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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y Sep 30. 2019

이 칸은 물이 잘 내려가지 않습니다.

단편소설

“아악! 또야?”

“뭐야, 뭔데?”


화장실 문을 열면서 비명을 지르는 나를 보며 은주가 물었다.


“또 물을 안 내렸잖아. 벌써 몇 번째야.”

“언니, 이거 안 되겠다, 안 되겠어. 뭔가 수를 써야지.”

“뭔 수? 누가 똥 누고 물 안 내렸는지 지키고 서 있을 수도 없고. 참, 네.”

“일단 경고문을 써 붙이자. 그러고 나서도 물을 안 내리면 그다음 수를 생각해야지.”


사무실 자리로 돌아온 나는 컴퓨터에서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을 구동시킨 후 경고문을 쓰기 시작했다.


이 칸은 살짝 눌러서는 물이 잘 내려가지 않습니다.

꼬옥 길게 누르고 있으셔야 내려갑니다.

간혹 큰 일을 보시고 레버를 살짝 누르고 나가시는 분이 있습니다.

종종 발견되고 있습니다.

보는 사람 인상이 찌푸려집니다.

밥맛도 상실됩니다. 부탁입니다. 꼬옥 길~게 눌러주세요.


‘꼬옥 길~게’ 부분은 빨간색으로 강조하고 컬러 프린터로 인쇄한 후 화장실 문 안쪽, 변기에 앉았을 때의 눈높이에 딱 맞게 붙였다. 이걸 읽고도 물을 제대로 안 내리면 사람도 아니다. 혼잣말을 하며 나는 자리로 돌아왔다.


언제부터인가 9층 여자화장실의 첫 번째 칸 변기에 물이 잘 내려가지 않았다. 아마도 화장실 출입구와 가장 가까운 칸이어서 사용빈도가 가장 높고, 그러다 보니 물을 내리는 레버 부분에 고장이 난 게 아닌가 싶다. 빌딩 관리실에 고쳐달라고 했는데, 고쳤는데 또 고장이 난 건지 아니면 아직 고친 건지, 아무튼 벌써 며칠째 멋모르고 그 칸에 들어갔다가는 못 볼 꼴을 보게 된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은 서울 중심지에 위치한 꽤 큰 빌딩이다. 지어진 지는 10년이 넘었지만, 워낙 관리를 잘해서 그런지 외관은 새 건물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작년에는 보안관리를 철저히 한다나 어쩐다나 하며 1층 엘리베이터 입구에 게이트를 만들어서 회사 임직원들만 출입할 수 있다. 따라서 9층에 있는 여자화장실을 쓸 사람은 우리 회사의 여직원들뿐. 그것도 9층의 여직원일 확률이 가장 높다.


분명 범인은 우리 층 여직원 중 하나. 이제 경고문도 붙였으니, 며칠 두고 봐야지.


다음 날 아침. 어제저녁 회식 때 먹은 매운 낙지볶음 때문에 탈이 났는지, 사무실에 출근해서 팀장님께 얼굴 도장을 찍자마자 나는 화장실로 직행했다. 출근 버스에서 내내 아픈 배를 움켜쥐고 겨우 참았던 터라 엉덩이에 불붙은 사람마냥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가까운 첫 번째 칸의 문을 열고 뛰어들어갔다.


“악! 이게 뭐야.”


배가 너무 아파서 더 이상 투덜거릴 틈도 없이 바로 옆 칸으로 돌진했다. 휴우~. 좀만 늦었으면 큰 일 날 뻔했네. 근데, 또 누구야. 정말 몰상식한 사람 아냐. 배를 아프게 했던 물질들을 변기에 쏟아내고 나니, 한결 개운한 기분으로 화장실 문을 열고 나서는데, 은주가 밖에서 코를 막고 서 있었다.


“또 누구야.”

“그러게 말이다. 나 좀 전에 그 칸에 들어가려다 엄청 놀랐어.”

“경고문도 안 보이나? 장님이야? 어이 상실이다.”

“분명 우리 층 여직원 중 하나야. 아침에 이렇게 되어 있는 걸 보면 어젯밤 야근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아침에 일찍 출근한 사람일 거야.”

“우리 층 여직원만 20명은 될 걸? 돌아다니면서 다 물어볼 수도 없고. 어쩌지?”

“왕언니한테 잡아 달라고 할까? 아니면 회의라도 소집해서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경고해 달라고 하면 어때?”

