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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1981-1986)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 2편 - 12

by 한정엽

1980년대 초, 한국 경제는 전례 없는 전환점에 서 있었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를 통한 압축성장의 성과는 분명했지만, 그 이면에는 심각한 구조적 모순이 잠재해 있었다.


제2차 석유파동으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 중화학공업 부문의 과잉투자, 그리고 무엇보다 대기업 중심의 불균형 성장이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했다.


전두환 정부가 출범한 1981년,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과거 20여 년간 견지해 온 '성장 제일주의'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정책 변화가 아니라, 한국 경제발전 패러다임의 질적 전환을 의미하는 역사적 분기점이었다.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기본 철학은 '안정성장'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집약되었다.


안정성장 개념의 등장은 한국 경제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단순히 성장률을 낮추겠다는 양적 조정이 아니라, 성장의 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했다.


경제기획원을 중심으로 한 정책 입안자들은 과거 고도성장 과정에서 축적된 구조적 불균형을 해소하고, 보다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


계획의 핵심 목표와 철학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핵심은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되었다.


첫째, 안정성장을 통한 거시경제 균형의 회복이었다.


이전 계획들이 연평균 8-10%의 고성장을 목표로 했던 것과 달리, 제5차 계획은 연평균 7.6%의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성장률을 설정했다.


이는 인플레이션 억제와 국제수지 개선을 동시에 추구하려는 정책적 의지의 표현이었다.


둘째, 산업구조 조정을 통한 경제의 고도화였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과정에서 나타난 중복투자와 과잉설비 문제를 해결하고, 기술집약적 산업으로의 구조 전환을 가속화하려 했다.


특히 전자, 정밀기기, 첨단 화학 등 고부가가치 산업의 육성에 정책적 역량을 집중했다.


셋째, 중소기업 육성을 통한 경제 민주화였다.


과거 대기업 중심의 성장 전략이 가져온 경제력 집중과 양극화 문제를 완화하고,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경제 전반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려 했다.


이는 한국 경제발전사에서 최초로 '형평성'이 '효율성'과 동등한 정책 목표로 설정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경제개발 5차계획 작성지침시안 <출처 : 국가기록원>



기술혁신과 연구개발 투자의 강화


제5차 계획의 또 다른 특징은 기술혁신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었다.


1980년대 초 한국의 기술 수준은 여전히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았고, 대부분의 핵심 기술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러한 기술 종속 구조를 타파하고 자주적 기술 개발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장기적 경쟁력 확보의 핵심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연구개발 투자를 대폭 확대했다.


국가 전체 연구개발비의 GDP 대비 비중을 1980년 0.8%에서 1986년 2.0%로 끌어올리는 목표를 설정했다.


또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 등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역할을 강화하고, 기업의 자체 연구개발 활동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반도체, 컴퓨터, 통신기기 등 정보통신 분야를 차세대 전략산업으로 선정하고 집중 육성했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과감한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이들 분야는 기술적 난이도가 높고 초기 투자 규모가 막대했을 뿐만 아니라, 성공 가능성에 대한 확신도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안정화 정책의 추진과 초기 성과


제5차 계획의 첫 번째 과제는 1979-80년 경제위기로 인한 거시경제 불안정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 경제는 연 20%를 넘는 인플레이션과 경상수지 적자, 그리고 -1.5%의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정성장 정책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경제기획원은 긴축 재정과 통화정책을 통해 총수요를 억제하는 한편, 임금인상률 억제와 물가안정 정책을 병행했다.


특히 부가가치세 도입(1977년)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조세 체계가 안정화되었고, 이는 재정 건전성 확보에 크게 기여했다.


안정화 정책의 효과는 1982년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플레이션률이 1981년 21.4%에서 1982년 7.3%로 급격히 하락했고, 경제성장률도 1981년 6.8%에서 1984년 8.4%로 회복되었다.


이는 한국 경제가 단순한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할 수 있는 안정적 기반을 마련했음을 의미했다.


산업구조 조정의 추진과 전략산업 육성


산업구조 조정은 제5차 계획의 핵심 과제 중 하나였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과정에서 나타난 중복투자와 과잉설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산업합리화 정책'을 추진했다.


이는 경쟁력이 부족한 기업들을 정리하고, 우수 기업들의 규모 확대를 통해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구조조정 정책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이었다.


1981년 당시 한국에는 현대, 기아, 대우, 동아 등 4개 업체가 승용차를 생산하고 있었지만, 모두 영세한 규모로 국제경쟁력이 부족했다.


정부는 현대자동차를 승용차 전문업체로, 기아자동차를 소형 상용차 전문업체로, 대우자동차를 중형 승용차 전문업체로 특화시키는 업종 전문화 정책을 추진했다.


동시에 전자산업, 특히 반도체 산업을 차세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1983년 삼성전자가 64K D-RAM 양산에 성공한 것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출발점이 되었다.


당시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라고 불릴 정도로 중요성이 부각되었고, 정부는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각종 세제 혜택과 금융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중소기업 육성정책과 경제 민주화


중소기업 육성은 제5차 계획의 가장 혁신적인 측면 중 하나였다.


이전까지 한국의 경제정책은 대기업 중심의 '선택과 집중' 전략을 견지해 왔다.


