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TO & OSAKA in 2016
KYOTO&OSAKA, 2016.09.05
숙소 -> 아침식사 -> 덴덴타운 -> 난카이난바역 -> 오사카성 -> 한큐&한신 백화점 -> 간식타임 -> 햅파이브 -> 우메다 공중정원 -> 저녁식사 -> 숙소
덕후의 성지
“같은 핏줄 아래 전혀 다른 유전자”
내 동생과 나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정반대의 성격은 살아가며 호감을 가지는 존재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내가 슈퍼주니어의 은혁 같이 마르고 원숭이 같은 스타일을 좋아한다면, 동생은 슈퍼주니어의 동해 같이 우수에 찬 사슴 같은 스타일을 좋아했다. 간단히 이것만 들어 봐도 딱 견적 나오지 않나? 그러니 참 다행이지 싶다. 남자 고를 때 같은 경우의 수가 존재 할 일은 없을 것이니.
여하튼, 우리자매가 가진 전혀 다른 호감 도는 다른 방면에서도 두드러졌다. 아주 어린 시절, 내가 꾸준히 좋아하던 것은 아이돌 가수나 배우였다. 이에 비해 동생이 꾸준히 좋아하던 것은 애니메이션 캐릭터나 할리우드 판타지 영화였다. 이 탓에 각자 용돈을 모아서 사는 물건 역시 확연히 달랐다. 나는 우리 오빠들의 브로마이드나 화보집이나 앨범을 사거나 콘서트를 다녔는가 하면, 동생의 경우는 애니메이션 주인공의 굿즈를 사거나 판타지 영화 원작 소설을 사거나 DVD를 모았다. 그런 내 동생이 덴덴타운에 입성한다.
*덴덴타운
위치
: 4 Chome-12 Nipponbashi, Naniwa-ku, Ōsaka-shi, Ōsaka-fu 556-0005 일본
(에비스초 역 혹은 난카이 난바 역에서 하차하면 가까워요)
Plus Tip
① 여러 가게들이 있으며 가격도 죄다 천차만별이라
시간 투자 하여 가격 비교하셔서 겟하세요!
② 주변 관광지로는 쓰텐카쿠, 구로몬 시장, 난바 파크스, 덴노지 동물원 등이 있어요.
나는 오사카 여행 준비를 하며 ‘덴덴타운’이라는 곳이 있는 줄도 몰랐다. 도쿄의 아키하바라는 고등학교 일본어 수업시간에도, 지난해 언니와 도쿄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접했기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사카에도 애니메이션 덕후들을 위한 공간이 존재 하리라고는 전혀 내 지식 밖이었던 것이다. 그런 내게 동생이 말했다.
“우리 오사카 가면 덴덴타운은 무조건 가야한다”
강력한 어조로 어필 하던 동생이었기에 그러라고 했다. 그러지 말라 해도 그럴 아이인 것은 익히 겪어봐 알고 있기에. 알아보니 그곳은 ‘덕후’들의 성지라고.
그저 웃음이 났다. 사실, 여행 때 마다 요상한 물건 사들이는 재주가 있던 동생이었기에 이번에는 어떤 물건을 사서 우리 가족들에게 허탈한 웃음을 전해 줄지 기대가 되었던 탓이다.
덴덴타운과 아키하바라의 그 전문분야는 모두 전자제품이다. 지금도 물론 전자제품을 주로 판매하는 거리이긴 하지만, 관광객들에겐 그 어느 순간부터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 관련 전문 숍 거리라는 이미지가 강해졌고, 덕후의 성지라는 닉네임까지 얻게 되었다.
하지만, 덴덴타운의 정말 시작점은 애니메이션도, 전자제품도 아니라는 사실! 과거의 덴덴타운은 중고 서적 판매점과 보세 옷가게가 늘어서 있던 작은 거리에 불과했다 한다. 전자제품 상점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곧 전자회사들이 밀집해 버려 기존의 이미지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그 후로 들어 선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전문 숍들이 그들의 강력한 이미지를 어필하게 되면서 기존의 덴덴타운 거리가 갖고 있던 최초의 이미지는 현재, 사라져 버렸다.
