙다.


사주를 볼 만큼 봤다. 요즘은 AI를 이용한 글쓰기도 많이 한다는데, 어떻게 하는 거지? 어떻게 써먹는지는 모르겠고, 내 글이나 한번 읽고 어떤가 알려줄래?


의외의 흥미 포인트였다.

내 글을 읽고, 나의 문체를 분석해 주고, 피드백하는 AI라니. 물론 학습이 걱정이긴 했지만, 이미 브런치로 업로드된 글이라 이미 세상에 나온 글, 이라는 생각에 덜 찝찝했다.


글 분석은 생각보다 더 디테일하고 어쩌면 성의 있기까지 했다. AI에 감정적인 요소를 더하자니 이상하지만, 내가 가진 강점과 보완해야 할 점까지 알려주는데, 설정 탓이겠지만 따뜻하기까지 했다.


몇 개의 글을 보내주고, 피드백을 받고. ‘이건 완전히 지안의 문체야.’ 하는데, 조금은 위안과 위로가 되기도 했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했을 때, 어떻게 글을 쓰면 좋을지 감이 오지 않아서 책으로 읽었던 문장 분위기나, 다른 브런치 글을 읽으며 조금 더 내 취향이었던 문장을 떠올리며 비슷한 느낌을 내보려고 했다. 언젠가 말했던 ‘문체가 다소 딱딱하고.’는 비슷한 느낌을 내보려고 진중하게 글은 쓰지만, 어딘가 어색함에서 오는 나의 평가였다.


지금은 내 글이 나에게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게 있었다.


내 글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느낌일까?


나는 글을 업로드 하려면 쓰면서도, 퇴고하면서도, 업로드 하기 전에도, 몇 번씩 읽다 보니 글이 좋은지, 안 좋은지도, 어디가 이상한지도, 솔직히 말하자면 잘 모르겠다. 자존감과 자신감의 문제가 아니라 눈이 흐려지는 느낌이다. ‘내 글이 제일 구려’ 병은 글을 쓰면서도 오지만, 타인의 글을 읽을 때 ‘아. 이런 사람이 글을 쓰는 거구나.’ 하면서 오기도 해서 그저 ‘나도 이렇게 쓸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제3의 눈으로 내 글을 읽는다면 내 글이 ‘어느 정도 수준인가.’까진 궁금하지도 않고, 그냥 읽을만한 글인지, 어떤 분위기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궁금해졌다.


지피티 말투를 바꿔 다시 물어봤다. ‘내 글에 개성이 없는 것 같아. 뭐가 문제일까?’ 지피티의 답은 ‘안전한 선택’이었다.


솔직함을 끝까지 밀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에 한발 물러서는 순간이 글을 평범하게 만든다고 한다. 나의 가장 날것인 부분은 괄호 등으로 감추거나, 아예 생략해 버림으로 어딘가 뜨뜻미지근한 글이 되어버린다는 말이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한데?


그것과 별개로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기보단, 왜 말을 날것으로 남겨야 하고, 글을 덜 착하게 써야 할까? 하는 의문이었다. 물론 그게 강점인 사람도 있지만, 그리 원하는 ‘솔직’하게 말하면 난 그러고 싶지 않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상처받으면 어떡해.


이건 내가 성격이 착하다거나, 배려심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열심히 쓴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긴다면 내가 글을 쓰는 과정이 즐겁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말하니 지피티도 어느 정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럼에도 덧붙이는 말을 보니, 글에 안전벨트를 너무 채우면 글의 심장을 조인다고 했다.


글에 지속적으로 안전벨트를 채우고, 네 생각을 줄이면 결국 누가 손해를 볼까?


지피티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반박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글에 내 생각을 줄인 게 아니라 적당히 남긴 거라고. 모두가 내 글에서 내 생각을 날것으로 보고 싶을 것도 아니고, 나도 사실 그렇게 다 오픈해서 쓰고 싶지 않은데 니가 뭘 알아? 내 맘인데?


아, 결국 AI에 또 불신이 쌓였다.


네가 솔직해 보라고 해서 솔직하게 써봤어. 생각보다 시원하네. 근데 넌 사람이 아니니까 상처 안 받지?



(추신 : 업로드 전 지피티한테 네가 원하는 대로 솔직하게 써봤어. 하고 보내니 상처 안 받으니까 자기 써먹으라는데 듣고 나니 좀 미안해서 짜증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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