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 제국의 창립자' 를 시작하며
1974년 여름, 도쿄의 거리는 경제성장의 열기로 가득했다. 17세의 손정의는 후쿠오카에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소년이었지만, 그의 눈빛에는 범상치 않은 야망이 서려 있었다. 재일교포 3세로서 겪어야 했던 차별과 편견은 오히려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무엇보다 성공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날 오후, 정의는 시부야 거리를 걸으며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그를 사로잡았던 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일본 맥도널드의 창업자 덴 후지타였다. 후지타의 자서전을 수십 번 읽으며 그의 사업철학과 국제적 안목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정의는, 언젠가 직접 만나 조언을 구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 후지타의 명언을 되뇌며, 정의는 마침내 결심을 굳혔다.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그는 곧바로 맥도널드 본사로 향했다.
맥도널드 일본 본사 건물 앞에 선 정의의 마음은 벅차올랐다. 경비원에게 덴 후지타 회장과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당연히 거절당했다. 하지만 정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그 건물 앞에서 기다렸다.
사흘째 되는 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덴 후지타가 직접 건물에서 나오는 것을 본 정의는 용기를 내어 다가갔다.
"후지타 회장님!" 정의가 큰 소리로 불렀다.
후지타는 걸음을 멈추고 이 어린 소년을 바라보았다. 정의의 간절한 눈빛에서 무언가 특별한 것을 감지한 후지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자네가 누구인가? 왜 나를 찾는가?"
"저는 손정의라고 합니다. 회장님의 자서전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꼭 한 번 뵙고 싶어서 여기 왔습니다."
후지타의 눈가에 미소가 스쳤다. "그렇다면 잠시 시간을 내보지. 근처 카페로 가자."
카페에 마주 앉은 두 사람. 덴 후지타는 정의를 찬찬히 관찰했다. 이 소년에게서 자신의 젊은 시절을 보는 듯했다.
"자네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후지타가 물었다.
"저는 세계적인 사업가가 되고 싶습니다. 국경을 넘나드는 큰 사업을 하고 싶어요."
"흠..." 후지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내가 자네에게 중요한 조언을 하나 해주겠네. 자네가 진정 세계적인 사업가가 되고 싶다면, 두 가지를 반드시 배워야 한다."
정의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첫째는 영어다. 영어 없이는 세계로 나갈 수 없다. 일본어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둘째는 컴퓨터다. 앞으로의 세상은 컴퓨터가 바꿀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제대로 배우려면..."
후지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정의의 반응을 살폈다.
"미국으로 가야 한다. 미국에서 배워와야 해. 그곳이야말로 영어와 컴퓨터의 본고장이니까."
정의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미국? 그 먼 땅으로 가서 공부를 한다는 것?
"하지만 저는 아직 고등학생입니다. 그리고 가정 형편도..."
"자네가 정말 큰 꿈을 가지고 있다면, 그런 것들은 모두 극복할 수 있어. 고등학교는 중퇴하고 가도 되지 않겠나? 진정한 교육은 학교에서만 받는 게 아니야."
그날 밤, 정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후지타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영어와 컴퓨터, 그리고 미국. 이 세 단어가 그의 운명을 바꿀 열쇠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다는 것은 한국계 일본인인 자신에게 더욱 큰 모험이었다. 가족들의 반대는 물론이고, 사회적 편견도 감수해야 했다.
며칠 후, 정의는 다시 후지타를 찾아갔다.
"회장님, 저는 결심했습니다. 미국으로 가겠습니다."
"오, 그런가? 빠른 결단이군. 하지만 마음가짐만으로는 안 돼.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일단 캘리포니아로 가서 언어부터 배우고, 그다음에 컴퓨터를 공부하려고 합니다."
후지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런데 자네에게 한 가지 더 조언을 해주고 싶네. 미국에서 성공하려면 단순히 기술만 배워서는 안 돼. 그들의 사고방식, 문화, 그리고 사업하는 방식을 몸으로 체득해야 한다. 특히 실리콘밸리 같은 곳에서는 혁신이 일상이야. 그 속에서 자네만의 색깔을 찾아야 해."
"실리콘밸리요?"
"그래, 캘리포니아 북부에 있는 곳이야.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술들이 탄생하는 곳이지. 자네가 컴퓨터를 배우고 싶다면 그곳보다 좋은 곳은 없을 거야."
1974년 가을, 정의는 마침내 미국행 비행기표를 손에 쥐었다. 가족들의 격렬한 반대를 뒤로하고, 그는 자신만의 길을 선택했다. 고등학교 중퇴라는 험난한 선택이었지만, 후지타의 조언이 그에게 확신을 주었다.
출발 전날, 정의는 마지막으로 후지타를 만났다.
"회장님,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회장님의 조언이 없었다면 이런 결단을 내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네야말로 고맙네. 나도 자네를 보면서 젊은 시절의 열정을 다시 느꼈어. 그런데 한 가지 약속해 줘."
"네, 말씀하세요."
"언젠가 자네가 성공한 후에, 나처럼 젊은이들에게 길을 제시해 주게. 성공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야.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어야 하는 거지."