하지만 이로 인한 경제력 집중과 양극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중소기업 육성을 통한 균형발전이 새로운 정책 과제로 부상했다.


정부는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다각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우선 중소기업 전용 금융기관인 중소기업은행의 역할을 강화하고, 중소기업 육성자금을 대폭 확대했다. 또한 중소기업청을 신설(1996년)하여 중소기업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도록 했다.


기술 지원 측면에서는 중소기업 기술지도소를 전국에 설치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술협력을 촉진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대기업의 중소기업 협력업체에 대한 기술지도와 자금지원을 의무화하는 '계열화' 정책을 도입했다.


이는 일본의 게이레츠(계열)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협력을 제도화한 혁신적 정책이었다.


제5차경제개발계획부문별보고회의 <출처 : 국가기록원>



대외개방 확대와 국제화 추진


제5차 계획 기간 중 한국 경제의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대외개방의 확대였다.


1980년대 초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시장개방 압력이 거세졌고, 한국도 이에 적절히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특히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원화 가치 상승 압력이 높아지면서, 수출 중심의 성장전략에도 변화가 불가피했다.


정부는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시장개방 정책을 추진했다.


1981년 제정된 '대외경제정책 조정을 위한 관계장관회의' 규정에 따라 수입자유화 품목을 단계적으로 확대했다. 수입자유화율이 1980년 68.6%에서 1986년 85.7%로 크게 상승했다.


금융시장 개방도 조심스럽게 시작되었다. 1981년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 취득을 부분적으로 허용했고, 1985년에는 외국계 은행의 국내 영업 범위를 확대했다.


또한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관광산업을 육성하고 서비스 부문의 대외개방을 확대했다.


제5차 계획의 성과와 의의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한국 경제발전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안정성장'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과거 고도성장의 부작용을 성공적으로 해소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계획 기간 중 연평균 경제성장률 8.0%를 달성하면서도 인플레이션률을 5% 이하로 안정시켰고, 경상수지도 1986년부터 흑자로 전환시켰다.


산업구조 고도화 측면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제조업 내에서 중화학공업의 비중이 1980년 55.3%에서 1986년 61.8%로 상승했고, 특히 전자산업과 자동차산업이 새로운 수출 주력산업으로 부상했다.


1986년 전자제품 수출액이 102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처음으로 100억 달러를 돌파했고, 자동차 수출도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중소기업 육성 정책도 일정한 성과를 보였다.


중소기업의 제조업 생산액 비중이 1980년 47.8%에서 1986년 51.2%로 상승했고, 고용 비중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또한 중소기업의 기술 수준과 경영 능력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면서, 대기업과의 협력관계도 보다 균형 잡힌 방향으로 발전했다.


한국 경제발전 패러다임의 전환점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한국 경제발전 패러다임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전까지의 '성장 제일주의'에서 '균형성장'으로, '양적 팽창'에서 '질적 발전'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본격화된 시기였다.


이러한 전환은 단순한 정책 변화를 넘어서, 한국 사회 전체의 가치관과 발전철학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특히 기술혁신과 연구개발 투자 확대를 통해 한국 경제가 '모방형 발전'에서 '혁신형 발전'으로 전환하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반도체, 컴퓨터, 통신기기 등 첨단기술 산업의 성장은 1990년대 이후 한국이 '기술강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다.


또한 중소기업 육성을 통한 경제 민주화 정책은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대기업 중심의 불균형 성장이 가져온 사회적 갈등과 양극화 문제를 완화하고, 보다 포용적이고 균형 잡힌 성장 기반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역사적 한계와 미완의 과제


하지만 제5차 계획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중소기업 육성과 경제 민주화라는 목표가 충분히 달성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대기업과의 격차는 여전히 컸고, 경제력 집중 현상도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못했다.


이는 시장 메커니즘보다는 정부 주도의 개발정책에 의존했던 한국 경제발전 모델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한 대외개방 확대 과정에서 나타난 국내 산업의 경쟁력 부족 문제도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


특히 농업과 서비스업 부문의 낙후성이 두드러졌고, 이는 향후 경제발전 과정에서 지속적인 구조조정 압력으로 작용했다.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임금 상승 압력도 새로운 도전으로 부상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노동운동의 활성화는 경제성장의 성과를 보다 공평하게 분배하라는 사회적 요구의 표현이었지만, 동시에 기업의 경영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기도 했다.



대한뉴스 제1405호_한강종합개발 <출처 : 국가기록원>



후속 발전에 미친 영향과 역사적 평가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한국 경제가 '중진국 함정'을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계획을 통해 확립된 기술혁신 중심의 발전전략과 산업고도화 정책은 1990년대 이후 한국이 정보통신 강국으로 부상하는 기반이 되었다.


또한 안정성장 패러다임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견지되었으며, 현재까지도 한국 경제정책의 기본 철학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라는 개념은 제5차 계획에서 시작된 균형성장 철학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도 제5차 계획은 개발도상국의 성공적인 산업화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안정화와 구조조정을 동시에 추진하면서도 지속적인 성장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라틴아메리카나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발전 전략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했다.


결론적으로,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한국 경제가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모방형 발전에서 혁신형 발전으로 전환하는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비록 모든 목표가 완전히 달성되지는 못했지만,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 기반을 구축하고 선진국 도약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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