“왕언니? 글쎄, 왕언니가 우리한테나 왕언니지. 우리 층 여직원들 모두에게 뭐라 할 수 있을까?”


우리 회사의 여직원은 두 부류로 나뉘어 있다. 일명 사무보조로 일하는 나와 같은 여사원들과 공개채용을 통해 대졸 남자 신입사원들과 동등하게 뽑혀 각자 독립적인 일을 맡아하는 대졸 여직원들. 이들은 우리와 차별되고 싶어서인지 무료로 지급되는 유니폼 입기도 거부하고 백화점에서 산 예쁘고 비싼 정장을 입고 다닌다. 물론 우리도 사무보조라고 해서 독립적인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직급체계나 위상에서 좀 차이가 나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여느 팀장들과도 농담을 주고받는 왕언니라 해도 대졸 여직원들에게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거다.


“그래도 한번 가보자. 왕언니한테 말이라도 해보자고.”

“그래, 가보자. 밑져야 본전이지.”


사원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후다닥 해치우고 은주와 나는 여사원 휴게실로 직행하여 왕언니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왕언니는 입사 18년 차에 아직 미혼으로 우리 층 여직원 중에서 연배로는 최고봉이다. 다만 이 왕언니는 고졸에 사무보조로 입사를 하여 직급은 아직도 대리다. 그래도 입사 후에 야간대학교도 졸업했고, 그간 다양한 팀에서 일한 터라 모르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사무보조 여사원들 사이에서는 ‘지존’으로 통한다.


오후 근무시간을 15분 남기고 왕언니가 휴게실에 나타났다.


“언니.”

“은주, 나영. 점심 먹었어?”

“언니, 상의드릴 일이 있어요.”

“웬 상의? 뭔 일 났어?”소파에 앉아 느긋이 휴식을 취하려던 왕언니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렇게 놀라시진 마시고요. 좀 귀찮은 일이 생겨서요.”

미적거리는 내가 답답했는지 옆에 있던 은주가 나서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9층 여자 화장실이요. 자꾸 일 보고 물을 제대로 안 내리는 사람이 있어서요. 어차피 9층 여직원 중 하나일 텐데. 언니가 한번 따끔하게 얘기해 주시면 어떨까 해서요. 다들 물 안 내린 화장실 들어갔다 오면 기분이 확 나빠지니까, 서로서로 좋게 좋게.”

우리가 하는 말이 너무 어이가 없었는지 왕언니는 아무 답변도 하지 않은 해 가만히 있었다.

“저희가 9층에선 거의 막내라서, 저희가 뭐라고 하기에는 좀 어려워서요. 화장실 안에 경고문도 붙여봤는데, 소용이 없더라고요.”

우리 사연을 듣자마자 시원한 해결책을 쏟아낼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우리의 지존 왕언니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화장실 가기가 무서울 정도예요.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잖아요. 정말 방법이 없어요. 언니가 좀 나서 주시면 안 될까요?”은주와 나는 좀 더 심각하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왕언니에게 말했고, 그제야 왕언니는 입을 뗐다.

“그래도 그런 일로 내가 여사원들을 다 소집하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 니들이 좀 더 알아서 해 봐. 도움 못 줘서 미안하지만, 할 수 없겠다. 자, 이제 일하러 가자.”

왕언니의 말은 우리를 단박에 실망시켰지만 우리는 왕언니에게 대항할 짬밥이 아니었다.


은주와 나는 물건 팔고 돈 못 받은 사람마냥 풀이 팍 죽어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다음 주 월요일에 출시되는 신상품에 코드를 부여하는 일로 한창 정신이 없을 때, 컴퓨터에 메신저가 깜빡였다. 은주의 메신저다.


“나영 언니.”

“어”

“내가 좀 전에 화장실에 갔는데”

“또”

“어이 상실이다.”

“도대체 누구야?”

“언니가 화장실에서 제일 가까우니까 잘 봐봐. 누가 범인인지.”

“어떻게?”

“뭘 어떻게야? 화장실 누가 들어가면 따라 들어가서 첫 번째 칸 들어가면 나올 때 확인하면 되지.”

“내가 왜?”

“언니가 화장실에서 제일 가깝잖아.”


괴로운 건 나만이 아닌데, 왜 내가 이 짓을 해야 한단 말인가? 억울하고 분하지만 할 수 없었다.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야지. 하루만 바짝 신경 쓰면 평생이 편안하다 생각하고 나는 화장실 감시를 시작했다. 앉은자리에서 화장실 출입구를 좀 더 잘 보기 위해 컴퓨터 모니터 위치를 조정하여 고개만 들면 화장실에 누가 들어갔는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 후, 누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즉시 따라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미스 김”

 옆 팀 이대리가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화장실을 따라 들어가려는 찰나 팀장님이 나를 불러 세웠다.

