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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66)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 1편 - 12

by 한정엽

1961년 5월 16일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정통성의 한계를 경제 발전이라는 가시적 성과로 극복하고자 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계산을 넘어서 해방 이후 지속된 경제적 침체와 사회적 혼란을 타개하려는 절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이러한 현실적 제약 속에서 탄생한 국가 주도의 종합적 경제 발전 전략이었다.


계획의 핵심은 '선성장 후분배'라는 개발 철학 하에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여 최대한의 경제 성장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개발도상국들이 직면한 공통된 과제, 즉 빈곤의 악순환을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대한 한국적 해답이었다.


계획의 기본 구조와 목표 설정


제1차 5개년 계획은 연평균 경제성장률 7.1%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야심 찬 목표를 설정했다.


이는 단순한 수치상의 목표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을 통한 자립경제 기반 구축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비전을 담고 있었다.


계획의 기본 방향은 농업 중심에서 공업 중심으로의 산업 구조 전환, 수입 대체를 통한 외화 절약, 그리고 수출 기반 조성을 통한 외화 획득이라는 삼각축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계획이 단순한 양적 성장을 넘어서 경제의 질적 변화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전력,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을 통해 산업화의 물리적 기반을 마련하고, 교육과 기술 개발을 통해 인적 자원의 질을 향상하며, 금융제도의 개선을 통해 자본 축적과 배분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했다.


이러한 종합적 접근은 당시 개발경제학의 최신 이론들을 실제 정책에 적용한 것으로, 한국의 경제 관료들이 보여준 높은 수준의 정책 기획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산업화 전략의 특징과 선택


제1차 5개년 계획의 핵심은 경공업 중심의 수입 대체 공업화 전략이었다.


이는 당시 한국의 경제적 여건과 국제적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현실적 선택이었다.


섬유, 신발, 가발, 전자조립 등 노동집약적 경공업 분야에 집중함으로써 풍부한 노동력이라는 한국의 비교우위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다.


이러한 전략적 선택의 배경에는 당시 국제 분업 구조의 변화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있었다.


선진국들이 중화학공업으로 산업 구조를 고도화하면서 노동집약적 경공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상실해 가는 상황에서, 한국은 이 틈새시장을 공략하여 수출 기반을 구축하고자 했다.


이는 후발 공업국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전략이었으며, 실제로 한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끈 핵심 동력이 되었다.



제1차 경제개발계획 종합경제 시책 초안 <출처 : 국가기록원>



국가 주도 개발 체제의 구축


제1차 5개년 계획의 또 다른 특징은 강력한 국가 주도 개발 체제의 구축이었다.


경제기획원을 중심으로 한 경제 관료제는 계획의 수립부터 집행, 평가에 이르는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이는 시장 메커니즘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급속한 구조 변화를 국가의 강력한 개입을 통해 추진하려는 의도였다.


국가 주도 체제의 핵심은 자원 배분의 효율성과 개발 목표의 일관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었다.


정부는 금융, 세제, 무역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하여 민간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고, 동시에 공기업을 통해 민간이 투자하기 어려운 기간산업 분야에 직접 투자했다.


이러한 혼합경제 체제는 당시 개발도상국들이 추구한 일반적인 모델이었지만, 한국의 경우 특히 효과적으로 운영되어 주목받는 성공 사례가 되었다.


계획 수립과 초기 추진 (1962-1963)


제1차 5개년 계획의 수립 과정은 그 자체로 한국 경제 정책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1961년 7월 경제기획원이 설치되면서 본격적인 계획 작성 작업이 시작되었고, 1962년 1월 정식으로 계획이 확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한국 경제의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려는 치밀한 노력이었다.


계획 수립 초기에는 다양한 난관에 직면했다.


무엇보다 신뢰할 만한 통계 자료의 부족으로 인해 현황 파악 자체가 어려웠고, 국제적으로 검증된 계획 기법의 부재로 인해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경제기획원의 젊은 관료들은 해외 연수와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통해 이러한 제약을 극복해 나갔으며, 이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는 이후 계획 경제 운영의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1962년과 1963년의 초기 추진 과정에서는 계획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여실히 드러났다.