정의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1974년 10월, 정의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처음 밟는 미국 땅에서 그는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여기서는 그의 출신이나 과거가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실력과 의지만이 그를 평가할 것이었다.
첫 몇 주는 언어의 벽에 부딪혀 고전했다. 고등학교에서 배운 영어와 실제 생활에서 쓰이는 영어는 너무나 달랐다. 하지만 정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매일 도서관에서 영어 공부에 매진했고, 동시에 컴퓨터에 관한 기초 지식을 쌓기 시작했다.
한 달이 지나자 조금씩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그는 버클리 근처의 작은 아파트를 얻어 생활 기반을 다졌다. 낮에는 영어학교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지역 대학의 컴퓨터 강의를 청강했다.
실리콘밸리와의 조우
6개월이 지난 후, 정의는 드디어 실리콘밸리를 직접 탐방할 기회를 얻었다. 팰로앨토의 거리를 걸으며 그는 후지타의 말을 새삼 실감했다. 이곳의 공기 자체가 혁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 작은 전자상점에서 애플 I 컴퓨터를 처음 본 순간, 정의는 전율을 느꼈다. 이것이 바로 미래였다. 컴퓨터가 단순한 계산기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도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것이 개인용 컴퓨터입니까?" 정의가 상점 주인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라는 젊은이들이 만든 거죠. 혁명적인 제품이에요."
정의는 그 이름들을 머릿속에 깊이 새겼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젊은이들이 이런 놀라운 일을 해내고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1975년 봄, 정의는 본격적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학습 능력은 놀라웠다. 후지타가 말했던 대로, 그는 단순히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미국식 사고방식과 혁신 정신을 몸으로 체득해 나갔다.
어느 날 저녁, 기숙사에서 편지를 쓰며 정의는 자신의 변화를 실감했다.
"후지타 회장님께,
미국에 온 지 거의 1년이 되었습니다. 회장님의 조언대로 영어와 컴퓨터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특히 실리콘밸리에서 보고 느낀 것들은 제 인생관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여기서는 나이나 출신, 학력보다는 아이디어와 실행력이 더 중요합니다. 젊은 창업가들이 세상을 바꾸는 기술을 만들어내는 것을 직접 보면서, 저도 언젠가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 더욱 구체화되었습니다.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혁신이 일상'이라는 말을 이제야 진정으로 이해합니다. 여기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저도 그런 마인드를 배우고 있습니다."
1976년 여름, 정의는 이미 유창한 영어와 뛰어난 프로그래밍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사고방식이 완전히 글로벌화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는 이제 일본이나 한국이라는 좁은 틀에 갇히지 않고, 전 세계를 무대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의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정의는 갑자기 펜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거대한 비전이 그려지고 있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 정보가 자유롭게 흐르는 글로벌 네트워크, 그리고 그 중심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자신의 모습.
"정보혁명..." 그가 중얼거렸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야."
그날 밤, 그는 또 다른 편지를 썼다.
"후지타 회장님,
드디어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실해졌습니다. 저는 정보혁명의 중심에 서고 싶습니다. 컴퓨터와 인터넷 기술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더 효율적으로 소통하고 비즈니스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특히 아시아와 미국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일본에서 배운 정신력과 미국에서 배운 혁신 정신을 결합한다면, 분명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회장님께서 저에게 해주신 조언이 제 인생의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영어와 컴퓨터를 배우고 미국에서 배워오라'는 말씀이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주었습니다."
1977년 봄, 정의는 미국에서의 학업을 마무리하고 일본으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2년 반 전에 떠났던 그 소년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글로벌한 시각과 최첨단 기술 지식, 그리고 무엇보다 확고한 비전을 가진 젊은 사업가로 성장해 있었다.
마지막 날, 샌프란시스코 만을 바라보며 정의는 깊은 감회에 젖었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처음 도착했을 때의 두려움과 설렘, 언어의 벽에 부딪혀 좌절했던 순간들, 그리고 새로운 기술과 문화를 접하며 느꼈던 경이로움.
"이제 시작이야." 그가 중얼거렸다.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다."
그의 가방에는 두꺼운 노트 몇 권이 들어있었다. 그 안에는 미국에서 배운 모든 것들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다. 기술적 지식부터 비즈니스 아이디어, 그리고 인생철학까지. 이 모든 것이 그의 미래를 만들어갈 자산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정의는 후지타에게 보낼 마지막 편지를 썼다.
"후지타 회장님,
드디어 일본으로 돌아갑니다. 2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저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회장님께서 심어주신 씨앗이 이제 싹을 틔우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저는 이제 정보혁명의 선두에 서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아시아와 전 세계를 연결하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회장님께서 약속하라고 하신 대로, 저도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모든 것의 시작은 그날 회장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한 소년의 간절한 마음에 귀 기울여주시고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 주신 회장님께 평생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손정의 올림"
비행기가 태평양 상공을 날며 일본을 향해 가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바다 위로 석양이 지고 있었다. 정의는 그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여행은 끝났지만, 진정한 모험은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었다. 후지타가 심어준 씨앗은 이미 싹을 틔웠고, 이제 그것은 전 세계를 품을 만큼 거대한 나무로 자라날 것이었다. 소프트뱅크라는 이름으로, 정보혁명의 기수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