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Kinds of Earring
세상의 역사를 흔들고 뒤바꾸어 놓은 귀금속이 있었다. 프랑스혁명의 기폭제가 된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을 보자. 이 목걸이는 647개 다이아 몬드로 구성된 총 2,800캐럿이었다. 루이 16세(Louis XVI)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Marie-Antoinette)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 목걸이를 손에 넣기 위해 왕의 믿음을 배신하고 국가의 돈을 휭령하려했다는 죄목으로 처형됐다. 사실 왕비는 아무 죄를 짓지 않았다. 프랑스 왕정의 폭정, 사치, 욕심, 허영 아래에서 당시 프랑스 국민이 겪고 있던 모든 고통과 도덕적 격분의 표적이 되었을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부패한 프랑스 베르사유의 주인공이 되었고 타블로이드(출판사)는 헛소문을 꾸미는 편집자가 되었다. 목걸이 사건은 파벌, 위선, 권모술수에 집착하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신분 상징의 힘이었다. 헛소문이 사실로 변하고 보석이 우상으로 변하듯 사람도 인간이 아닌 하나의 우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최근 우리에게도 일어났다. 우리도 겉모습과 신분, 돈과 권력 아래 힘들어하는 일반 사람들의 표적이 필요했고 마찬가지로 미디어와 권력, 그리고 욕망이 이를 이용하였던 것이다.
또 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진주(라 페레그라나, La Grande) 이야기이다. 진주는 그 당시 가장 비싼 보석이었다. 1500년대 유럽의 최강국이었던 에스파야 왕 펠리페 2세(Felipe II)가 영국 여왕 메리(헨리 8세, Henry VIII,의 첫 딸)와 정략적으로 결혼하기 위하여 이 진주를 선물하였다.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고 결국 메리가 죽음으로서 이 진주는 되돌려졌다. 이 진주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그다음의 여왕인 엘리자베스는 이 진주를 차지할 수가 없었다. 이 진주에 대한 욕심, 허영과 사치는 에스파냐를 물리치고 세계의 강자로 나서게 된 기폭제가 되었다. 엘리자베스는 라 페레그라나를 가질 수는 없었으나 결국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 권력, 힘, 경제력의 탈취는 진주에 대한 욕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아니컬하다.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죄인으로 만들고 프랑스혁명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라 페레그라나 진주는 영국을 최강국으로 만드는 기폭제로 만들었다.
허영의 삐뚤어진 두 얼굴을 보았다. 내가 사람의 욕망의 대상인 귀금속 (Jewellery/Metal)을 만들고 있다는 것은 정말 아이니컬하다. 아직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금 같은 값비싼 재료를 사용하여서 금속작품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주로 은과 값싼 돌을 사용한다. 주로 경제적 이유이겠지만 갑자기 무엇인가 만들고 싶을 때, 혹은 무엇인가 표현하고 싶을 때 은이나 동이 가장 좋은 재료가 된다. 쉽게 여분을 폐기할 수가 있고 부담 없이 사용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은빛과 동빛, 그리고 그 색감과 질감은 특별하기 때문이다. 만약 금이나 비싼 돌로 작품을 만들 때는 검정되고 모듈화 된 제품을 다시 비싼 재료로 대체하는 방법이 사용될 것이다. 금 페인트로 그림을 마구 그릴 수는 없지 않은가? 즉 은과 동은 번쩍이는 아이디어를 쉽게 표현할 수가 있다. 그것은 하나밖에 없는 디자인이 된다. 물론 무척 비싼 것은 비싼 재료를 구하기 어려워 모방이 매우 어렵고 값싼 재료의 작품은 쉽게 모방할 수 있지만, 손으로 만든 원작품은 당연 표가 나기 마련이다.