특히 통화 개혁의 부작용과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경제 전반이 혼란에 빠졌고, 이는 계획 목표 달성에 심각한 장애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시행착오를 통해 계획 경제 운영의 복잡성을 학습했고, 보다 현실적이고 유연한 접근 방식을 개발해 나갔다.


산업 기반 구축과 인프라 확충 (1963-1965)


1963년부터 본격적인 산업 기반 구축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의 핵심 과제는 전력,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이었다.


특히 전력 부족 문제는 산업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는데, 정부는 화력발전소 건설과 송배전망 확충을 통해 이를 해결하고자 했다.


소양강댐과 충주댐 등 대규모 수력발전 프로젝트도 이 시기에 착수되어 장기적인 전력 수급 안정의 기반을 마련했다.


교통 인프라 확충도 중요한 과제였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계획이 이 시기에 구상되었고, 기존 도로망의 개선과 확장 작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부산항과 인천항의 하역 능력 확대를 통해 수출입 물류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했으며, 이는 이후 수출 주도 성장 전략의 물리적 기반이 되었다.


산업 기반 구축 과정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민간 기업과의 협력 방식이었다. 정부는 직접 투자보다는 정책 금융과 조세 혜택을 통해 민간 투자를 유도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이는 제한된 재정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도 민간 부문의 활력을 최대한 끌어내려는 전략이었다.


특히 수출 기업에 대한 각종 지원 제도는 이후 한국 경제의 수출 지향적 성격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개발 계획 도표 <출처 : 국가기록원>




제조업 발전과 수출 기반 조성 (1964-1966)


1964년부터는 제조업 발전이 본격화되었다.


섬유 산업을 중심으로 한 경공업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이 나타났으며,


이는 계획 초기 설정했던 산업 구조 전환 목표가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특히 면방직과 모방직, 화학섬유 등 섬유 산업의 전 분야에서 생산 능력이 크게 확대되었고, 이는 곧 수출 증대로 이어졌다.


수출 기반 조성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는 수출 지향적 기업 문화의 형성이었다.


정부는 수출 실적에 따른 차등적 지원 체계를 구축하여 기업들의 수출 의욕을 자극했고, 무역진흥공사를 설립하여 해외 시장 개척을 체계적으로 지원했다.


또한 수출자유지역 설치를 통해 수출 기업들이 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시기의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기업가 정신의 확산이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함께 민간 기업가들의 도전 정신이 결합되면서 한국 경제의 역동성이 크게 증가했다.


특히 중소기업 부문에서 새로운 기업들이 속속 등장했고, 이들은 틈새시장을 공략하여 수출 확대에 기여했다.


이러한 기업가적 활력의 확산은 계획 경제 체제 하에서도 시장 경제의 장점을 살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였다.


계획 조정과 성과 평가 (1965-1966)


계획 추진 과정에서 정부는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조정 작업을 수행했다.


1965년 중간 평가를 통해 일부 목표를 수정하고 새로운 정책 수단을 도입했으며, 이는 계획 경제 운영의 유연성과 학습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특히 수출 목표를 상향 조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추가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한 것은 현실 변화에 대한 정책 당국의 신속한 대응 능력을 보여주었다.


1966년 계획 종료를 앞두고 실시된 종합 평가에서는 대부분의 핵심 지표에서 목표를 달성하거나 초과 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성장률 8.3%는 당초 목표인 7.1%를 상회했고, 수출 증가율은 목표를 훨씬 초과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성과는 한국 경제의 잠재력과 계획 경제 체제의 효과성을 동시에 입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과와 함께 여러 문제점도 드러났다.


급속한 성장 과정에서 소득 분배 격차가 확대되었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되었다.


또한 과도한 외자 도입으로 인한 대외 의존도 심화도 우려 요인이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이후 계획 수립에서 중요한 교훈이 되었고, 보다 균형 잡힌 발전 전략 모색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계획의 역사적 의의와 성과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역사적 의의는 단순한 경제 성장을 넘어서 한국 사회 전반의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낸 것에 있다.


이 계획을 통해 한국은 농업 중심의 전통 사회에서 공업 중심의 근대 사회로 전환하는 역사적 전환점을 맞았다.


