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천 개의 파이프를 통해 나오는 오르간 소리는 클래식의 ‘ㅋ’자도 모르는 내 귀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언니가 가자 했고 엄마가 가라 해서 따라나섰을 뿐, 그날 내가 듣게 될 연주가 파이프오르간이라는 것조차 나는 몰랐다. 연주가 시작되었을 때 어디선가 흰 옷을 입은 천사들이 나타나 공연장 주변을 날아다니는 듯한 몽롱함마저 느꼈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연주자는 다섯 계단의 건반을 위아래로 오르내리느라 열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었고, 건반과 똑같이 생긴 페달들을 구르느라 두 발조차 쉴 틈이 없었다. 그는 오르간 앞에 앉아 백 미터 달리기 선수마냥 전력으로 질주했다. 그렇게 파이프 오르간 연주는 겨우 열세 살이던 내 마음을 빼앗아 버렸다.
파이프오르간의 선율은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왔다. 공연은 끝났지만 내 귓바퀴는 계속 웅웅대고 있었고 눈만 감으면 당장에라도 다시 천사들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한껏 들떠 있었다. 때마침 눈이 오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는 버스는 언제 올 지 알 수 없었다. 눈 날리는 허공을 멍하니 보고 서있는 내게 언니가 따끈따끈한 호떡을 건네주었다. 한 입 베어 먹으니 달짝지근하고 따뜻한 설탕물이 주르륵 입 속으로 흘러들었다. “언니 여기 천국이야?”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엥? 갑자기 웬 천국?” 언니는 몽상가가 아니었다. “공연장에서 천사를 봤어. 호떡도 너무 맛있고. 이거 봐. 천사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잖아.” 나는 호떡에서 나오는 뜨거운 김을 가리키며 말했다. 언니는 내 볼을 꼬집으며 “꿈 깨. 여긴 광화문이야.” 했다.
언니는 나보다 고작 네 살이 많았는데, 어른처럼 나를 데리고 공연장에 자주 다녔다. 언니 덕에 난 ‘파리 나무십자가 합창단’과 ‘지젤 발레’ 공연을 국민학생 때 다 보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컬러로 재개봉되었을 땐 우리 반 친구들을 모두 데리고 가줘서 한 동안 내 어깨에 어지간히 힘이 들어갔던 기억도 난다.
공연이 끝나면 언니는 늘 버스정류장에서 호떡이나 계란빵, 오방떡 같은 간식을 내게 사줬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클래식 공연에 따라나선 이유가 어쩌면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에서 먹었던 이런 맛난 것들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언니의 잠옷 자락을 붙잡지 않고는 무서워 잠들 수 없던 어린 나는 어느새 쉰 살이 되었다. 언니가 사준 호떡에서 천사의 흰 옷자락을 보았던 아이는 이제 첫 소절만 들어도 바흐인지, 베토벤인지, 모차르트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클래식 마니아가 되었다. 이게 다 언니 덕분이 아니면 뭐겠는가! 아닌가? 호떡 덕분인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