당시, 나와 동생이 덴덴타운을 돌아다닐 때, 보세옷가게는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그 상점의 주인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괜히 안타까웠다. 어찌보면 이곳 덴덴타운이 국내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일본판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자생력을 잃은 가게들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밀려나 그 자취를 완전히 감추어 버린 이 현실. 은근히 씁쓸해졌다.
일단 지금은, 씁쓸한 마음을 거두어 내고, 일단은 덴덴타운의 현재에 집중 해 보기로 한다.
덕후의 천국이라던 덴덴타운은 가히 놀라왔다. 내가 도쿄의 아키하바라를 가보지 않았던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거리 구석구석을 둘러보던 내 동생의 동공이 확장되어서는 축소 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였기에. 이런데 관심 없는 나 역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동생에게 이끌려 다니며, 오, 신기하네, 오, 이런 것도 있어? 오, 나름 대단한 걸? 하며 곁눈질로 스치듯 구경하고 있던 동안, 내 동생은 그 사이 아, 무엇을 사지? 뭘 사야 아주 잘 샀다는 칭찬을 들을까? 뭘 사야 부러움의 눈길을 받을 수 있을까? 그 궁리에 한창 빠져있었다. 참,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서두른다. 나를 무작정 이끌고 조금 전에 나왔던 가게로 직행한다. 그 가게에서 요목 조목 다 따져 보더니, 아, 이건 아니란다. 다시 좀 전의 가게로 들어간다. 이번엔 아까와는 전혀 다른 그녀만의 사랑스러운 아가를 마주한다.
아, 이걸 살까? (그냥 아무거나 사) 아, 이건 어때? (내 눈엔 그거나 저거나 다 똑같거든?) 나 들고 있는 이거 사진 좀 찍어줘. (이런 인증 샷은 대체 어디에 써 먹을 것인지?)
그녀가 덴덴 타운 내, 상점 4군데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반복적으로 돌아다니길 한 시간 반 째. 내 다리는 점점 아파 오고, 내 인내력은 슬슬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평소에는 똑 부러지는 척, 구매에 있어 본인이 가장 합리적인 척, 쇼핑 그닥 즐기지 않는 척 하다 이럴 때 마다 정신 못 차리는 동생이 참 웃겼다. 내가 쇼핑 할 때는 본인 힘들다며, 다리 아프다며, 지겹다며 온갖 툴툴댐과 징징댐의 스킬을 발휘하던 아이가 내 다리 아픈 것, 나 더운 것, 나 지루한 것은 요만큼도 신경 안 쓰는 것이 얄밉기도 했다. 하지만, 참아야지. 분명히 참아야 할 것.
말 못할 고통을 꾹꾹 눌러가며 동생을 따라다니길 거의 두 시간 째에 접어들었다. 신기록이었다. 드디어 동생이 계산대 앞에 선다. 나와 똑 닮은 눈을 휘휘 돌려 대며 나대는 심장 겨우시 우겨넣으며 쇼핑을 하던 내 동생이 손에 넣은 것은 중형짜리 원피스 피규어였다.
그걸 하루 종일 손에 들고 다니며 혹여나 상처가 생길까 수 십 번도 그 봉지 안을 더 들여다보았다. 그걸 하루 종일 손에 들고 다니며 전혀 힘들지 않다는 본인만의 최면을 걸어 댔다. 그렇게 그걸 하루 종일 손에 들고 다니며 더 없이 행복한 표정을 지어댔다. 그러고 보면 참, 순수하고 귀여운 아이다. 아, 지금 그 피규어는 어디 있냐고? 본인 자취방 서랍 속에 고스란히 모셔두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