무엇보다 '할 수 있다'는 국민적 자신감과 개발 의지를 확산시킨 것은 경제적 성과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계획의 구체적 성과를 보면, 연평균 경제성장률 8.3%는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으며, 이는 한국 경제의 역동성과 잠재력을 국내외에 과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제조업 부문의 성장은 산업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는 이후 지속적인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수출 증대를 통한 외화 획득은 경제의 대외 개방성을 높이고 국제 경쟁력 강화의 계기를 마련했다.


사회간접자본 확충의 성과도 주목할 만하다.


전력 공급 능력의 확대와 교통 인프라의 개선은 이후 경제 발전의 물리적 기반이 되었으며, 국민 생활의 질적 향상에도 크게 기여했다.


특히 전국적인 전력망 구축은 농촌 지역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가능하게 한 핵심 요인이었다.


한국적 발전 모델의 형성


제1차 5개년 계획은 이후 한국 경제 발전의 기본 틀이 된 '한국적 발전 모델'의 원형을 제시했다.


강력한 정부 주도와 시장 메커니즘의 결합, 수출 지향적 공업화 전략, 교육을 통한 인적 자원 개발 등은 모두 이 시기에 형성된 특징들이다.


이러한 모델은 이후 수십 년간 한국 경제 정책의 기본 방향을 규정했으며, 다른 개발도상국들이 벤치마킹하는 성공 사례가 되었다.


특히 국가와 시장, 정부와 기업 간의 협력적 관계 설정은 한국적 발전 모델의 핵심 요소였다.


정부는 시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기업은 정부의 정책 방향에 부합하면서도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경영 활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상호 보완적 관계는 계획 경제와 시장 경제의 장점을 동시에 살릴 수 있게 했다.


개발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적 역동성도 중요한 특징이었다.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전통적인 사회 구조가 해체되고 새로운 사회 계층이 형성되었으며, 이는 사회 전반의 유동성과 활력을 증가시켰다.


교육 기회의 확대와 사회적 이동 가능성의 증가는 국민들의 개발 참여 의욕을 높이는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종합 결과보고 (1965) <출처 : 국가기록원>



한계와 과제, 그리고 교훈


제1차 5개년 계획의 성과와 함께 여러 한계와 문제점도 명확히 드러났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성장 과정에서 확대된 소득 분배 격차였다.


급속한 자본 축적과 산업화 과정에서 자본가와 노동자, 도시와 농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가 확대되었고, 이는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또한 성장 위주의 정책으로 인해 환경 문제와 근로 조건 악화 등 부작용도 나타났다.


대외 의존도의 심화도 중요한 문제였다.


외자 도입과 기술 이전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발전 전략은 대외 충격에 취약한 경제 구조를 만들었고, 이는 이후 경제 위기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 일본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진 것은 경제적 자립성 측면에서 우려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와 문제점들은 이후 경제 정책 수립에 중요한 교훈을 제공했다.


성장과 분배의 조화, 효율성과 형평성의 균형, 개방과 자립의 조화 등은 모두 제1차 5개년 계획의 경험을 통해 제기된 과제들이었다.


또한 계획 경제 운영의 복잡성과 시장 경제적 요소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도 중요한 교훈이었다.


미래 발전에 대한 전망과 유산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한국 경제사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지속적인 경제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 계획을 통해 형성된 개발 의지와 성장 동력은 제2차, 제3차 5개년 계획으로 이어졌고, 결국 한국을 세계 유수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계획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할 수 있다'는 국민적 자신감과 도전 정신이었다.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 중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희망과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이후 수십 년간 지속된 경제 발전의 정신적 토대를 마련했다.


또한 계획 경제 운영을 통해 축적된 정책 역량과 제도적 기반은 이후 보다 정교하고 효과적인 경제 정책 수립의 자산이 되었다.


국제적으로도 제1차 5개년 계획은 개발도상국의 성공적인 경제 발전 모델로 주목받았다.


특히 정부 주도의 계획 경제와 시장 메커니즘을 효과적으로 결합한 한국의 경험은 많은 후발 개발도상국들에게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되었다.


이는 한국이 경제 발전뿐만 아니라 개발 경험의 전수를 통해 국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기도 했다.


결국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단순한 경제 계획을 넘어서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 계획을 통해 한국은 전통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 농업 국가에서 공업 국가로, 최빈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도약하는 역사적 변화를 경험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이후 한국이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 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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