 "어디 아파?”

“네-에? 아니-요.”

“계속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것 같아서.”

 여자한테 화장실 자주 다닌다고 뭐라 하는 것도 실례 아닌가 하며 팀장 쪽으로 돌아서는데 팀장님이 말했다.

“아니, 내가 뭐라 하는 게 아니고, 너무 자주 화장실에 가는 것 같아서, 몸이 불편하면 조퇴하라고. 내가 보려고 했던 건 아니고, 내 자리에서 화장실이 너무 잘 보이잖아. 그래서.”

그랬다. 실제로 팀장님 자리에서는 화장실이 직통으로 보였다. 팀원들의 자리는 바깥 창을 향해 배치되어 있지만 팀장님의 자리는 업무효율을 위해 사원들을 향하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아, 네. 배가 좀 아파서. 괜찮아요.”


사실대로 얘기하자니 민망스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해서, 그냥 배가 아프다고 둘러대고 급히 화장실로 향했다. 오호라 첫 번째 칸이 잠겨있다. 물만 안 내리기만 해 봐라. 내가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마. 잠시 후 첫 번째 칸에서 조금 전 화장실에 들어갔던 이대리가 나왔다. 나는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첫 번째 칸으로 직행했다. 깨끗하다. 그럼 이대리는 아니군. 이제 열세 명만 확인하면 된다. 나와 은주, 그리고 왕언니, 좀 전에 이대리, 옆 팀 신입 여사원, 그리고 우리 팀 오 과장님, 기획팀 한대리, 이렇게는 일곱 명은 범인이 아님이 확인되었다. 우리 층의 여직원 스무 명 중 이제 열세 명만 확인하면 범인이 누구인지 잡을 수 있다.

이렇게 퇴근시간이 될 때까지 십여 차례 화장실을 더 들락거렸지만 추가로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세 사람. 나머지는 모두 손만 씻고 나가거나, 양치질하러 온 사람이었다.

오늘 안에 잡아야 내일부터 개운하게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을 텐데.

은주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오늘은 열명 확인, 범인은 못 잡았음.”

“내일을 기약해야겠군.”

“즐퇴 하삼.”

“오케바리. 낼 보셈.”


다음날 아침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여 화장실로 향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첫 번째 칸을 열었다.

이런. 또. 누구야 도-대-체-.

누군가 어제저녁 늦게 또는 오늘 아침 일찍 또 일을 벌인 것이다. 잡아야 한다. 오늘은 꼭 범인을 잡아야 한다.

은주가 출근하자마자 작전회의를 시작했다.

 “이건 분명 야근을 하는 사람 짓이야. 내가 오늘 일찍 왔을 때는 여직원들이 많지 않았다고.”

“그래?”

“퇴근 시간 이후에 중점적으로 감시를 해야겠어. 은주,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

은주는 화들짝 놀라 묻는다.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그냥 두자. 다른 칸 쓰면 되지. 언니, 우리 이제 그만하자.”

“안돼. 이런 예의 없는 사람에게는 본 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

“나? 나, 오늘 저녁에 약속 있는데.”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내가 해야지. 알았어.”

없는 약속이라도 만들어서 내빼고 싶은 맘 이해는 되지만, 은주가 저녁 약속이 있다는 말에 조금 삐진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일단 칼을 뽑았으니 뭐라도 베어야겠다는 생각에 머릿속에 부글부글 댔다. 오케이! 오늘 저녁때면 다 해결된다.


팀 회식을 하자는 것도 마다하고 퇴근시간부터 화장실로 직행하여 감시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화장실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 것처럼 하면서 삼십 분, 그다음엔 칫솔을 들고 삼십 분. 한 시간 동안 서너 명의 여직원들이 다녀갔지만 하나같이 화장실은 이용하지 않고 양치질만 하고 나갔다. 계속 세면대 앞에 있다가는 이상한 사람 취급받겠다 싶어, 화장실 두 번째 칸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 있으면 첫 번째 칸에 누군가 들어올 때 알 수 있지. 흣흣.

한 시간이 지나도록 화장실에 인기척 하나 없어 졸음이 솔솔 올 무렵, 화장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첫 번째 칸으로 누군가 들어갔다. 오케이. 이젠 잡았다.