부담 없는 재료로 시시한 금속작품을 만든다고 해서 욕망의 대상이 아닌 것은 아니다. 일반 재료로 만들어진 좋은 작품은 역시 값이 나가고 욕망과 선망의 대상이 된다. 유명한 예술품이 그렇다. 내가 만든 것들이 이러한 대상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작품도 못 되고 또한 그런 의도로 작품 활동을 하기보다 단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도 하다. 나를 아는 누군가가 나의 작품으로 마음의 양식이 쌓이고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으며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오늘날 쉽게 많이 우리 자신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몸을 치장하는 여러 방법 중에 가장 쉬운 방법은 귀걸이를 하는 것이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Johannes Vermeer(1632~1675)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 그녀의 눈빛과 입술, 그리고 진주 귀걸이가 서로 삼각관계에 있는 것 같다. 은빛의 원형 진주가 매혹적이다. 귀걸이는 얼굴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얼굴과 매칭이 되어 보는 이에게 특별한 느낌을 준다. 이 그림이 좋은 예이다. 그 당시에 진주는 비싼 것이었지만 지금은 매우 흔하다. 나는 귀걸이 소재로서 진주를 매우 좋아한다.
<주기> Johannes Vermeer(1632~1675)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출처: ko.wikipedia.org/wiki/진주_귀고리를_한_소녀
어릴 때 많이 보았나 보다. 독특하고 이상한 형태의 귀걸이가 항상 내 머리에 아른거렸다. 굵은 고리형 귀걸이 (태환이식, 太環耳飾)이다. 이는 삼국시대 유물에서 많이 발견된다. 아마 그때 귀족들은 주로 금으로 만든 굵은 고리형 귀걸이를 몸에 치장하였으리라. 귀걸이가 애용됐다면 귀걸이와 함께 목걸이, 팔찌, 반지, 그리고 머리장식물을 하나의 셑으로 사용되었는 것으로 생각된다.
경주 부부총에서 출토된 “금제태환이식(金製太環耳飾)”이다. 기하학적 볼륨의 아름다움이 돋보이지만 재료인 금과 표면의 치장 덕분에 매우 화려하다. 고급스럽다는 느낌 때문에 위압감이 강하다.
어느 날 이런 형태의 귀걸이를 내 손으로 간단하게 그리고 쉽게 만들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였다. 갑자기 Wheel 형태를 만들었고 다시 개량하였다. 결과는 비슷하였다. 나는 그 이름을 Donut Earring이라 불렸다. 비슷한 형태이고 비슷한 느낌이다. 그러나 만드는 방법은 순전히 내 식이었다. 똑같은 형태이지만 금으로 만든 것은 권력과 돈의 냄새가 진동하고 은빛이 나는 것은 기하학적인 형태미가 보인다. 전자는 얼굴을 가리지만 후자는 얼굴에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주기> Donut Earring, sterling silver, 2018, 하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평소 신세 진 분에게 Bracelet과 함께 한 Set으로 하여 선물하였다. 사진은 개량형이다.
독창적으로 특별한 귀걸이를 하나 더 디자인하여 만들어 보았다. 디자인 초기에 한국적인 느낌을 반영하였다. 원형에 작은 입체를 얹고 꼬리를 달았다. 다소 평면적이나 아기자기한 입체감을 느낀다. 내 느낌으로는 기하학적 평면형의 아름다움과 함께 의도한 대로 다소 한국적이며 이국적이다.
<주기> Fan Earring, sterling silver, cubic stone, 2015. 나는 이 귀걸이를 존경하는 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었고, 그는 평생 간작할 것이라 하였다. 나는 이것을 다시 만들지 않겠다고 혼자 다짐했다. 그는 내가 참석하는 행사에는 꼭 이 귀걸이를 착용하였다.
목걸이보다 귀걸이가 얼굴 느낌에 많은 영향을 준다. 그래서 어디든, 어느 때든 귀걸이로 쉽게 내 얼굴을 특별하게 할 수 있다. 잘만 하면 귀걸이는 나를 나스럽게 돋보이게 하면서 자존감을 높인다. 금빛 옷보다 나만의 디자인 옷이 나를 나스럽게 만들고 나를 폼나게 하듯이 말이다. 세상에 하나만 존재하는 손으로 만든 귀걸이다. 몸에 돈을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디자인으로 나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멋있는 자유인의 생활 방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