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만난 그곳
“뭐 먹으러 갈까?”
익숙한 대화체다. 이 물음은 한국에서 약속 있을 때면 얼굴보자 마자 각자의 안부를 묻기보다 서로에게 가장 먼저 건네는 말이었다. 어쩌면 함께 하는 식사에 대해 묻는 이 문장하나에 우리는 서로에 대한 안녕도, 반가움도, 기대도 내심 다 들어 가있었던 것이라... 그런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런던에서는? 선민이와 그 언젠가는 꼭 와보고 싶었던 이 런던땅이라고 해도 별 다를 바 없었다. 내가 먼저 머무르던 호텔에 선민이 캐리어를 두고 나오자마자 걸음을 뗀 우리가 나눈 대화는 잘 지냈냐, 어떻게 지냈냐, 오는 데 힘들지 않았냐, 혼자 여행은 어땠냐에 대한 주제를 품은 질문보다는 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자, 뭐 먹기로 했지? 따위의 흔한 일상어가 전부였다.
그렇게 끼니에 대한 질문 공세 끝에 우리가 함께 하는 런던 땅에서 첫 발을 내 디딘 목적지는 Euston역 쪽에 위치한 ‘Speedy's Cafe’였다. 이곳은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이미 아주 많이 유명한 런던 카페다. 오프닝 곡 만들어도 설레는 영국 드라마! ‘셜록'의 배경이 된 장소였기에!
바로 이 문이 셜록에 나온 셜록의 집 대문이자 현관문이다. 드라마의 흥행과 더불어 관광객들에게 굉장한 성지가 된 이곳은 우리가 찾은 카페로,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웨이팅이 있었다. 다행히도 빠른 회전율을 자랑하던 덕에 그리 오랜 시간을 기다리지 않은 채 곧 자리에 착석할 수 있었고 앉자마자 메뉴판 정독 후 그 어떤 때보다 빠르게 우리의 첫 식사를 주문했다. 한국에서는 메뉴 고를 때만큼 신중한 때 없었고, 메뉴 고를 때만큼 선택장애, 결정 장애 병이 도지는 일이 없었던 너와 나였는데, 이 날만큼은 무슨 바람이 불었던 건지 쿨 내 진동 할 만큼 결단력 있는 초이스를 선보였다. 칭찬해, 아주 칭찬해.
본래 이번 여행을 떠나오기 전, 만나서 계획 짤 때마다는 물론이고 메시지를 통해 매일 같이 나누던 대화가 있었다. “우리 제발 이번 여행에서 컨셉 잡아서 사진을 찍던 영상을 남기던 뭐든 해보자” 하지만... 언제 맡아도 식욕 마구 돋는 스크램블 에그 냄새와 짭쪼롬 한 베이컨, 렌틸콩이 뒤섞인 플레이트의 향연 앞에서 우리 이성은결국 넉 다운 되고 말았고, 우리가 그토록 되 뇌이던 목적은 그만 “에이, 뭐 나중에 찍으면 되지” 하는 나태함을 보이고 말았다.
허겁지겁 먹어치우다 정신 차려보니 빈 접시만을 앞에 두고 있었다. 그제야 부랴부랴 영상이란 걸 남겨 보았는데 나는 그 때, 그 자리에서 내 여행을 추억하기 위한 자세가 바뀌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사실, 여지껏 여행을 하며 사진만 주로 남겼지 영상이란 걸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영상 뭐 어차피 용량도 많이 차지하고 어디 쓰일데도 없는걸 뭐하러 남겨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선민이가 촬영한 영상을 다시 보는데, 생생하게 기록되는 나의 행복한 순간을 보면서 아, 이렇게 실감나게 그때의 기억을 추억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여행이 끝난 후 시간 날 때마다 그때 찍은 영상들을 돌려보곤 하는데, 매번 돌려 볼 때마다 새롭고, 돌려 볼 때 마다 그때 그 날의 내 감정, 행동, 그 때의 그곳 분위기가 내 눈앞에서 되살아나 움직이는 기분이 든다. 여행 중 영상의 중요성을 알려준 내 친구 선민이가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