두 번째 칸에서 얼른 나와, 세면대 앞에 서서 대기했다. 세면대 앞 거울로 보면 첫 번째 칸에서 누가 나오는지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으니까. 나온다. 세무팀 여직원이다. 월말이라서 야근을 하나 보다.

 “안녕하세요? 아직 퇴근 안 하셨어요?”

첫 번째 칸을 나온 세무팀 여직원이 내게 인사를 건넸다.

 “어, 일이 좀 있어서요.”

 내가 첫 번째 칸으로 들어가려고 방향을 잡았을 때, 그녀는 다시 몸을 돌려 첫 번째 칸으로 들어가더니 레버를 다시 당겼다.

“요즘 이 칸에 물이 잘 안 내려가서요. 혹시나 했는데, 안 내려갔었네요.”

“그-런-가-요?”


이 사람이 범인인가? 아닌가? 벌써 두 시간째 화장실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데, 이제 슬슬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범인이고 뭐고 그냥 퇴근이나 하자 하는 생각에 화장실을 나서는데, 왕언니가 들어왔다.


“나영, 아직 퇴근 안 했니?”

“네, 아직. 일이 많으신가 봐요? 야근하세요?”

“어 벌써 3일째다. 월말이잖니.”

“네, 얼른 하시고 퇴근하세요.”

“그래, 나영. 내일 보자.”

“네에.”


데친 숙주마냥 풀이 확 죽어서 텅 빈 사무실로 터덜터덜 들어가 컴퓨터를 끄고 가방도 챙겼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핸드폰을 화장실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나서 화장실에 갔다. 핸드폰을 챙겨 들고 화장실을 나오려 하는데, 첫 번째 칸 문이 조금 열려있는 것이 보였다. 혹시? 하는 생각에 문을 열고 확인을 하니. 악! 또!있!다!


내가 화장실을 떠난 게 한 10분 전쯤이고, 그때 들어온 사람은 왕언니. 퇴근 준비를 하느라고 보낸 10분 동안 누가 또 화장실에 들어왔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 야근을 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왕언니라면. 범인이 왕언니라면……. 일단 9층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지금 9층에 남아 있는 여사원 중 하나가 아니겠어?

9층 복도를 천천히 돌면서 사무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확인했다. 세무팀의 여직원, 왕언니, 그리고 옆 팀 신입여직원 이렇게 셋이다.

왕언니는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 그럼 신입사원?

가서 물어볼 수도 없다. 얼마나 할 일이 없으면 이 시간까지 남아서 화장실 따위를 챙기냐는 소리를 들을 거다. 그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범인은 세 사람으로 좁혀졌지만, 또 다른 용의자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열어두어야 한다. 누군가 퇴근길에 화장실을 이용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휴우. 끝이 없군.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어.

잠자리에 들어서도 화장실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왕언니일 리는 없어. 세무팀 여직원? 아냐. 아까 다시 들어가서 물 내리는 걸 봤잖아. 그럼, 신입? 그 사람은 이쁘고 깔끔하기로 유명한데. 그럴 리가. 그럼 또 다른 누가?

생각을 거듭할수록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답도 없는 생각을 계속하다가 잠을 들었는지, 꿈속에서도 계속 화장실 보초 서기를 한 것 같아, 다른 날 보다 피곤함이 더한 아침이었다. 비몽사몽 출근 버스에서도 계속 화장실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누군가 일부러 화장실 레버를 내리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범인을 꼭 잡아서 혼쭐을 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누군가 일부러 한 일이 아니라 실수로 벌어진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경고문은 왜 안보는 거야?

화장실 문에 붙인 경고문은 보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나도 화장실에 들어가서 경고문 따위를 차근히 읽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럼 경고문의 위치가 잘못됐나? 경고문을 다른 곳에다 붙여 볼까?


사무실에 도착하여 경고문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레버를 길~게 눌러주세요.

잘 내려갔나요?


‘잘 내려갔나요?’는 빨간색으로 마무리하고, 동그랗게 오려서 코팅까지 했다. 이 경고문은 화장실 첫 번째 칸 물 내리는 레버에 달아 놓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누구도 실수로 물을 내리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점심시간, 은주와 점심식사를 하려고 나서는데, 왕언니가 지나가면서 한마디 했다.

 "나영, 레버에 붙인 경고문, 굿 아이디어야.”

“아, 네.”


이렇게 해서 나의 화장실 첩보작전을 끝이 났다. <끝 : 2019 영등포문예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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