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너무 부끄러운 일이 있었다. 벌써 만으로 7년 반이나 일을 했고 미친듯한 실력자는 아니어도 그래도 일을 못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 일이 있었다.
세법 해석을 기반으로 내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할 일이 있었는데,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쉽게 훅 팀장님한테 넘겨버렸다. 다음날 팀장님이 직접 완전 탈바꿈한 보고서를 작성해서 회신해주셨는데, 그걸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1. 이직하고 다행히 좋은 선배, 배울만한 선배를 만났다.
성격은 더럽지만 일 잘하고 배울 게 많은 선배 vs. 성격은 착하지만 일은 못하는 선배.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성격은 더러워도 일 잘하는 선배를 고른다. 이직을 결심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같이 일하는 팀장님, 부장님이 성격도 더러우면서 배울 것도 없어서였다. 물론 세법 공부 자체는 혼자서도 할 수 있고, 결국 혼자서 해야 하는 것이지만 보고서를 썼을 때 줄 간격 틀린 것을 잡아내는 모눈종이 눈을 본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운 팀장님이 써주신 것을 보고 이직이 의미가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첫 직장에서는 아마 이 일을 전문가한테 맡긴다고 하면서 회계법인에 넘겨버리거나, 공무원과의 관계 등으로 풀어버렸을 것이다. 여기서는 내가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고민하고 세법을 찾아볼 시간이 있었고, 결국에는 이게 내 자산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산을 쌓아온 팀장님 덕분에 많이 배웠다.
2. 내가 스스로 이룬 건 없었다.
첫 직장에서 나름 일 잘한다고 해준 선배들도 많았고, 상위 고과도 받았고 해서 나는 내가 일을 잘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비교적 이직도 쉽게 잘 됐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까 나는 내가 이룬 게 아니라 내가 거쳐온 곳들의 이름을 빌려서 살고 있었다. 그래도 난 SKY를 나왔고,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한국 최고의 대기업 중 한 곳에 취업해서 일을 했고 등등 이런 남의 것에 기대어서 내가 능력이 좋은 줄 착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은 진정으로 내가 이룬 것은 아니었다. 구독자 수도 적도 라이킷도 별로 없지만 그래도 오히려 브런치가 내가 이룬 것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좀 더 실력 있고, 내 이름을 부끄럽지 않게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직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혹은 연봉을 높이기 위해 실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아니다. (물론 연봉이 높아지면 좋지만!)
나라는 사람 자체가 누군가 대체할 수 없는 무형자산을 가진, 유니크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언젠가 굳이 학교나 직장 같은 것이 아니라 내가 찐으로 이룬 것들로 나를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