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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y Jun 28. 2021

이상의 날개

오늘 지금, 다시 읽는 책

친정에 갔다가 아빠가 왕년에 사다 놓으신 [한국 문학전집]을 가져왔다.


김유정의 [동백꽃]을 읽고 싶어서 가져왔는데, [동백꽃]이 있는 13권에서 이상의 [날개]를 먼저 버렸다.


세로줄 쓰기, 아주 작은 글씨로 빽빽이 인쇄된

6장 1/2.


대입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급히 읽던 고딩땐

백화점 옥상에서 날개가 나려 한다며 겨드랑이가 가렵다고 하다 뛰어내린(다시 읽어보니, 진짜 뛰어내린 지는 확실하지 않다. 늘 그랬듯 다시 자신의 방으로, 아내에게로 돌아갔을 지도 모른다.) 주인공만 기억했다.


30대 초반에 다시 읽었을 땐

대낮에 지저분한 방 안에서 거울과 동전을 가지고 놀던 미친 룸펜 주인공만 기억했다.


이번에 다시 읽으니 전혀 다른 게 읽혔다.

지저분한 방에서 아내의 화장품 냄새를 맡으며 무료한 낮시간을 보내는 주인공이 실은 어려운 한자와 영어를 줄줄 말하는 유식자라는 점.

주인공이 쓴 아래 글은 조사와 어미, 외래어를 빼고 모두 한자이다.


剝製가 되어버린 天才를 아시오? 나는 愉快하오. 이런 때 戀愛까지 愉快하오.

굿 바이. 그대는 이따금 그대가 제일 싫어하는 飮食을 貪食하는 아이러니를 實踐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소. 위트와 패러독스와...

19世紀는 될 수 있거든 封鎖하여 버리오. 도스토예프스키 精神이란 자칫하면 浪費인 것 같소.


주인공의 아내는 그에게 제대로 된 식사를 제공하지 않아 영양실조에 걸릴 지경으로 버려두면서도 그의 외출을 막기 위해 최면약을 먹였다.


나는 오늘 아침에 네 개의 아스피린을 먹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잤다. 어제도 그제도 그끄제도 - 나는 졸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감기가 다 나았는데도 아내는 내게 아스피린을 주었다. 내가 잠이 든 동안에 이웃에 불이 난 일이 있다. 그때에도 나는 자느라고 몰랐다. 이렇게 나는 잤다. 나는 아스피린으로 알고 그럼 한달 동안을 두고 아달린을 먹어온 것이다. 이것은 좀 너무 심하다.


그가 본의 아닌 외박을 하자 그의 아내는 그를 죽일 듯 물어뜯으면서 이렇게 외쳤다.


"너 밤새어 가면서 도둑질하러 다니느냐, 계집질하러 다니느냐"


아니, 살집이 너무 없어 한 자세로 오래 잠을 잘 수도 없을만큼 피골이 상접한데다, 옷이라곤 나달나달 지저분한 골덴 양복 한 벌 뿐인 남자가 계집질이라니...


그렇건만 나에게는 옷이 없었다. 아내는 내게는 옷을 주지 않았다. 입고 있는 코르덴 양복 한 벌이 내 자리옷이었고 통상복과 나들이옷을 겸한 것이었다. 그리고 하이넥크의 스웨터가 한 조각 사철을 통한 내 내의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다 빛이 검다. 그것은 내 짐작 같아서는 즉 빨래를 될 수 있는데까지 하지 않아도 보기 싫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허리와 두 가랭이 세 군데 다 - 고무밴드가 끼어 있는 부드러운 사루마다를 입고 그리고 아무 소리없이 잘 놀았다.


참 요상한 아내의 심리를 생각하다 보니 문득, 영화 [미저리]가 떠올랐다. 베스트셀러 작가 James Caan을 구타 감금해서라고 그를 차지하고 싶어 했던 광팬 Kathy Bates. [날개]의 아내도 이런 심정이었을까.


다음에 또 읽으면 또 다른 게 읽히겠지.

명작을 읽는 즐거움이다.


근데 [날개]를 읽고 나니 [동백꽃]'조사,연구'할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럼 '굿 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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